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쓸모 Dec 23. 2022

1. 13살 어린 형님

결혼 10년 만에 드디어 형님이 생겼습니다

남편의 형, 그러니까 아주버님은 나보다 1살 위다. 엄연히 따지면 나보다 3주 일찍 태어나신 분.  

동생부부인 우리가 아이 넷을 낳고 만 10년이 되기까지 아주버님은 몇 명의 여자친구를 만났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 네? 14살 연하요? 대박!!! 그럼 몇 살인 거예요? "

" 26살이요." 


작년 겨울,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나서 고민이라는 아주버님의 얘기에 과감하게 들이대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누가 됐든 제발 형님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연하의 여성분이 여자친구가 되었고,  곧 결혼을 앞둔 예비 형님이 되었다. 


" 제수씨, 형님자리가 제수씨보다 13살이나 어려서 좀 그렇죠, 미안해요."

" 어머~ 아니에요~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괜찮아요~"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다. 내가 꽤나 쿨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호칭 그까짓 거 뭐 부르면 그만이지. 그게 뭐라고.

호칭정리를 하며 깨달았다. 쿨한 여성은 개뿔 그냥 나이 많은 여자사람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형님은 내 남편을 "00 씨~"라고 불렀다. 

헉, 11살 많은 시동생한테 "00 씨~"라니. 

형님이 13살 어리고 동서인 내가 13살 많은 웃픈 관계. 그냥 정식호칭을 쓰자고 남편과 나는 합의를 봤고, 아주버님과 형님에게 호칭정리를 하자했다. 


[형님-동서] 동서인 내가 13살이나 많으므로 나를 동서 대신 '언니'라고 부르겠단다. 그래 OK.

[아주버님-제수씨] 논란의 여지없음

[서방님-형수님] 형수님이 11살이나 어리니 '님'을 빼고 '형수'라고 부르란다. 그래 그것도 OK. 


문제는 '서방님' 


서방님(書房님)

1. '남편'의 높임말. 

2. 결혼한 시동생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형님은 도저히 '서방님'이라고 못하겠단다. 남편도 아닌 사람에게 '서방님'이란 호칭은 오그라든다나.

아니 '서방님'이 그 '서방님'이 아니잖아요, 그냥 호칭이에요. 를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남편보다 2살 연상인 나는 어린 형님의 그 콧소리를 더한 "00 씨"가 목구멍이 탁 막히듯 거슬린다. 웃으며 "00 씨" 할 때는 단전에서부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남편에게 그건 좀 아니지 않냐고만 했을 뿐, 불편한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 싫다고 할만한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오빠~"라고 하기도 그렇지 않은가. 

아주버님이 좀 나서주면 좋겠는데, 그냥 "00 씨"라고 하란다.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아주버님과 형님의 평화를 위해.


아주버님은 14살이나 어린 여자친구를 나름 전전긍긍하며 지켜오고 있는 것 같다. 뭐든 맞춰주지 않으면 떠나갈까 두려워서일 거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 귀하신 분이 "00 씨"라고 한다는데,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럴 땐 시부모님께 부탁하는 게 답이지. 




남들은 어린 형님한테 '형님'소리 나오겠냐고 걱정이지만, 이상하게 형님소리가 잘 나온다. 내 남편을 부르는 그 "00 씨"가 듣기 싫을 뿐이다.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않은가. 차차 정리될 것이고, 또 다른 문제들이 나를 괴롭히겠지만, 그저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한 달여 후면 드디어 아주버님의 결혼식이다.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에서




* 사진출처 : 픽사베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