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데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것을 묻는다면 나는 도서관이라고 답하겠다. 내가 어릴 때 도서관은 책 한권 빌리는 것도 쉽지 않은 폐쇄된 도서관이었기 때문에 책을 눈으로 보고 고를 수조차 없었다. 도서카드만이 가득한 수납장에서 제목과 도서기호를 적으면 사서가 문틈 사이로 책을 빌려 주었다. 미지의 책들로 가득한 서고가 궁금했지만 도서카드 속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것도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부였던 나는 교실 하나 크기만 한 도서실에 자주 들르곤 했다. 세계문학전집부터 시집까지 많은 책이 있었지만 도서실이라고 하기에도 작은 공간이었다. 그곳엔 독서실 의자가 비치되어 있어 수업이 없을 때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젠가 여기 있는 책을 다 읽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때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두꺼운 두 권짜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며 가슴 설레하던 때가 있었다. 어른들의 세계를 다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책 속의 세상은 무언가 멋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다. 아직 세상에 발 딛기 전 나에게 도서관은 세상 전체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현대문학 선생님이 현대문학이라는 출판사에서 하는 문학공모전에 내보라고 해서 소설 한편을 써서 냈다. 운이 좋게도 가작에 당선이 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계속 글을 쓰면 어떠냐고 하셨지만 사실 그 이상은 자신이 없었다. 대학에 가서는 특별히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책 속에만 파묻혀 있는 자신이 싫기도 했다.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 경험이라는 게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그 뒤 직장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을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기껏해야 새로 나온 영화의 원작을 읽는 정도였다.
다시 책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아이가 태어난 후이다. 아이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빌리러 이진아도서관이라는 곳에 닳도록 드나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문화강좌도 하고 온돌이 되는 어린이실에서 마음껏 그림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곳 도서관은 다른 도서관과 달리 무척 아름답게 지어져서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육아서도 많이 읽었고 요리책이나 바느질 책도 많이 빌려 보았다. 내 어릴 때에 비하면 도서관에서 할 수 있을게 너무 많았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열권씩 빌려와서 쌓아놓고 읽었다. 독서모임부터 동화 작가되기 등 어른들을 위한 문화강좌도 무료로 진행되었는데 너무 좋은 강의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매일 도서관으로 향했던 열정적인 나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금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남편의 이직으로 서울에서 안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어디에 집을 얻을지 막막했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안양, 우선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가 가까운 곳을 중심으로 집을 알아보았다. 마침 집 바로 옆이 도서관인 곳이 눈에 띄어 마음을 정하기가 쉬웠다. 막상 이사를 하고 나서 코로나 팬데믹이 닥쳐 아이는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았고 나 역시 집에 고립된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내야 했다. 그나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서울에 있을 때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했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곳 도서관에서도 독서모임이 있다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져 모든 게 중단되었다. 그 후, 코로나가 진정이 되고 도서관에서 문화강좌 수업을 시작하였다. 긴 기다림 끝에 도서관이 정상화되고 그림책 테라피 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강사가 전에 직장에 다닐 때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나도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 그 친구가 소개해준 그림책 테라피스트 자격증 반을 수강하고 그림책테라피스트가 되었다. 그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이 중에 수필로 등단한 이가 있었다. 수필을 많이 써보지는 않았지만 도서관에서 수필수업도 듣고 나도 관심이 생겨 조언을 구하고 곧바로 등단을 하게 되었다. 등단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게 오랜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 후로 공모전에도 당선이 되고 책을 발간하고 싶은 꿈도 생겼다. 이렇듯 도서관은 내 꿈을 이루어주는 공간이 되었고 내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누가 처음 도서관을 만들었는지. 그 많은 책을 다 사지 않아도 마치 내 서재처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도서관에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나는 그동안 얼마나 되는 책을 읽었을까. 예전에는 그 두꺼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필사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열정은 많이 식은 것 같다. 대신 에세이를 많이 읽고 철학책이나 틱낫한 스님 같은 분의 책을 읽는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이고 나는 얼마나 나를 다스리며 사는지 점검해 본다. 도서관은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이번엔 또 무슨 책을 빌려볼까. 나를 설레게 하는 도서관. 그곳에 세상 모든 책들이 모여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