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아무리 차가운 돌이라도 3년만 앉아 있으면 따뜻해진다는 속담이 있다. 나도 3이라는 숫자를 미신처럼 믿는다. 소개팅을 하면 적어도 3번을 만나보고 결정하는 것, 친구와 싸워도 3번의 기회는 주는 것, 가위바위보를 해도 삼세판이 기본이다. 새로 알바를 시작했을 때,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적어도 3개월은 그냥 한다.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실수를 해도 우선 버틴다. 단순 아르바이트 같은 경우 3개월이면 보통 적응하게 되어 있다. 그 시간이면 그 일의 본질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알바가 아닌 직업이나 학위 같이 복잡한 일일 경우에는 3개월은 부족하다. 3년. 그래 3년은 해봐야 한다.
대신 적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다.
연말에 학년이 종료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5월에 학년이 종료되고 3개월 정도의 여름방학을 가진다. 보통 5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가 여름방학이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듣고 논문 지도도 받고 GA랑 다른 학교 활동이 많이 있는데, 방학이 되면 주 20시간의 GA업무를 제외하고는 할 일이 없다. 나의 지도교수 같은 경우 방학 때는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을 학기가 시작해야 줬다. 방학기간은 펀드를 받는 다른 연구를 하고 월급을 주지 않는 학교 업무는 막아 놓았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많아도 논문 진도가 빨리 나가질 않는다. 하루만 해도 무려 24시간인데 한 주에 168시간 중에 오직 20시간의 고정 스케줄만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6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학원 가고 9시까지 학교에서 수업 듣고 밤 6시부터 아르바이트하고 12시에 퇴근하던 대학시절의 과도한 열정이 여전히 남아서 인지 생산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내가 공부하던 Washington State University는 Pullman이라는 지역에 있다. 정말 작은 시골인데 캠퍼스 타운이라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다시 말해 세상 재미없고 갈 곳 없는 곳이다. 차를 타고 30분을 가면 허허벌판에 월마트와 윈코 같은 큰 마트가 나오고 캠퍼스 타운을 벗어나면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이 걸어서 가기 어려울 정도로 뚝뚝 떨어진 곳도 많았다. 과거 윈도우 배경 화면에 초록초록한 밀밭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풀만의 밀밭이다. 밀밭. 1시간을 달려도 나오는 게 밀밭뿐인 곳이 풀만이었다. (더 달리면 1~2시간 동안 사막 같은 황무지가 나왔다.) 정말 쓸데없이 넓었다. 이래서 미국을 대륙이라고 하는구나 실감하곤 했다.
적응하겠다는 목적으로 2년 차가 끝나는 여름방학에 한국에 가지 않았다. 굳이 그랬다.
시간을 정해서 Rec Center에 가서 세상 싫어하는 운동을 했다. 몇 번이나 포기했던 수영 레슨을 또 신청했고 교내 봉사활동을 나갔다. 아파트 뒤에 빈 땅을 방학 동안 텃밭으로 분양받아 농사도 지었다. 3평 크기의 텃밭이었다. 퇴비를 따로 주지 않아도 대륙의 비옥한 땅과 뜨거운 태양 아래 매일 물만 줘도 작물이 쑥쑥 자랐다. 상추, 파, 오이, 가지, 호박, 토마토 같은 것들을 심었는데 호박이 내 무릎아래 다리 보다 더 크게 자랐다. 자고 일어나면 가지나무에서 가지가 화수분처럼 늘어나 있었다. 밭에 물을 주러 가면 인기척에 놀란 들쥐들이 후다닥 땅속으로 들어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던 큰 쥐들이 쥐구멍으로 쏙쏙 들어갔다 내가 지나가면 다시 나왔다. 매일 할 일이 추가되었지만 지루하고 외롭긴 마찬가지였다. 3평의 밭은 풍년이었지만 그 작물을 다 먹을 사람이 없었다. 차를 타고 학교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런 일도 없는데 눈물이 주르륵 났다.
여름 방학에 비해 겨울 방학은 3주밖에 되지 않았다. 10월부터 듬성듬성 눈이 내렸고 11월부터는 줄곧 내렸고 12월에는 눈에 파묻혀 지냈다. 차바퀴를 스노타이어로 바꾸지 않으면 불법이어서 일반타이어로 다니면 벌금이 붙는 곳이었다. 그래서 12월에는 다들 두더지처럼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기간은 짧지만 그때가 크리스마스 연휴이기도 하고 한국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때여서 비행기 값은 일 년 중에 가장 비쌌다. 그래서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유학생들도 본국에 들어가지 않았고 나 역시 그랬다. 당연히 집에 있으려고 했던 겨울방학이었다. 집 정리를 하면서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자꾸 끊겼다. 남주와 여주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기를 내어 여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장면에 랙이 걸렸다. 젠장. 다시 연결되었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장면으로 넘어간 후였다. 넷플릭스에서 가가호호 DVD를 보내주고 월 회비를 내던 시절이었다. 충동적으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샀다. 가격 비교도 없이 쿨하게 결제했다. 처음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다음날 삽으로 눈을 깨서 문을 열고 택시를 불러 공항에 갔다. 신이 났지만,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스스로도 의아했다.
난 충동이 낮고 불안은 높지만 명랑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내가 달라지고 있었다.
돌 위에 3년.
돌은 따뜻해졌다.
나에게 준 시간 3년도 갔다.
직진 vs. 유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