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될 수 있는 한 많이 여행을 다닐 것이다. 여행을 다닌 기억은 비슷한 냄새와 향기만 맡아도 행복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첫 번째로 해외여행을 간 곳은 인도이다.
회사를 같이 다니던 언니가 인도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나는 인도에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곧바로 인도로 향했다. 뭄바이 공항에 도착하자 덥고 습한 공기와 향신료 냄새가 가득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다른 나라의 땅을 밟았고 충분이 이국적이었다. 10여 명의 여행자와 가이드가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도착한 날은 이미 저녁.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가던 도중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화려한 디스코텍 앞에 천막을 치고 바닥에서 잠을 자는 이들이 있었다. 불가촉천민이었다. 쥐가 득실한 그곳이 그들의 집이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 빈부 격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인도 영화를 보러 갔다. 모든 장르가 짬뽕된 뮤지컬 영화였다. 극장 안은 모두 남자들뿐 환호성을 지르며 영화를 보는 풍경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고 보니 바깥에는 모두 남자들 뿐 여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기차를 타러 이동했다. 인도 기차역은 정말 복잡하다 플랫폼이 2-30개로 원하는 곳을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나는 3등칸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밤새내내 앉아서 가야한다고 들었다. 1등칸을 타서도 달리는 야간기차 안에서 잘 곳을 찾지 못하면 낭패다. 내가 탄 1등칸은 침대칸이다. 철재로된 침대들이 2층으로 늘어서 있다.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 누우면 된다. 한번은 가이드조차 잘 곳을 못 찾아 복도에 앉아서 자야했는데 나는 잘 곳을 찾아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서 부러움을 샀다. 이렇게 인도는 나를 환영하듯 운이 좋은 일들이 많았다. 다들 인도음식이 맞지 않아 탈이 났는데 나는 음식도 잘 먹고 몸도 건강했다. 음식도 좋았고 사람들도 좋았다.
내가 좋았던 기억 중 하나는 황토길에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다. 옆으로는 농사짓는 인도 사람들이 보이고 한쪽으로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가는 길에 콜라를 파는 매점이 하나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는 길을 한참을 달렸다. 목적지는 닭요리가 맛있는 식당. 우리는 맛난 요리를 먹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지마다 사람들의 감상이 다를 것이다. 실제 일행 중 인도가 맞지 않다고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흥미 그 자체였고 사원을 가든 도시를 가든 시골을 가든 모든 게 즐거웠다. 종교적인 분위기도 좋았고 명상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밤 기차의 매력은 꿈을 꾸고 나면 늘 새로운 도시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나는 이전의 나와 달랐다. 우리나라의 택시같은 오토릭샤는 타기 전 가격 흥정을 해야 하는데 두 세명의 일행이 함께 탄다. 그런데 늘 내가 나서서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도 낯설지만 좋았다.
다음 목적지는 바라나시. 성스러운 갠지즈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라나시의 갠지즈강에 도착한 것은 새벽이었다. 안개 같은 것이 희뿌옇게 시야를 가렸고 한쪽에서는 장작을 피워 연기가 나고 있었다. 진짜 영혼의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장작 위로 시체들이 올려지고 재는 갠지즈강에 뿌려졌다. 갠지즈강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다. 연기는 끊임없이 하늘로 올라갔다. 바라나시는 꽤 복잡한 도시이다. 골목이 너무 복잡해 길을 잃기 쉽다. 나도 한번 길을 잃어 지나가는 아이에게 길을 물어 숙소에 도착한 적이 있다.
한번은 목이 말라 펌프식 수도에서 물을 마시려는데 혼자서는 마실 수 없는 구조였다. 물한 방울이라도 마시려는데 누군가 펌프질을 해주었다. 열 살도 안돼 보이는 꼬마가 죽을 사람 살리는 듯한 표정으로 펌프질을 해주고 있었다. 너무 귀엽고 고마웠다. 내 친구는 동료들과 길을 나섰다가 류시화 시인을 만났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네팔을 갈 수 있다고 해서 나 이외에 두 사람이 다음 코스를 포기하고 네팔로 향했다. 다음 코스는 사막에서 별을 보며 자는 코스였다. 그것도 무척 하고 싶었지만 히말라야의 일출을 보고 싶었다. 네팔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자는 도중 정차역을 놓칠 뻔한 적이 있었는데 호주인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우리를 깨웠다.
그렇게 다시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에 내렸다. 한 밤 중이었다. 가이드가 추천해 준 숙소를 찾아 묵으며 기쁨에 잠겼다. 드디어 히말라야 일출을 보는구나 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렇게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보내고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포카라로 향했다. 그곳에서 유명한 페와호수에 가서 배를 탔다. 그리고 다음 날 일출을 볼 수 있는 사랑고트로 향했다.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새벽에 갑자기 복통이 찾아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을 타는 동안 배가 아프지 않고 한 번도 안 쉬고 올라갔다. 그곳의 에너지가 남달랐기 때문일까. 안나푸르나와 히말라야 사이로 뜬 붉고 말간 해를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도와주어 운이 좋았다.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렀다. 바로 앞 설산이 손에 닿을 듯 했다.
그렇게 네팔에서 환상적인 일정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와 뉴델리와 아그라를 찾았다. 아그라는 타지마할이 있는 곳이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아름다운 건축물로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랑의 위대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큰 무덤을 짓는 게 무모해 보여도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우다이푸르였다. 007의 촬영지로 먹고 사는 곳인데 아름다운 물위의 궁전이 있었다. 숙소는 가이드가 추천해 준 곳이었는데 집 주인 남자가 느끼하게 굴었다.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하는데 남자는 보이지 않고 부인만 아이를 안고 감사의 표시를 했다. 인도는 여자의 지위가 너무 낮다.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도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무언가를 많이 버리고 온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인도가 쓰레기장이냐며 다들 뭔가 버리고 왔다고 한단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침범당한다. 이런 속박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우리가 버린다면 오히려 얻을 것이다. 나는 인도에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다. 다음부터는 그때의 결심처럼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젊은 시절 인도 여행은 내 삶에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앞으로도 내 삶이 그런 여행과 자주 닿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