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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un 20. 2024

자소서 잘 쓰는 법

돌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

15년 이상 과거의 자소서 잘 쓰는 방법을 2024년에 비법이라고 뻥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통용될 수 있는 정수는 있지 않을까?


반년 정도 공부해서 GRE를 고득점으로 클리어하고, 한 달 만에 수년간 고시처럼 봐오던 TOEFL 점수도 만족스럽게 받아내니 자신감이 한껏 고취되었다. 하지만, 진짜 지지부진한 작업이 남아 있었다. 영어로 된 미국의 대학교 박사과정 사이트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각 대학의 교수와 그들의 연구가 나의 학업계획과 맞는지 점검해야 했다. 지금처럼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잘해야 '마이퀵파인더'라는 단축키를 누르면 영어 단어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미국에 대학은 또 뭐가 그리 많은지. 상담심리를 가르치는 학교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학비가 비싼 학교는 돼도 못 들어가니 아예 잘 읽어보지도 않았다. 돈 되는 학문이 아니어서 그런지 자괴감 느끼지 말라고 그런 건지 아이비리그에는 상담심리 박사과정이 없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뉴욕 제치고, 보스턴 제치고 비싼 땅에 있는 학교들은 대충 훑어만 봤다. 사립대 제치고 주립대 위주로 상담심리 전공이 있는 학교는 눈이 빠지게 검색했다. 학비, 교수의 연구이력, 상담심리 전공 프로그램 특징, 입학 관련 정보, 외국인 학생을 받는지 여부까지 각 항목별로 정보를 찾아 엑셀에 취합했다. (문과 재질이라 정리를 참 좋아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한 학교당 지원하는데 드는 비용이 60~ 100달러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지원하는데 책정한 금액은 100만 원 이하였기 때문에 알아본 학교 중에 가장 적절한 학교 10군데를 뽑아, 각 입학사정에 맞게 SOP, 이력서, C.V 를 준비했다. SOP(Statement of Purpose)는 자기소개서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학업 계획이나 내가 왜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너희 학교와 연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를 설득하는 글이다. 학교마다 물어보는 질문이 조금씩 달라서 돌려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공부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학업계획서는 전략적으로 썼다. 나의 진로에 대한 석사 논문과 외국인이라는 특징을 고려해 미국 교수들이 그래도 관심을 가질만한 분야를 택했다. 진로 상담과 외국인인 내가 도움이 될 만한 다문화 상담 쪽으로 엮어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굳게 다짐하고 간들 가서 생각이 바뀌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러니 우선은 붙고 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다음에 가서 처음 주제 그대로 논문을 써도 되고 다른 주제에 필꽂히면 바꾸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야 했다. 대학교 때 한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석사 때 했던 교내 행사와 해외학술탐방 경험, 연구소에서의 워크숍 코디네이션과 학술대회 발표와 투고 하나하나 까지 모든 경험의 티끌을 끌어모았다. '야! 이런 것까지 쓴다고?'라고 할 만한 사소한 경험도 국문학도의 창작의 힘을 빌어 아름답게 짜 맞췄다. 소심해서 쌩으로 거짓말은 못했다. 해서도 안되지만 할 배포가 없다. 하지만 작문실력은 참 중요했고 나는 대학입시 논술도 교내 탑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영어로 쓰려니 영작실력이 절로 늘었다. 내가 내 삶을 그렇게 꼼꼼히 들여다본 적이 있나 싶게 나의 1페이지부터 100페이지를 찾고 그 행동과 선택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쓰다 보니 내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내가 이렇게 훌륭한데 네가 어떻게 나를 안 뽑겠니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감이라는 것도 학습하고 반복하면 큰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고칠 수 있는 만큼 고치고 완성했다고 생각하면 언니에게 리뷰를 부탁했다. 그 당시 하버드를 졸업하고 미국 굴지의 IT기업에 다니던 큰언니가 중요한 서류의 영문 수정을  도와줬다. 이미 MBA에 도전할 때 SOP를 질리도록 썼을 언니는 정말 그 분야에 어떤 누구 보다 실력자였다.  마지막에 essay edge에서 비문과 틀린 문법 수정을 위해 유료로 점검을 받았고, 서류를 보내기 전에 연구소 소장님이자 나의 노령의 교수님이 행운과 축복을 빌어주셨다.


"네가  글을 매일 아침 일어나면 10번씩 읽어봐. 그럼 네가 어떤 글을 썼든   사람이 되는 거야."

"교수님 저 그 사람 맞는데요."

"그러면 완전히 네 것이 되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키스해."

"여기에요?"


교수님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의 유학에 대한 바람이 그 당시는 너무나 간절해서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프린트한 SOP와 지원서에 나는 입을 맞췄다.  나의 염원이 인터넷을 타고 미국의 한 번도 본 적 없는 교수의 마음에 닿기를 바랐다.      


"간절히 바라잖아.  절실한 마음이 닿으면  진짜 이루어져. 그게 연금술이야."       


스머프에서 가가멜이 매번 실패했던 그 연금술말인가? 스머프를 넣으면 금이 된다고 믿어 잠자리채 같은 거 들고 사냥을 다녔지만 매번 실패하고 가가멜은 한 번도 금을 만들지 못했다. 가가멜은 못했지만 나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험 성적과 자소서를 쓰며 한 껏 들어갔던 어깨 뽕은 반복되는 거절 메일에 점점 쪼그라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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