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있냐 그 이유 나도 있다 그 이유
상담에서 인간관계 갈등을 호소하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크게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는데 나는 많이 생각하고 배려했는데 남들이 그런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아 서운하고 그 감정이 깊어지면 원망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인간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인간은 다 그래 라는 생각에 대인관계에서 피해의식이 생기고 점점 사회활동에 회피적이게 됩니다.
어떤 경우는 남에게 갖는 원망의 원인은 실제로는 남이 아닌 나에게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명확한 피해나 큰 상처를 받으면 화가 나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잘못되고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피해를 받았다는 생각이나 상처의 크기가 어떤 사람들은 보통의 경우보다 눈에 띄게 큰 경우가 있습니다.
G는 중견의 IT기업에서 일하는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입니다. 1일 12시간에서 14시간을 일을 하고 스스로도 꽤 능력 있다고 생각하지만 회사가 자신에게 합당한 보수와 인정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분노와 원망이 큽니다.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이직을 하며 스스로의 몸값을 키워왔지만 인정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을 지속적으로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들마저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하며 이해해주지않으니 너무나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호소합니다.
몇 회에 걸친 상담에서 G는 자신의 억울함을 반복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자신이 이번주에 일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밥도 못 먹고 운동이나 취미생활도 하지 못하고, 남들이 다 보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하는 월드컵 경기도 보지 못하고 일만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일을 하느라 집안일을 돕지 못했는데 가족들은 그런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아 결국 싸웠다고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의 사람의 경우 상황을 융통성 있게 바라보는 능력이나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하는 능력이 낮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상황이나 사람을 통제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경우도 많고요. 어쩌면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짝꿍이기도 하지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남의 마음을 보기 힘들고 보더라도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공감을 잘 못하거나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갇혀있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엎치락 뒤치락하다 보면 결국 나는 억울해지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과 있으면 불편해집니다.
G가 얘기합니다.
- 지난주에도 너무 화가 났어요.
- 어떤 일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을까요?
- 저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월드컵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회사의 공용공간을 할애해 주었어요. 나는 일을 하는데 사람들은 경기를 보며 환호를 하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저와 같은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어요.
- 나는 같은 연봉을 받고 일하는데 다른 동료들은 놀고 신나 있는 모습을 보니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셨겠네요.
- 맞아요. 그러면서 그들은 너도 놀아라. 제발 퇴근 좀 해라. 너는 네가 원해서 그렇게 일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저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거든요. 일이 계속 있고 제가 더 하면 더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고 회사에서도 그걸 원한단 말이에요.
- 네. 나는 회사를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개인 시간까지 갈아 넣으며 일을 하는 건데 그게 마치 내가 좋아서 하는 것처럼 얘기하니 부당함과 억울함을 느끼셨나 보네요.
- 네. 맞아요. 하지만 다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보수를 받는다는 게 너무 화가 나요.
- 보수가 나에게는 인정의 척도인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는 거네요. 그런데 그 화의 크기는 얼마나 큰가요?
- 정말 커요. 일을 진짜 많이 하거든요.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씩 해요. 제 생활은 하나도 없어요. 이번 연봉협상에서 충분히 인상이 안된다면 정말 그날로 회사를 안 나가고 싶을 정도예요!
- 네. 책임감이 엄청 강하신 분인데 그런 책임을 무기처럼 던져버릴 만큼 크게 화가 나는 거네요.
- 네 맞아요. 너무 화가 나요.
- 그런데 그 화의 크기는 적절한가요? 사실 회사에 다니면서 자신이 충분히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죠. 하지만 누군가는 4 정도 화나고 누군가는 9 정도로 화가 납니다. 화는 나고 억울할 수는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많이 화가 날까요? 거기에는 회사가 아닌 나의 요인이 있을 수 있거든요.
상담이 끝나기 전, G가 '화가 날 일이지만 그 화가 적절할까요? 나에게 분노를 일으킨 생각의 전제는 정말 참일까요?'라는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다음 상담에 온 G는 자신은 화를 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아마도 회사에 팀 인원을 충원해 달라고 했다면 혼자 힘들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자신은 혼자 모든 영광을 받고 싶어 충원을 건의하지 않았고, 결국 힘들었던 것은 자신의 선택 때문이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제야 G는 사람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이해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는 화가 나지 않았다고요.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 공감은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공감만 지속된다면 그것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감으로 억울함과 분노가 진정되면, 자신의 생각이 정말 옳은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의지하는 것이 아닌, 나의 생각을 객관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공감하고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은 피아노처럼 연습하면 할수록 늘어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 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느껴보려고 노력하면 결국은 나의 생각을 풍요롭고 여유 있게 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나에게 이유가 있고 그것도 옳지만,
상대에게도 이유가 있고 그 이유도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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