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특권 그리고 숙명

금수저 코알라?

by 경쾌늘보


유칼립투스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칼립투스는 호주의 풍경을 이루는 나무입니다. 검트리 (gum tree)라고 불립니다. 건조한 호주의 기후 환경에 적응하며 대대손손 땅에 뿌리내리며 살고있는 나무들이에요.


이 나무는 특이한 향이 있어요. 한두 그루 있을 땐 잘모르지만 여러 그루가 함께 있는 길, 그리고 특히 비 온 후나 저녁에는 특유의 향이 공기에 배어납니다. 저는 그것을 '호주의 향'이라 불러요. 아카시아나 재스민처럼 달콤하거나 향긋한 향이라기보다 박하처럼 시원하고 청량한 향입니다.


독특한 향과 항균이나 소독 기능 덕에 유칼립투스 오일로 상품화된 진액들도 있어요. 처음 호주에서 얼마간 혼자 지낼 때 산책 길에 만난 동네의 키 큰 유칼립투스들. 다 자란 나무들은 높이가 50미터까지 자랍니다. 그 향이 매우 이국적이었어요. 그러다 한국에 돌아갔다 호주에 왔을 때, 유칼립투스 향이 가장 먼저 호주에 와있다는 것을 알려줬던 것 같아요.


이 나무는 때가 되면 밝은 회색빛 단단한 근육을 보여주는 듯 껍질을 훌렁훌렁 벗어놓기도 합니다. 나뭇잎 자체에 오일 성분이 있어서 호주의 산불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면 산불 겪고도 다시 싹을 틔우는 자체 재생능력이 있는 강한 나무입니다.



잠만 자도 귀여움 받는 금수저


저의 아이들이 저희 강아지를 두고 하는 말이 있어요.

"멍뭉이는 밥만 먹어도 귀여움을 받네."

딱히 하는 일은 없어도 매일 주는 똑같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귀여워합니다.


마찬가지로, 호주나 관광 온 외국 사람들로부터 코알라는 온갖 관심과 시선을 받습니다.

"코알라는 잠만 자는데 귀여움을 받네."



코알라가 잠만 자는 이유가 바로, 유칼립투스 나뭇잎 때문입니다. 코알라들의 주식입니다. 그리고 유칼립투스는 코알라에겐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입는 것(衣)이야 털이 대체하지만, 먹을 것(食)이 제공되는 사는 곳(宙)입니다. 때론 도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나무에서 누리며 살아도 집 걱정 세금 걱정 천적 걱정도 없이 삽니다.


그런데 유칼립투스 나뭇잎은 오일 성분이 강하고, 이 성분이 다른 동물들에게는 독이 됩니다. 오직 코알라만 이 이 나뭇잎을 소화시킬 수 있는 소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동물 세계에서 있는 나눠먹을 존재들이나 치열한 경쟁 없이 독식할 수 있는 금싸라기 터전을 받은 셈이죠. 그러니 금수저 맞지요. 호주의 금수저라고 종종 불리지만,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도 이런 이유로 반박할만한 여지가 크지는 않은 코알라의 태생입니다.


호주의 땅 크기가 한국의 76배라고 하죠. 중간 사막 혹은 광야 지대를 제외하고 어디나 울창한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있는 먹이가 풍부한 채식주의자들의 향연이 열립니다. 오물오물 질겅질겅.

코알라들이 닥치는 대로 먹성 좋게 아무 잎들도 먹을 것 같지만, 사실 입맛이 까다로운 자들입니다. 호주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700여 종에 이른다고 해요. 그중 코알라들이 찾아 먹는 나무 종은 단지 30-40여 종입니다. 그중에서도 여리여리한 새 잎들만 먹는 고집스러운 미식가들입니다.


독성있는 나뭇잎을 천천히 소화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영양가가 적기에 그들은 잠을 잘 수밖에 없습니다. 코알라의 내장은 독성 오일을 해독하며 소화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해요. 흔히들 유칼립투스의 알코올 성분 때문에 취해 있는 것이라고 하나, 사실은 테르펜유라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가진 휘발성 오일을 뱃속에서 분해하느라 자고 있는 것이지요.



깨어있는 시간 4-5시간


잠이 부족한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코알라가 부러울지도 몰라요. 잠이 많아 잦은 오해를 받았던 저는, 코알라의 잠이 제게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먹을 것이 보장되었지만 세상을 보고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있는 시간이 매일 딱 4-5시간만 허락된다면 그 삶은 어떨까 상상하게 됩니다. 먹기 위해 자는 것인가, 자기 위해 먹는 것인가. 혹시 깨어있고 싶어도 못 깨어있는 숙명 때문에, 끝내 채우지 못한 호기심이나 이루지 못한 여정이 있을까 엉뚱한 고민을 해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코알라의 눈으로 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긴 하루 시간 안에서 매 순간 바쁘게 일하며 살며 견뎌야 하는 삶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요.


깨어 있는 시간이 긴 인간의 세계와, 느리지만 고요하게 하루를 견디는 코알라의 세계를 나란히 떠올리면 각자의 삶에도 저마다의 무게와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옵니다. 사람 세상도 동물 세상도, 보이는 것만으로 쉽게 판단하기엔 각자의 사연이 모두 있을 것입니다.


경쟁자 없는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태어나 귀여움만 받고 사는 것 같지만 또 감당해야 할 부분도 있는 코알라.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이는 금수저의 삶도, 그 반대의 삶도, 내부에서 보면 모두 각자의 고민과 이유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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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 나무 위 동네 코알라 & 해질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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