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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

by Mocca

큰 글자책은 노인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구입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화가 모지스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은 큰 글자책으로 사고 싶었다. 이 책의 제목이며 실려 있는 그림들이 너무 좋아 큰 버전으로 소장하고 싶었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져도 이 큰 글자책은 읽기가 좋을 것이다. 그때도 이 책은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나에게 말해줄 것이다. 내 방에도 몇 년 전에 산 모지스의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흰 눈이 내린 마을 풍경이 아름답고 포근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실제로 그녀는 행복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1860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전에 백 살이 넘게 살았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분이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화가이다. 그녀는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그야말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기에 그렇게 유명해 진게 아닐까. 그녀에게 그림은 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멋진 취미였을 것이다. 그림만큼이나 그녀의 말도 멋지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中에서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어야 할까. 자연에서의 삶을 찬미하며 순응하고 개척하는 삶. 나는 그런 삶을 동경한다. 비록 화분 하나 잘 키우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내 주위에 꽃과 나무들만 있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마을 사람들과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퀼트모임, 가족소풍, 마을축제 등 계절에 따라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를 비롯, 폭풍우와 전쟁까지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을 그림에 담았다. 1년을 주기로 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자리가 있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 어떤 부족함이 없어 보여 보는 내내 그림 속의 한 사람이 되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도시에 사는 게 싫었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여고시절. 글 쓰는 사람 중에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나 나름의 컴플렉스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처음 들어 보는 식물이나 곤충들에 관련된 에피소드와 시골생활의 정겨움을 경험하며 살아온 작가들의 사연을 내가 어찌 흉내낼 수 있을까. 자연과 함께 한 경험이라고 한다면 3살된 아이와 함께 했던 숲공동육아가 그런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숲공동육아란 일주일에 두 번 아이와 엄마들이 모여 숲에서 놀고 도시락을 먹고 오는 것이다. 5년여간 숲을 다니며 숲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기분을 어느 정도 느꼈기에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숲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 식물이나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유가 있어 보이고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기만 하다. 불쑥 찾아간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준다. 그늘도 되어 주고 제 주변의 존재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주고 치유해 주며 행복하게 할 줄 하는 신성한 재능을 지녔다. 자연을 가까이 하다보면 자연이 얼마나 아낌없이 우리에게 베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지 깨닫게 된다.

내 나이 오십. 내 또래의 사회생활을 하던 친구들도 점차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여생을 멋지게 보낼 궁리를 하고 있다. 오래전에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주부로 지내다보니 앞으로 살 날도 많은데 남들이 보기에도 버젓한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과연 지금 시작해서 완성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젊은 시절에 비하면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기에 전처럼 초조하거나 하는 것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이제까지 깨달은 게 있다면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 인생은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림책테라피, 수필, 성경공부 등 여러 모임을 하면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죽기 전에 깨달아야 할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깨닫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철학이든 종교든 심리학이든 내가 가졌던 의문을 찾아가는 것이 즐겁다. 그렇게 사색에 잠기다 답답해지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아본다. 젊은 시절엔 영화나 음악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산책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진다. 독서모임이나 전시회 가기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맛난 브런치와 커피를 한잔 하는 것이 낙이 되고 있다. 크고 작은 전시회를 찾아가서 그림을 보고 감동을 느껴 좋은 수필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게 맞물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영성리더인 디팩 초프라에 의하면 인생은 우주의 리듬을 타야하고 그러다보면 바라는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의 소망은 내 안에 모지스 할머니와 같은 열정을 죽기 전까지 키워가는 것이다.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내 주변도 이렇게 평화롭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죽는 날에 나 자신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는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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