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라는 설레는 이름에서의 땅의 취업은 어렵기도 했지만 기회의 땅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해주기도 했다. 처음엔 이 표현이 상투적이고 옛날 말일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표현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기회의 땅이라는 말은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주어진 곳이었을 것이기에 얻어진 별명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기회를 던지는 곳이란 말이고 그만큼 절대적인 기준이 적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와서 다른 곳에서는 찾지 못했던 기회를 찾았던 걸까?
나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도대체 어떻게 취업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 여름방학이었다. 링크드인을 막 뒤져보고 있는데 어떤 작은 AI 스타트업회사에서 인턴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작은 회사였기에 당연히 무급이었고 그냥 봉사활동이었다. 당시에 AI붐이 시작할 단계였기에 그중 하나인 회사인가 보다 생각하고 이력서를 보냈고 며칠 뒤 인터뷰해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에 참석한 디자이너들은 러시아 출신의 여자 둘이었는데 그들의 알아듣기 힘든 영어발음과 출신 때문에 더욱더 그 회사가 가짜회사 같이 보였다. 50%는 믿지 못하겠지만 내 이력에 도움만 된다면야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고 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리모트로 집에서. 무급이고 너무 조그마한 회사여서 내 이력에 도움이 될지도 확신이 서지 않아서 할지 말지 고민을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하기로 한 것이었다.
솔직히 인턴으로서 내가 맡은 일은 굉장히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들이었다. 인턴기간이 끝나자 도대체 이 이력을 가지고 어떻게 취업하지 하는 걱정을 쏟아냈다. 근데 남편이 나를 답답하게 보면서 말했다. "AI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도 있는데 도대체 왜 그걸 못쓰고 있어?"
나는 또 답답해하면서 답했다. "거기서 뭘 디자이너답게 제대로 한 게 없는데, 그리고 그 회사는 해봤자 쪼끄만한 스타트업이잖아, 그런 회사를 누가 알아주겠어"
남편이 다시 답했다. "미국 회사는 한국 회사만큼은 안 그래, 네가 어떻게 레주메에 쓰냐에 따라서 봐, 네가 레주메에 쓴 그대로 볼 거라고 생각해 봐,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게 아니라, 그리고 회사 크기로 니 실력을 보는 것보다 관련 분야나 한 일이 비슷하면 관심 가질 거야. 부풀리려고 하지 말고 한 일 그대로 쓰면 돼"
듣고 보니 내가 가진 조건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방학 동안의 인턴 경험도 있는데 이걸 잘 살려야겠다는 생각과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인턴기간 미팅시간 동안 어깨너머로 들은 AI 관련 지식들도 있겠다 그쪽 분야의 회사들로 집중해 보자는 생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련 회사들로 지원을 계속했고 3-4달 정도 서류탈락을 계속하던 중 한 중견기업 사이즈의 AI 회사로부터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이어링 매니저와 인터뷰 후 과제전형과 white board challenge 등 다음 인터뷰들을 통과한 뒤 결국 이 회사와 인연이 닿아 오퍼레터에 싸인을 함으로써 나의 첫 미국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만약 내가 지금은 있지도 않은 없어진 그 작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지 않았다면 졸업 후 첫 회사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질문해 보면 당연히 No다.
작은 경험처럼 보이는 것도 하찮게 보지 않고 내가 어떻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를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이 미국에 좀 더 많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 시기에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사실 인터뷰 당시에도 내 영어소통 실력은 형편없었다. 프레젠테이션도, 자기소개도 달달달 외우는 수준이었고,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쉬이 하는 성격은 못돼서 얼굴은 빨개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할 수 있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영혼을 바쳐서 즐겁게 했을 뿐이었는데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를 준 첫 회사에게 지금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