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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원 주미영 Mar 29. 2023

강남 빌딩숲 속 왕들의 무덤,
선정릉

연산군을 낳은 왕, 그를 몰아낸 왕 여기 잠들다

  

조선의 임금님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서울 강남구의 선정릉으로 향했다. 지하철 선릉역에서 5분 정도 걸어 금방 도착했다. 그동안 선릉역 지하철역으로만 알고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는데 내가 이렇게 무심했다니.... 그리고 한류의 원조가 되었던 유명한 드라마,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입에 오르내리는 드라마 <대장금>과 관련 있는 중종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서울 강남구 선릉로 100길 1에는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부인 정현왕후가 잠든 선릉, 그리고 아들 중종이 묻혀 있는 정릉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심 한복판의 왕릉이라지만 나무마다 새순이 돋고 꽃도 피어 봄기운이 완연하다. 왕릉이 처음 조성될 때는 도성밖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었을 텐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도심 속 왕의 무덤이 되었다.      


조선 9대 왕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은 7대 왕 세조의 손자다.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가 보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자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예종도 1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13살에 불과한 성종이 그 뒤를 이었다. 성종은 25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세종 이후 다시 한번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치의 기본이 되는 경국대전을 완성했고, 동국통감, 악학궤범 등 여러 분야의 서적을 간행해, 문치의 틀을 다졌다.     


하지만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맞은 두 번째 중전 윤 씨를 불화 끝에 폐비시키고 사약까지 내린 일은, 자신의 뒤를 이은 연산군이 극악무도한 폭정을 자행한 씨앗이 되기도 했다. 숱한 영화와 드라마로 극화된 제10대 왕 연산군이 성종의 아들이고 묘는 서울 방학동에 자리 잡고 있다.   

  

폐비 윤 씨 다음으로 세 번째 중전이 된 부인이 성종과 함께 선릉에 묻혀 있다. 바로 정현왕후. 여기서 참고로 역대 조선의 27명의 임금들 중에 후궁 포함 부인이 제일 많았던 왕은 스무 명이었던 3대 태종이고 그 뒤를 잇는 왕은 17명인 성종이다. 정현왕후의 봉분은 성종과는 다른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어서 5분 정도 걸어가야 만날 수 있다. 정현왕후가 그 많은 여인들을 제치고 이렇게 넓디넓은 자리를 차지하며 왕옆에 묻힐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들이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현왕후는 폐비 윤 씨의 자식인 연산군을 어린 시절 친자식처럼 돌봤다고 한다. 훗날 연산군으로부터 행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큰 화를 입지는 않았다.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했을 때 신하들이 무력으로 연산군을 쫓아내고 중종을 새 왕으로 옹립했는데 중종의 어머니가 바로 정현왕후다.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 능의 이름은 정릉이다. 앞서 본 선릉과 같은 권역에 있어서 선정릉으로 합쳐서 부르기도 한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3.5km가량 조성돼 있어서 대로와 자동차, 현대식 건물 일색인 강남에서 시민들에게 소중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조선 왕릉에서 왕은 보통 왕비와 함께 모셔져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태조의 건원릉과 단종의 장릉이 예외인데 중종 역시 혼자 잠들어 있다. 정실 왕비가 셋이나 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먼저 첫째 왕비 단경왕후 신 씨는 중종반정 주도 세력의 압박으로 폐비되어 중종과 이별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왕비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2017년 KBS에서 방영한 로맨스 사극 드라마 <7일의 왕비>의 주인공이 바로 단경왕후다. 그리고 중종의 둘째 왕비는 장경왕후인데 일찍 죽어서 고양 서삼릉에 묻혔고 후에 중종이 승하하자 그 곁에 안장됐다. 하지만 중종보다 21년을 더 생존한 셋째 왕비 문정왕후가 중종릉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자신도 남편 옆에 묻히려 했는데 능 자리가 워낙 좋지 않아 멀리 태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왕비 셋과 왕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잠들어 있다.    

  

중종의 재위 기간은 39년으로 27명의 조선왕 중 다섯 번째로 길다. 하지만 신하들에 의해 엉겁결에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만의 철학이나 업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사라진 조광조를 비롯해 남곤, 김안로 같은 실세들이 국정을 주도하는 시기였다.      


중종은 드라마 <대장금>에 등장하는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록에도 장금이에 관한 기록이 10여 차례 나오는데 원자 탄생에 기여했다거나 왕과 대비의 병구완에 참여했다거나 하는 등의 내용이다. 장금이는 중종이 눈을 감는 순간에는 주치의처럼 그의 곁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선정릉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에 의해 능이 파헤쳐지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날의 수모를 아는지 모르는지 올해도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트린 진달래와 개나리가 찬란한 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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