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집은 깨끗하게 잘 정리된 집이다.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거나 아기자기하고 여기저기 많은 소품들로 예쁘게 꾸며진 집들도 물론 좋다. 하지만 우선 청소하기 쉬운가를 먼저 고민하는 나는 많은 가구들과 물건들이 가득한 집은 나의 선호도에서 제일 후순위로 밀린다. 이런 취향은 나이가 점점 드니 더 확고해지는 것 같다.
TV를 거의 보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EBS의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매주마다 소개되는 다양한 집들을 보면서 미래에 집을 건축하게 된다면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도 하고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애청한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비워야 보이는 집>이었다.총 3개의 집소개를 했는데 그중에서 미니멀 라이프 4년 차 가정을 소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파트에 살 때에는 집안이 온갖 살림살이로 가득 찼었는데 미니멀 집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이사를 오면서 짐을 줄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또한 짐을 정리하면서 목표와 성취감이 생겼고 깨끗한 집으로 인해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 '집은 곧 휴식이요, 삶이며 행복이 가득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올바른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내 삶에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집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공간이고, 물건을 비우면 공간이 보이며 그 공간이 여유와 삶으로 채워진다'는 말에 매우 공감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을 때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7개월 되던 때였는데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나의 목표는 우리 집을 콘도 또는 호텔처럼 깨끗한 환경으로 유지하는 것, 그리고 쉼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짐으로만 채울 것이며 청소를 하느라 나의 수고와 노력이 들지 않아야 함을 우선순위로 생각했었다. 거실에 소파를 두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남편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캠핑의자 몇 개와 안마 의자 1개, 거실장 1개, 작은 책장 1개 로만 버티던 시절이었다. 이사 온 뒤 처음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셨던 시부모님은 거실이 너무 휑하다면서 소파를 놓는 게 어떻냐고 말씀하셨지만 소파 대용으로 식탁을 8인용으로 구입했다고 말씀드리며 식탁에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책도 보려고 했기 때문에 소파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었다. 또한 아이들의 로망인 침대도 방에 들여줄 수 없었다. 물론 안방에도 침대는 없다. 침대를 들이기 시작하면 침대가 차지하는 공간을 무시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후에 침대를 정리해야 하는 순간마저도 돈을 들여야 버릴 수 있는 것이 싫었다. 이부자리를 깔고 정리하는 수고가 있긴 하지만 침대가 없으니 이불만 정리하면 넓은 공간을 모두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들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물건을 없애고 열심히 정리하는 취향을 가진 나와는 달리 인터넷 쇼핑과 1+1을 좋아하고 많은 물건을 소유하기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 남편으로 인해 스트레스는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구입하는 물건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듣고 보면 그럴듯한 이유인 것처럼 들리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과 뜯지도 않은 박스들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확 올라온다. 연애 초기에는 그가 이런 취향인 줄 전혀 몰랐다. 가끔씩 그의 집에 갔을 때 정리가 안된 것을 보았을 때는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없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정말 그는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었다.(갑자기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을 고발하는 것 같은 기분) 반전인 건 그는 군장교로 제대했다는 사실이다. 장교로 제대한 것과 정리를 잘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를 통해 알았다. 일단 저렴하면 여러 개를 주문하는 그에게 타박도 하고 말리기도 했지만 부부싸움만 할 뿐 나아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집안은 점차 박스로 채워져 갔다. 물건이 많아 어지럽다고 했더니 남편은 물건을 놓기 위해 정리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물건들은 정리대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뜯지 않은 택배 상자와 비닐포장도 점점 늘어났다. 집에 오면 청소는 간단히 하고 편안히 쉬고 싶었던 나의 소망과는 달리 퇴근하고 나면 집안을 청소하는 일이 너무나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미니멀을 추구하던 나의 목표는 어디로 갔을까,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수고는 어디로 갔냐 말이다. 휑하고 넓었던 우리 집은 그가 구입한 물건들로 채워지고 있다.(이전 집에 살 때도 그의 물건들은 많았다.) 나의 짐과 아이들의 짐을 열심히 비워도 그뿐이다. 결국 비워야 할 짐은 그의 짐들인데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다. 제발 좀 치워달라는 이야기에 이제 나이 50이 가까워진 그도 이제야 조금씩 수긍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나이가 들면 청소도 물건 정리를 할 힘도 없을 것이니 하루라도 젊었을 때 우리는 미니멀하게 사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직도 청소와 정리는 나의 몫이라는 슬픈 현실.
한 달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정리수납전문가인 정희숙 컨설턴트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이 한 번은 나와 만나야 합니다. 나와 물건이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정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며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공간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집이 가벼워지면 내 삶이 가벼워지며 집에서 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나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원하고 바라는 말들을 그녀가 대신해주고 있었다. 현재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이 나와 만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할까? 방학 동안 물건들을 정리하고자 했지만 여름방학 내내 아프고 바빴다는 핑계아래 집안 정리를 하나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법. 나와 가족을 사랑하기에 지금보다 조금 더 정리된 집을 갖고자 하는 소망은 버릴 수가 없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하루에 1가지씩만이라도 정리해 보자 다시 다짐해 본다.
이번 주말에 아이들과 남편이 뜯지 않은 택배 상자들을 열고 종류별로 물건을 정리했다. 물건을 정리하는데만 1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분명히 정리를 할 때에는 세명의 아이들과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막내만 내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다. 두 명의 아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정리할 물건들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였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정리된 물건들을 보고는 정말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남편에게 제발 쇼핑은 신중하게 하길 바란다고 신신당부했고 그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늦은 밤, 남편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물건들을 찾아 열심히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남편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사진출처: unsplash
제가 좋아하는 집은 예쁘고 인테리어가 잘된 집도 좋지만 오래되었어도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좋아합니다. 이번 글은 이런 나의 취향과는 달리 정리를 전혀 못하는 남자와 사는 남편과의 에피소드를 담아보았습니다. 지금보다 정리가 잘된 집에서 살고 싶은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