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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Dec 08. 2022

내가 죽으면 끝이 날까(2)

존버만이 살길이다.

“부장님들과 의논을 할 테니 나가 봐.” 숨이 멎기 전에 교장실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호출한 교감은 말했다.


 육아시간, 부장님들의 반대로 못 쓰게 됐어요.


 법보다 교장보다 부장이 먼저인가 보다. 부장은 담임처럼 보직이고, 육아시간 허용 여부는 기관장의 권한인데 말이다. 알았다는 대답에 교감이 덧붙였다.


 조퇴를 쓰세요.


 조퇴는 육아시간보다 더 사사로운 이유로 쓰는 것 아닌가. 조퇴가 된다는 것은 육아시간을 쓸 수 있는 조건(업무에 지장이 없을 경우)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매일 조퇴를 쓰다가(말도 안 되지만) 연가를 소진하여 정말 조퇴를 쓰고 싶을 때, 써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상 근무’를 강조하는 관리자 입에서 나올 말로 적절한 것인가. 




말도 안 되는, 함정 같은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여기저기서 제보가 들려왔다. 교장이 영문도 모른 채 앉아있던 부장님들에게 육아시간을 허용할 것인지 물었다고. 몇몇 부장님들은 가만 계시고, 몇몇 부장님들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개학이 미뤄진 동안에는 두 시간씩 쓰게 하자고 했다고. 이에 교장은 그게 말이 되느냐 호통을 쳤다는 말과 함께.


아, 그래서 도움을 못 줘 미안하다고 그랬구나. 



자기 일도 아닌데 불려 가 욕본 부장님들의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어쩌면 제보 내용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고맙게도(?) 교감과 교장이 부장님들을 끌어들인 탓에 학교에는 교장이 ‘또’ 갑질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타깃의 정보와 갑질 진행 상황에 대해 반강제로 전달받은 몇몇 선생님들이 안부를 물어왔다. 작년에 많이 아팠는데 몸은 괜찮니. 밥은 먹었니.


 학교는 정치판이라고 생각했다(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는 이용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이 생각도 여전하다). 여러 번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학교였다. 상처 주고 죽음으로 내모는 학교였다. 그런데 그 안에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살았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죽어야만 끝날 것 같았지만 결론은 ‘죽을 수 없다’였다.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 같이 구는 저 어리석은 교장이라는 사람은 내년 2월이면 정년퇴직이다. 저 옆에서 얇실하게 붙어 앉아 박쥐 짓을 하는 교감이라는 사람도 교장이 바뀌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모를 일이다.      


죽긴 왜 죽어. 죽어도 못 죽어.

존버만이 답이다. 어떻게든 버텨보자(그런데 어떻게 버티지).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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