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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찾은 행복

102회 문학광장 신인상

by Mocca

젊은 시절,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운좋게도 영화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일을 하게 됐지만 일은 고되고 힘들었다. 박봉인데다 영화현장과 신문사를 오가며 뭐든 시간에 맞춰 해야했고 까다로운 배우, 기자 등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심했다. 복통을 비롯해 여기저기 몸이 아파 원인을 찾다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구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치료를 계속하던 중, 엄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상실감과 외로움에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다행히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는지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 성공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임신을 위해 우울증약도 끊고 지내던 중 축복처럼 원하던 아기를 갖게 되었고 행복한 임산부로 요가와 바느질, 치유하는 글쓰기 등으로 태교를 하며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가 자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진심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육아는 쉽지 않았고 산후 우울증이 심해져 다시 치료를 해야했다. 그러던 중 시누이가 숲 공동육아를 권했고 아이가 18개월 되던 해, 생태보전시민모임 회원이 되어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이전에 산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혼자도 아닌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까지 데리고 산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일단 산에 도착하면 기운이 솟고 몸의 통증도 사라졌다. 육아라는 같은 애환을 가진 엄마들끼리 도시락도 싸오고 부침개도 부쳐 먹고 공기놀이나 림보를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거기다 숲의 맑은 공기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접하고 나면 우울증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자 취미로 하던 바느질로 가방이나 소품을 만들어 팔아 볼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몸이 건강해 지니 그간 하지 못했던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육아와 병행하기엔 무리였음에도 나의 계획은 점점 커져 갔고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또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났다. 결국 나는 아이가 태어난 지 3년 만에 조울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 한 달 간 입원을 해야 했다.

그 뒤, 남편은 되도록 스트레스 받는 활동을 줄이고 집에서 쉬기를 원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산에 가 있었다. 막연하게 나는 아이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경험했던 숲에서의 일상이라고 판단했다. 대신 이전의 일들을 교훈 삼아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몸이 힘들 것이라 예상되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나와 아이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숲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나 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숲 속을 거닐며 엄마와 산책하는 시간을 갖고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놀게 되자 배려심이 많아지는 한편 곤충이나 식물을 관찰하는 관찰력이나 집중력도 좋아졌다.

주말에는 남편과 나무가 우거진 공원이나 휴양림으로 여행을 떠났다. 또, 북한산 아래에 텃밭을 빌려 상추, 고추, 호박, 오이, 토마토, 가지 등을 심으며 내가 키우는 먹거리의 충만함을 맛보기도 했다. 이내 남편도 숲과 텃밭 등이 주는 힐링에 매료되어 나의 숲공동육아를 신의 한 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일상을 누리도록 배려해 주기 시작했다. 숲은 그간 도시에서 병들었던 몸과 마음 그리고 인간관계로 받은 상처를 지닌 나에게 치유할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숲 속은 내게 외로움도 통증도 없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숲은 언제나 내게 말해주었다.

“오늘도 네가 왔구나. 잘 살고 있는 거지? 힘이 든다면 내게 기대어봐.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언제나….”

한번은 서울시에서 마을의 다양한 모습을 찍은 사진 공모전을 열었다. 나는 숲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응모했고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또 그렇게 찍은 사진을 서울시에서 포스터로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찍은 아이와 남편의 사진이 서울시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에 깔렸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보았다고 연락이 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가장 걱정되고 위태해 보이는 가족에서 누구보다 숲 공동육아의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한 가족이 되었다. 마치 소중한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식목일이 가까워 오는 내 생일에 우연히 광화문에 갔다가 산림청에서 나눠 주는 나무를 받아 아파트 베란다에 심었다. 십여 그루의 나무는 아직 한 개의 열매도 맺지 않았지만 잘 자라주고 있다. 덕분에 전에 없이 원예 공부를 시작, ‘도시 속의 타샤 튜더’를 꿈꿔본다. 또, 집 안 공기가 좋지 않을 때 피톤치드나 아로마 향초 등을 피워 나쁜 냄새를 없애고 자연의 향기로 채운다. 나처럼 우울증을 앓거나 아이와의 갈등 등의 문제를 토로하는 사람에게 나는 언제나 숲을 권한다. 나처럼 힘겨운 길을 걸어온 엄마들에게 지구라는 별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간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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