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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지옥

by 져니킴

미국에서의 첫 회사에 입사하고 정말 매일매일이 배움의 하루였다. 디자인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영어와 미국 회사문화가 매일 나의 뇌에 스폰지처럼 흡수되느라 바쁘게 하루가 지나갔다.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내가 디자인한 부분을 많은 팀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해야하는 일이 생겼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되는 5분여의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 준비한 말이었어야 말할 때 꼬이지 않았기에 회사 업무가 끝나고 매일 준비했다.

그렇게 비슷한 All-hands 미팅이 거의 매주 있었다.그러다보니 디자인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프레젠테이션 하라고 할까봐 겁 먹은 적이 많았다. 프레젠테이션 준비과정과 발표는 나름 재밌었지만 3명 이상의 사람들이 내 얼굴을 주목하면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프레젠테이션 할 기회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은 제대로 훈련하려나?...'


그 시간들이 괴롭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제일 열심히 준비했던 순간은 회사 부서의 VP에게 발표할 때였다. 두 번 정도 했어야 했는데 듣는이가 디자이너가 아니다보니 준비할 부분이 만만치 않았다. 시각자료 또한 Placeholder text 보다 현실적인 수치를 보여줘야 헷갈려 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디자인을 설명할 때에도 전문적인 용어보다 더 쉽고 직관적인 용어로 바꿨고 시각적인 부분까지도 디자인 백그라운드가 없는 사람이 봐도 이해할 수 있게끔 다양한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구했다. 발표는 성공적이었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 마음이 너무 커져만 가니 내 자신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까지 무서워할까?


일기를 써보니 답이 나왔다. 발표하는 자리를 나의 능력을 평가받는 자리로만 생각하고 잘 못하면 망신받을까봐, 내 자리가 없어질까봐 미리 겁먹고 있었다.

그에 비해 발표를 잘 하는 동료가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을 보니 그 친구는 비교적 그 자리를 소통의 자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되니 전달을 잘 하려는 목표에 맞춰있고 또 그러니 나보다 덜 떨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사실 내가 언제부터 프레젠테이션에 두려움이 생겼는지를 떠올려보니 대학때까지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졸업 후 한국에서 인턴시절 사람들 앞에서 면접관으로부터 팀 발표 중 압박면접으로 큰 당혹감있는 경험을 한 뒤로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첫번째 미국 회사에서 그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채 우연한 기회에 AI 및 소셜미디어 기업인 메타로 이직했다.

메타로 이직 후애도 발표할 시간들은 여전히 많았다. 특히 소셜미디어 회사 특성상 나처럼 로봇같은 사람 말고도 자기 생각을 너무나 유창하게 잘 표현하는 동료들이 매우 많았고 또 그 방식들이 꽤 다양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나의 기억, 트라우마의 실을 없앨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회사 내에서 하는 토스트매스터즈 그룹이 있다는 걸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입을 눌렀다.

모임에 가보니 나처럼 긴장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많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작은 한마디에도 박수쳐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문화여서 내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다시 자신감이 붙는 걸 느꼈다. 그전에는 말 한마디에도 여러 번 머릿속으로 검증을 되내이고 혹시 이상하게 들릴까 걱정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이 모임시간 동안만큼은 그런 걱정은 덜했다. 그러면서 과거 내가 가졌던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가지게 된 어떤 트라우마같은 실이 점점 얇아짐을 느꼈다.

그래서 이 오래된 모임이 현재는 약간 옅어진 듯 하지만 1924년에 생겨난 이후 여지껏 명맥을 이어올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외향적이기로 소문난 미국인들도 사람들 앞에서 잘 말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걸 느끼며…인간은 누구나 비슷하다는 걸 다시 느낀다.


지금도 나는 조금씩 ’소심하게‘ 매일 그리고 매주 혹은 매달 퍼블릭 스피킹에대한 도전이 진행중이다.

디자이너가 아니고 다른 직업을 찾더라도 프레젠테이션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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