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우 Aug 20. 2023

빨간 장미꽃과 짝사랑

내가 좋아하는 꽃은 무엇일까? 여자들은 대개 꽃을 좋아하는데 나는 집에서 꽃은커녕 식물도 거의 키우질 않고 있다. 우리 집에 있는 화분은 모두 다 우리 아이들이 심은 토마토와 같은 식물이거나 학교 또는 체험활동으로 만든 다육이, 행운목 화분이 전부다. 그렇다고 꽃이나 식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귀한 식물들이 나의 손을 거치면 오래가지 해서 거부할 뿐이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것을 사양한다. 우리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식물을 1년에 한 번씩 키우거나 화분 만들기 활동을 하면서도 혹시나 죽을까 봐 아이들에게 자신의 화분에게 적당한 물과 햇빛과 바람을 잘 쐬도록 지도해 주고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전에는 자기 화분은 집으로 가져가라고 지도한다. 학생들의 화분은 집으로 가져가는 반면 나는 집으로 가져가지 않으니 방학 동안 홀로 교실을 지켜내는 숙명을 가진 화분들은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지켜낼 방도가 없으니 거의 사망에 이른다. 식물의 임종 전 마지막 회생의 시기조차 놓쳐버린 식물의 사체를 처리해야 하는 나는 식물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깨끗하게 정리해 준다. 식물들에게 잔인한가? 아무튼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나이므로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지만 잘 유지하지 못하는 손길 탓에 꽃은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꽃은 있다. 요즘 예쁜 꽃들이 정말 많지만 나는 빨간 장미를 좋아한다. 특히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받을 때의 기분은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붉은 장미 - 사랑, 아름다움, 낭만적인 사랑, 용기, 존경, 열망, 열정.
붉은 장미 한 송이 - 당신을 사랑합니다.
붉은 장미 꽃봉오리 - 순수, 사랑




대학교 1학년 3월. 대학생활이란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를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점심시간마다 선배들이 사주시는 점심을 얻어먹는 일이었다. 한 번은 교내 식당에서, 그다음 날은 학교 앞 분식집에서, 또 다른 날은 중국집에서. 2학년, 3학년, 4학년 선배들을 만날 때마다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니니 선배들은 몇 명 되지도 않는 후배들에게 열심히도 점심을 사주셨다. 그러다 우연히 예비역 선배가 사주는 점심을 얻어먹다가 졸업한 남자 선배를 알게 되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 그 자리에서  선배에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는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단 술도 잘하고 게다가 담배까지 했다. 그 시절 담배냄새라고는 일절 모르던 내가 그 선배에게서 나는 체취가 담배냄새인지도 모르고 향수라고 생각했다는. 사랑에 단단히 그것도 바보같이 취해있었던 시절이었다.


선배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학교 도서관에 자주 온다고 했다. 강의실을 이동하다가 가끔씩 학교 도서관을 지나가야 는데 혹시나 도서관 앞 커피 자판기 앞에 선배가 나와 있을까 하며 남몰래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선배를 발견할 때면 인사도 하고 자판기 커피도 가끔씩은 얻어 마셨다. 여러 차례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삐삐 번호를 알게 되었다. 삐삐를 통해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주고받고 연락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비 오는 가을날, 나는 정보관에서 홈페이지 만드는 과제를 하다가 건물 밖으로 나오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선배는 나에게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주고선 홀연히 사라졌다.

'어, 이건 뭐지? 무슨 의미일까? 나에게 왜 주는 거지?'

사실 선배에게는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배가 직접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아 들고 걸어오는 내내 머릿속은 복잡하고 어떤 것도 물어보지 못해 답답했다. 나는 혼자 선배를 짝사랑을 할 뿐이었고 선배에게 나는 너무나 어린 대학교 1학년 새내기일뿐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학년 겨울방학이 되었고 집에서 지내던 나에게 선배는 연락했다.

"잘 지냈니?"

"네. 선배도 잘 지냈어요?"

"응. 잘 지냈지. 그런데 너에게 전해줄 말이 있어. 나 곧 결혼해."

"네? 결혼이요?"

이제는 연락을 못할 것 같다며 마지막 안부를 전하는 그에게 다른 말은 못 하고 행복하게 잘 사시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결혼소식에 마음이 먹먹했고 나의 짝사랑은 이렇게 끝났다.




그 이후로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보면 가끔씩 그 기억이 되살아난다. 특히 라디오에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란 노래를 들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선배에게 빨간 장미꽃을 받았던 날은 비 오는 수요일이었다.


깊은 짝사랑의 결과였을까? 아무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빨간 장미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지금의 내 남자는 나에게 꽃 선물을 딱 한 번 했다. 꽃은 그에게 가성비에 맞지 않는 선물이다. 가격이 비싼데 금방 시들고 사라지는 선물이므로. 예전에 국이 예쁘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는지 그것도 한 겨울 12월에 국 한 다발을 들고 나타나셨다. 국은 예뻤지만 겨울과 어울리지 않는 그 꽃다발을 선물 받은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국은 잘못이 없다. 단지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을 선택한 그가 잘못인 것일 뿐.




10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선배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쪽지로 간간히 노래를 전해주던 선배에게 처음에는 답장을 보냈지만 그다음에도 몇 차례 안부 쪽지와 노래를 전해주던 그에게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다. 짝사랑은 그때의 기억으로 간직해야 했다. 빨간 장미꽃을 전해주던 선배로만 남아주길.



*사진출처: Unsplash



저의 꽃 취향은 빨간 장미꽃입니다. 이번 글에는 빨간 장미꽃과 관련된 대학교 1학년 시절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당신의 꽃 취향은 어떤가요?



이전 08화 착각은 금지, 당신은 연예인이 아닙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