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상관없이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할머니와 어김없이 하는 오성군의 놀이는 언제나 윷놀이다. (가끔은 또래 사촌들도 합류하곤 한다.)
3년 정도 되었을까. 어느 날부턴가 이기면 할머니의 청색깔 빛바랜 보자기 주머니에선 빳빳한 천 원짜리 지폐가 튀어나왔다. 신나게 용돈이 불어나다가도 어쩌다 열 번에 한번 정도 오성군이 지게 되면 우리의 룰에 따라 할머니의 한자책 타임이 돌아온다.
그렇다.
우리 할머니는 서예학원의 한자선생님이시기도 하다.
그렇게 윷놀이를 할머니와 오랜 시간동안 하다 보니 한자도 8급부터 7급까지 급수를 땄고 지금은 6급의 어디쯤에 온듯하다.
이번 설은 열흘 전보다 훨씬 전부터 야심찬 플랜과 공략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용돈을 바짝 모아 두 번째 볼링공을 사는 것!
볼링공은 기본적으로 마이볼(주로 치는 첫 번째 공)과 하드볼인 스페어핀 처리를 하는 두 번째 공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이 국룰이다. 하드볼은 잘 돌지 않고(스핀이 먹지 않는다고 말함) 묵직해 주로 끝쪽의 10번 핀을 잘 처리할 수 있다.
첫째공 마이볼이 생기고나니 인간의 욕심이란 참 끝이 없는 걸까. 하드볼이 또 너무너무 갖고 싶은 것이다!
혼자 며칠을 하드볼만 검색해 보며 그 마음이 더더 커져갈 때쯤, 설이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용돈이 두둑 해질 수 있는타이밍과 그렇다면 하드볼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연결고리로 이어져 생기게 된 것.
그렇게 하여 설이 다가오기 며칠 전 조심스럽게 나의 플랜을 엄빠에게 내밀어보았고, 설에 만나 뵙는 어른들께 맘을 다해 진심 어린 새배의 자세를 보인다면 적극 고려해 주겠단 대답을 받게 되었다. 속으로 어찌나 앗싸! 만세를 불렀던지.
그렇게 나의 열과 성의를 받쳐 지낸 올 설날은 주머니 두둑하게 세뱃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고, 그토록 원한 둘째, 하드볼도 살 수 있게 되었던것이다.
겨울이 지나가는 비가 꽤 세차게 온날, 엄빠와 며칠 동안 열심히 찾아 찾아 집에선 조금 먼 거리의 볼링공 전문매장을 그 비를 뚫고직접 방문해 하드볼 볼링공을 고르고 지공이란 내 손을 재고 공에 구멍을 뚫는 작업도 실제 경험해 보는 색다르고 신기한 첫 경험을 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