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왜 하필
억울했다. 진단서에 적힌 ‘광장공포증이 있는 불안장애’라는 진단명을 보고 억울했다. 적극적이고 추진력 강하고 나서는 데 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학교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다가 곧 화가 났다.
시작은 노트북이었다. 2019년 7월의 어느 날, 출근하니 캐비닛에 보관해 둔 업무용 노트북이 켜지지 않았다. 수리기사님께서 확인하시더니 액정이 나갔다고 했다. 수리를 요청했지만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서비스센터에 직접 다녀오라’, ‘무료로 받지 못하면 사비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다른 분들은 비슷한 상황일 때 학교에서 수리를 받았는데, 왜 나만? 억울했다. 그러나 컴퓨터는 수리되지 않았다. 여분의 노트북을 받아 사용했다. 연식이 오래된 노트북은 멀쩡한 USB 포트가 하나뿐이었다. 업무처리에 불편함이 많았다. 그러나 월급의 10프로가 넘는 금액을 수리비로 낼 수도 없고, 내고 싶지도 않았다. 교육청에서도, 업무 담당 선생님도 ‘그걸 왜 선생님이 내요?’라고 했다.
2020년 3월, 노트북이 갑자기 수리되었다. 이유는 같은 부서 기간제 선생님이 내 노트북(액정이 나간)과 같은 모델의 노트북을 받았는데 그분이 받자마자 액정이 나갔기 때문이었다. 계약하자마자 받은 노트북의 액정이 나갔는데 돈을 물으라고 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별 수 없이’ 같은 모델에 증상도 같은 내 것도 고쳐준 것이다. 반년이 넘도록 말했어도 해주지 않았던 수리를. 노트북 주인도 모르게 말이다. 그래서 알았다. ‘이거 정말 이유 없는 차별이었구나.’
다음은 육아시간에 관련된 갑질이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개학이 늦춰져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았으나 교사는 정상 출근하였다. 외출도 안 되고 급식도 안 나오는 상태였지만 초유의 사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일하는 엄마의 자식인 나의 딸은, 유치원 입학을 기다려온 나의 딸은 교대근무로 매일 바뀌는 선생님들의 손에 우리 애처럼 ‘어쩔 수 없이’ 등원한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유치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생후 6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일하는 엄마 밑에 태어나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것은 불안했지만 괜찮았다(아이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늘어가는 확진자 수를 보며, 그리고 우리 아파트와 아이 유치원 옆 상가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을 보고는 아이를 유치원에서 얼른 ‘빼와서’ 집에 데리고 있고 싶었다. 그래서 육아시간을 썼다.
복무규정에 따르면 2시간까지 가능하지만 지금까지 담임을 했던 나는(우리 학교에서는 비담임도 마찬가지였으나) 1일 2시간의 육아시간을 써본 적이 없었다. 담임이므로 조종례를 맡아해야 했고, 수업이 끝난 시간 이후에만 쓰게 했으므로 7교시가 있는 날은 15분, 6교시가 있는 날은 1시간 사용할 수 있었다. 학생사안이 발생하면 이미 결재 올려놓은 저만큼의 시간도 쓸 수 없는 날이 많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같은 학교의 교육행정직 공무원은 오전 오후에 나누어 2시간을 다 썼지만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담임이니까, 교사니까,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비담임이었던 2020년, 그리고 코로나로 모든 것이 정지되었던 그때는 2시간을 쓰고 싶었다. 다행히 결재가 났다. 그렇게 2-3일 정도 사용했을까.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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