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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원 주미영 Mar 16. 2023

3대 왕 태종과 23대왕 순조의 만남, 헌릉과 인릉

헌인릉에서 떠오르는 것은

옛 임금님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대모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헌인릉. 조선 3대 왕 태종과 23대 순조 임금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먼저 태종과 부인 원경왕후가 잠들어 있는 헌릉으로 갔다. 입구에서 10여 분 걸으면 도착한다. 그런데 어느 능에나 다 있는 홍살문이 없고 기둥을 지탱하는 돌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무슨 일일까? 나중에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보수를 위해 홍살문을 뽑아서 다른 곳에 보내놓은 상태라고 한다.      


특이한 점이 또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긴 돌길은 왼편의 향로, 즉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과, 오른편 임금이 걸어가는 어로로 구분되어 있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향로만 있다. 1910년까지는 어로도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 왕 27명 중 존재감 탑 5(Five)에 들어갈 만한 태종인데 능이 온전치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다섯째 아들이다. 글공부와는 거리가 먼 형들과 달리 방원은 과거에 급제한, 집안의 브레인이었다. 아버지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배다른 어린 동생 방석을 세자로 세우자 이른바 1차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거사를 일으켜 일거에 권력을 장악했다. 이때 이방원은 방석, 방번과 함께 태조의 평생 동지 정도전 등을 죽였다. 이후, 바로 윗 형인 방간과 맞붙은 2차 왕자의 난, 아버지 이성계와 군사적으로 대결한 조사의의 난을 거치며 그는 철권 군주로 자리 잡아갔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동지는 바로 부인 원경왕후 민 씨였다. 하지만 그녀가 맞게 된 것은 선물이 아니라 말 못 할 참극이었다. 토사구팽이라고 했던가. 태종은 처가인 민 씨 집안의 도움으로 권력을 쟁취했지만 정작 왕이 된 후에는 부인의 남동생 네 명 모두 역모와 불충 혐의를 씌워 죽여 버렸다. 훗날 처가가 왕권을 위협할 가능성을 방지한 것이라지만 어떻게 부인의 집안을 도륙해 버릴 수 있는지 그 비정함에 말문을 잊게 된다. 태종의 외척에 대한 경계는 며느리 집안에도 이어진다. 태종은 아들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매들을 노비로 만들었다. 며느리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다.    

 

부부로 만나 동지가 되었고 원수로 끝난 태종과 원경왕후.,두 사람이 이곳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그런데 찬찬히 보면 두 개의 봉분이 지나치게 가깝게 붙어 있고 난간석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마치 죽어서도 헤어지기 싫다는 듯 하다. 아들 세종이 가까이 있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땅 속에서 지나온 600년 세월, 이제 왕과 왕후는 그날의 원한을 씻었을지 궁금해진다.      


태종은 비정한 군주였지만 사병을 혁파해 왕권을 강화했고, 개경으로 돌아간 왕조를 한양으로 재천도해 신생국 조선의 기틀을 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자를 양녕대군에서 충녕대군으로 교체하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성군 세종대왕 시대를 열었다.    

    

헌릉의 봉분 근처에는 문석인무석인 같은 석물들이 다른 왕릉보다 2배 많이 세워져 있어서 더욱 장엄함을 자아낸다. 또한 다른 왕릉과 달리 산책길을 통해 봉분 바로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어서 능침 구역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준다.  

   



헌릉에서 인릉으로 가는 길은 숲 속 산책길이다. 인릉은 23대 왕 순조와 부인 순원왕후를 모신 능이다. 순조는 정조의 후궁인 유비 박 씨 소생이다. 세자로 책봉된 게 11살인데 그 해에 정조가 승하하면서 바로 임금이 됐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영조의 부인인 정순왕후(순조의 증조할머니)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실권을 행사했다. 정순왕후가 죽자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 가문이 득세했다. 그 유명한 안동 김 씨로 이때부터 안동 김 씨 60년 세도 정치가 시작됐다. 그러고 보면 순조는 처음에는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 치세에 눌렸고, 이후에는 안동 김 씨 세력에 치여서 임금다운 임금 노릇도 못해 보고 재위 34년을 보냈다.      

인릉(왕과 왕비 합장릉)

인릉은 합장릉으로, 한 봉분 안에 순조와 순원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다. 순조가 임금으로 있는 동안 전정, 군정, 환곡을 뜻하는 삼정의 문란이 심했고 전국적으로 민란이 빈발했다. 특히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한 때 일대 지역을 휩쓸며 조선 왕조의 쇠락을 재촉했다. 또 서학으로 불리던 천주교 박해가 본격화 돼 주문모, 이승훈, 정약종 등이 순교한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 시기 개국 이후 400여 년의 지도이념 성리학은 길 잃은 백성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조정의 국가 운영 능력은 한계를 드러냈다.    

       

헌인릉은 왕릉이면서 훌륭한 도시공원이다. 1시간 정도 천천히 산책하며 힐링하기에 좋다.  문득 고려말에 태어나 조선 초 새 나라의 기틀을 세운 왕 태종과 그로부터 300년 후 조선왕조의 쇠락기를 연 순조가 함께 잠들어 있다는 점이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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