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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로의 거울

by Mocca

나는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멋진 장소에 가거나 좋은 사람들과 있을때 최소한 셀카라도 찍는다. 하지만 사진에 나온 내 뚱뚱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내 핸드폰에는 온통 풍경사진 뿐이다. 얼마전 수원화성에 갔다가 같이 사진찍자는 말에 "너무 뚱뚱하게 나와서 사진찍기가 싫다."고 했더니 "뚱뚱하면 어때, 사진으로 남겨야지." 라고 해서 충격받았다. 누군가의 입에서 내가 뚱뚱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내 모습이 뚱뚱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지는 않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말랐던 나는 집안에서도 빼빼라고 불렸다. 그리고 결혼전까지 남들이 말하는 날씬한 축에 속해 있었다. 한동안 우울증 때문에 몸무게가 40킬로대까지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고민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거울앞에 서서 위아래로 훑어보면 내가 뚱뚱한게 사실이지만 나의 의식은 오랫동안 들어왔던 빼빼라는 말이 더 익숙하고 곧이어 그렇게 될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살이 찌게 된 것은 아이를 낳고 난 후이다. 결혼 전 몸무게에서 10킬로가 찌더니 그 뒤로 계속 늘고 빠지지 않는다. 내가 먹고 있는 약 중에서도 살을 찌우는 부작용이 있어 아마도 쉽게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온갖 다이어트를 하며 살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다. 키토 다이어트라고 불리는 저탄고지 다이어트, 달걀, 방울토마토 등 한가지만 먹는 다이어트, 샌드위치 다이어트를 비롯, 유명한 연예인들이 다닌다는 다이어트 숍을 거금을 들여 드나든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뿐 살은 다시 찌고 날씬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는 논리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중에 페르난도 보테로라는 화가가 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남미의 피카소로 불린다. 그의 그림은 온통 뚱뚱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모나리자 같은 유명한 그림들을 패러디해 뚱뚱하게 만들어 보는 이가 웃음짓게 한다. 그만의 사회풍자를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한 기자가 물었다. "왜 뚱뚱한 사람들만 그리시는 겁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그림에 뚱뚱한 사람은 없소." 그라는 거울에 비친 인물들은 결코 뚱뚱하지 않은 것이다. 그만의 방식으로 현대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들은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가 살아있다. 육감적인 인물을 아이의 시선을 해석 살집이 있고 관능적이며 토실토실 살찐 모습은 그 만의 미학이 확실하게 살아있다. 내가 보는 시각에서 그의 인물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마른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는 푸근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내가 경험한 바로 몸무게는 심리 상태의 반영이기도 하다. 음식을 거부하고 맛을 느끼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태부터 음식을 매순간 먹고 가지고 다녀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있듯이 우리는 때로 먹을 것을 거부할만큼 사는 것에 절망하거나 먹을 것 외에 낙을 찾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 되어 그만둘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몸매를 적당하게 살찐 그야말로 사회적 시선에서 부러움을 사는 지점에 이르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비만이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살을 빼야한다는데는 동의한다. 가장 고민이 되는 지점은 예쁜 옷을 입고 싶을 때이다. 사고 싶은 옷이 있어도 사이즈가 없기 때문에 살 수 없다. 사이즈가 있더라도 내 눈에서조차 내가 입은 모습이 예쁘지 않다. 그런데 얼마전 단톡방에서 나를 귀엽다고 칭해주는 이가 생겼다. 난 그런말을 들은 적이 없다니까 또 다른 사람이 귀엽다고 한다. ㅋ 정말 난생처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내가 하는 말 때문일까 나의 귀여운(?) 몸매 때문일까. 신기한 일이다. 날씬했을때 내 몸매가 매력적이라고 말한 걸 들어본적이 없는데 뚱뚱해 지고 나서 그런 말을 듣다니. 나의 귀여움은 어디서 오는건지 더 캐묻고 싶은 지경이었다. 나는 늘씬함 대신 귀여움을 얻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쇼윈도에 걸린 예쁜 원피스만은 포기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보테로가 가진 거울이 멋져도 나는 살을 빼고 싶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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