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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Dec 06. 2022

내가 죽으면 끝이 날까(1)

죽는 건 안 될 것 같은데. 죽기 전엔 안 끝날 것 같은데.

  이쯤 되면 세상이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 같았다. 어느 영상에서 보니 지나친 자기 중심성, 자신에 대한 집착은 불행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일 뿐인데 ‘왜 나만, 왜 하필, 뭐 때문에 이럴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은 확실하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일상에서 쉽게 맞이할 행복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고. 그런데 안 할 수 없었다.   




정상적으로 근무한 날이 없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왜 출근하지 못했는지, 복무사항을 결재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데 저렇게 말을 한다고? 내가 뭘 잘못해서 나에게 저렇게 말하는 거지?         

             

유산, 역류성 식도염, 성대결절, 누수, 고관절 문제, 기흉, 그리고 갑질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 딱 일 년 동안 한 번에 일어났다. 버티기엔 힘이 부족했다.


  2018년 12월 임신으로 인한 극심한 입덧-2주에 6킬로가 빠졌다. 다이어트는 역시 식이인 것인가. 그동안 얼마나 부지런히 먹었기에 체중이 유지되거나 늘었던 거지-과 유산으로 인한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아이를 잃었다. 유산휴가를 쓰지 않은 채 학기를 마무리하러 출근했다. 담임이니까. 곧 방학이니까.

  회복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업무분장 희망원에 적었다. 유산이 되었고 임신 계획이 있으니 비담임을 희망한다고.     

  그러나 2019년 또 담임이었다. 임신이 된 것이 아니니 고려해줄 수 없다고 했다. 옆 부서 동갑 여교사는 임신 계획을 이유로 비담임이 되었다. 책임감의 대가는 부려먹기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이었다. 아차, 이곳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주는 곳이었지. 그런데 열심히 안 하는 것, 어떻게 하는 거더라.      




  부려먹기 좋은 일꾼은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악성 학부모의 시도 때도 없는 잦은 연락과 폭언, 끊이지 않는 학생 간 갈등과 학교 폭력 사안 신고, 이로 인한 상담 또 상담, 처분 결과에 대한 울분을 여과 없이 내뿜기 위해 계속되는 전화. 역류성 식도염과 성대결절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성대가 마비되기 직전이라고 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수술을 미루고 참고 학교에 다녔다. 담임이니까. 병원에서는 약을 주며 목을 쉬라고 했다. 그건 또 어떻게 하는 거더라.      


  한 학기를 겨우 버텨내고 맞은 방학, 성대결절 수술을 하고 좀 쉴 수 있으려나 했는데 방 한 칸의 베란다 확장 부분에 곰팡이가 슬었다. 책꽂이를 드러내니 물이 흐른 흔적이 있었다. 윗집에 의해 누수가 되어 생긴 거라는 걸, 복잡한 절차를 거쳐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집에서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내 몸 하나 뉘일 곳, 내 마음 놓아둘 곳이 이 세상엔 없는 것 같았다.     


  누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개학을 앞두고 무릎과 고관절이 아파 병원에 갔다. 이번엔 걷지 말라고 했다. 뭐 다 하지 말래. 서서 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걷지도 말하지도 말라니. 정형외과에서 끊어준 진단서엔 2개월을 쉬라고 적혀 있었다.      


  결국 병가를 내고 미뤘던 성대 수술을 하고 말을 안 하길 며칠. 또 몸이 이상했다. 심장 문제인가. 죽는 건가. 남편에게 증상을 자세히 적어 카톡으로 보내 놓고 스스로를 살폈다. 호흡이 달리는 것도 같고 어깨와 날갯죽지가 아픈 것도 같고. 좀 괜찮아졌다가 힘들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한 뒤에야-증상이 나타난 지 10시간 즈음 지난 뒤에야- 응급실에 갔다. 의학 드라마를 즐겨 보는 남편의 말 때문이었다. "기흉 같아. 드라마에서는 이럴 때 모나미 볼펜을 소주로 씻어 가슴팍에 팍 하고 꽂던데."


기흉입니다.
 

 

  헛웃음이 났다. 하다 하다 기흉이라니. 성장기의 키 크고 마른 남성도 아닌, 월경 중이지도 않은 나에게 기흉이라니. 지쳤다. 5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회복이 되기도 전에 병가가 끝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놈의 책임감 때문에.        




  그런데 학교는 나에게 말했다. 정상적으로 근무한 날이 거의 없다고.


  모욕감으로 점철되어 턱턱 숨이 막히는 상태로 생각했다. 정말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저 말을 내뱉는 저 사람은 내가 죽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좀 곤란할까. 다른 사람도 곤란했는데 굳이 꼭 내가 죽어 저 사람을 곤란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저 사람은 죄책감도 못 느낄 것 같은데. 지금 겪고 있는 것도 억울한데 죽기까지 하면 더 억울하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 아빠는, 남편은, 누구보다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까. 죽는 건 안 될 것 같은데. 죽어야 끝날 것 같은데. 죽기 전엔 안 끝날 것 같은데.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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