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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ul 04. 2024

추천이야 의무야?

네가 알아서 해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면 어떤 방식으로든 적응한다. 그 문화에 흡수되든, 경계나 밖에서 얼쩡이든, 섞여서 혼용되든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해는 어떤 식으로 적응할지에 대해 우당탕탕 하는 시기였다. 나는 그렇게 융통성 있는 편이 아니었고, 쉽게 설득당하지도 않아 어디서나 둥글둥글 잘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간다는 한인교회에 가지 않았고, 굳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그랬다. 굳이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살던 하우스 메이트 언니의 딸이 나에게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는 유치원 때, 한국에서 영국으로 엄마와 함께 와서 런던에 산지 1년이 넘었고, 그 사이에 적응을 했음에도 아이들과 찐친을 만들기는 힘들어했었다. 초딩이 된 아이가 대학생인 나에게 진심으로 하는 충고였다. 아이가 나를 보고 How are you?라고 하면 난 그때그때 진짜로 말했다. 가끔 bad이고, 때로 Fantastic이고, 또 어떤 때는 sad였다. 장난이기도 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얘들이 언니에게 How are you?라고 묻는 건 진짜 물어보는 게 아냐. 그냥 좋다고 하면 돼. 안 그러면 아이들이 언니랑 친구 안 해."

"난 친구 안 해도 되는데."


못 말리겠다는 듯이 이마를 탁 치고 나를 봤던 아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실제 모든 순간 눈치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은 아니었다. 문화적 차이를 떠나 나는 원래 감성적이지 않고, 설령 그런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난 너희가 생각하는 대로 맞추고 싶지 않아.'   


미국에서 나는 놀랍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럽게 고집이 셌던 거다. 그렇게 딱 부딪친 사건이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상담심리로 석사를 했었기 때문에  이미 이수한 전공과목들이 있었다. 그중에 진로 상담이 있었는데, 박사과정에도 필수이수 과목으로 진로 상담이 있었다. 담당교수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진로상담을 꼭 다시 수강해야 하는지 물었다. 진짜 수업을 들었는지 서류를 떼오라고 해서 한국 대학에서 영문 성적증명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결론은 다시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냐고 물으니 넌 한국어로 배웠으니 다시 영어로 미국의 진로상담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배운 책도 미국에서 수입된 원서였는데 말이다. 그때, 교수가 그랬다.


"I recommend you to take the career counseling class again."

"Is this a real recommendation or compusary?"  


사실 난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왜 추천한다(recommend)고 했는지도 안다. 그냥 의례 하는 교양있는 말일거다. 또 교수가 들으라고 한 이상 안 들으면 난 필수과목을 놓친 것이니 졸업을 못하고 그것은 내 선택이다. 그 선택의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니 의무나 강요가 아니다. 교수는 추천할 뿐이고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결국은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에게는 선택도 추천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라면 그냥 '들어'라고 할 것을 교수가 (망한 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 나는) '추천한다'라고 하는 것이 얄미웠던 것 같다. 꼭 그때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두드리는 모든 문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기도 바빴고, 내년의 학비를 걱정하며 열심히 GA와 장학금을 구하고 있었다. 외로웠고 불안했다. 전체 대학에 한국인이 별로 없었는데 놀랍게 우리 전공에 박사과정 한국인이 한 명 있었다. 박사과정 들어갈 때 멘토멘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내가 한국인이니 그녀가 내 멘토가 되었던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을 때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끝에 이렇게 답이 왔다. '같은 연구자로서 fairly 서로 도울 수 있는 건설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멘토는 그녀에게 해 준 것이 없고, 한국에서와 같은 선후배관계는 기대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나 귀찮게 하지 말고 너 할 일 알아서 해. 쯤으로 해석이 되었다. 맞다! 외국에서 사는 게 이런 것이었지! 아직 부탁한 것도 없는데 거절당한 기분이었다.     


네가 알아서 해.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 나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 맞는데 미국에 발을 디딘 그 순간 모두가 나에게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니 과부하가 걸렸던 것 같다. 아는데 힘들고, 아는데 답답해서 누구라도 조금 상냥해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아쉬운 것은 난데 왜 나는 그들이 친절하길 기대했을까. 미성숙한 난 그렇게 외로운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호의와 관심을  사람들이 있었고, 모든 문이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것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음이 사람들에게 닫혀있었다. 나는 적응하고 싶지 않으면서 다른 것이 발견되면 당황했다. Freedom COSTS. 자유에 비용이 든다는 것은, 금전적 비용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의 책임을 내가 오롯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임을  의향이 있었는데,  그렇게 힘들었을까?


만족지연을 통해 얻고자  마시멜로. 내가 마시멜로를 정말 좋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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