4월_가끔은 오기도 해, 행운

당첨이라는 행운, 멜번 마라톤

by 경쾌늘보


당첨과 낙첨


달씨가 학교를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 건, 사실 작은 추첨쪽지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좋은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부모님의 간절한 희망이 모인 유치원 입학 제비 뽑기 날.
교실 한쪽엔 커다란 상자, 아이들과 부모들은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줄을 섰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엄마 아빠의 마음은 간절했지만, 뽑힌 쪽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낙첨.

순식간에 방향은 바뀌었다. 아빠는 그 길로 사립학교를 향했고, 달씨의 학교생활은 그렇게 뜻밖에 시작됐다.

그 후로도 소풍날의 행운권, 학교나 회사 경품 추첨, 심지어 과자나 음료수의 뚜껑 등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당첨의 행운이란 것이 찾아온 적은 없었다.


9번을 사면 10번째 주는 무료 서비스 쿠폰 같이 뭔가를 해야만 보상을 받았다. 요행이나 큰 행운을 바라는 일은 없었다. 그러기에 복권을 산다거나 청약 추첨, 로또를 꿈꾸는 것도 달씨는 바라지 않는 인생이었다.



첫 당첨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계 메이저 마라톤들이나 호주 주요 도시 마라톤들은 추첨제로 참가자를 뽑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이곳저곳 신청을 해보지만 달씨에게는 역시나 "Unfortunately you are not selected this time"이라는 낙첨 통보가 돌아왔다. 그러나 크게 실망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번의 예외가 있긴 했다. 더구나 책을 좋아하는 달씨의 손에 또 한 권의 책이 온 사건이었다. 정세희 교수가 쓴 달리기 에세이 '길 위의 뇌' 책을 출간기념으로 나눠주는 이벤트에 응모했는데웬일인지 뽑힌 것이다. 운 좋게도 그 책은 달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손에 들어왔다. 이후 저자인 정세희 교수는 20여 년간의 달리기 경험과 병원에서의 임상경험들을 토대로 유퀴즈와 세바시에도 출연했다. 볼때마다 그 날의 첫 당첨 기분을 떠올린다.



또 한번의 당첨


올해, 호주 여러 도시의 마라톤 접수는 일찌감치 마감됐다. 멜버른 마라톤도 이미 ‘솔드아웃’. 그러던 어느 날, 멜버른 마라톤이 추가 추첨을 잠시 연다는 소식이 떴다. 기대도 없이 신청했는데, 결과 날에 이메일을 열자 믿기지 않는 문구가 있었다.


You are in!


"뭐?!!! 이게 무슨 일이고?!"

마라톤에 당첨되었다. 언포츄넷리 아니고 콩그레츌레이션 이라고? 그것이 무엇이든 "You are in!"은 기분 좋은 한 문장이었다. 들뜨기도 하고 동시에 마음이 분주해지는 달씨. 드디어 올해의 새로운 챌린지, 멜번 마라톤으로 결정이 되었다.




멜번 그리고 마라톤


멜번 (혹은 멜버른)은 애들레이드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차로 8시간, 비행기로 1시간 걸리는 거리.달씨는 멜번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없던 20대 시절에는 렌트한 멋진 BMW 오픈카를 끌고 멜번 외곽을 드라이브하는 여유를 누렸다. 30대에는 유모차를 끌고 두 어린아이들과 도시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한 달 정도 지낸 적이 있다. 40대에는 가족들을 끌고 멜번 교외의 온천을 가보기도 했고, 또 비록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호날두가 온다는 맨체스터 축구경기를 보러 그 도시에 간 적도 있다.

그때 그 축구경기장은 7만 이상의 관중으로 꽉 차있었고, 조명은 낮인 듯 밝고 신나는 응원과 함성으로 터질 듯했다.


또 다른 40대, 이제는 맨몸과 두 다리를 끌고 멜번에 마라톤 하러 가게 될 줄 몰랐다. 인생 모를 일이라는 말 밖에.


달씨는 도시의 마라톤 코스를 상상해 본다. 멜번은 호주의 주요 도시들 중, 고전과 현대가 도시 공간에 가장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조화된 곳이다. 문화와 패션의 주도적 도시이기도 하고 도심 내 자연환경들도 활기차다. 야라 강을 따라 서있는 멋진 모던 건축물과 고전 양식들, 알버트 호수를 지나 세이트 킬다 바닷가까지 돌아 도시로 들어와 마지막 그 경기장, MCG (Melbourne Cricket Ground)에서 피니쉬 한다. 시드니가 미항 앞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피니쉬 하는 감동을 준다면, 멜번은 거대 구장에서 쏟아지는 함성의 벅참을 줄 것이다.

어떻게든 완주만 하다면.



설탕가루 타임


인생에 있어 ‘당첨’이 주는 맛은 분명 있다. 달씨는 아주 뒤늦게 맛보았다. 편의점에서 작은 사은품에 걸리거나 행사장 경품 추첨에서 번호표가 불릴 때의순간처럼, 그것은 단조로운 일상에 살짝 설탕가루를뿌려준다.

소소한 당첨의 즐거움은 잠깐이고 목표가 정해졌다.

이제는 긴장도 좀 하며 연습을 시작할 시간이지만, 다가올 본격적 쓴 맛을 보기 전 잠시의 설탕가루가 녹기 전에 즐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달씨는 읊조린다.

"마라톤도 정해졌고 역시 나만 잘하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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