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이 조막손에 새가슴이다. 옹졸하고 좀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공중전화 한 통에 50원이던 시절, 50원을 빌려줘도 반드시 돌려받았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너무 작은 돈이라 친구가 까먹었는지 나에게 갚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달라고 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달라고 했다. 마음의 불편함을 오래 참지 못하는 나는 고민의 시간도 길지 않았다. 고민하는 중에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입은 나불거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귀가 빨개져서도 고작 50원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게 나였다. 아직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내가 생각해도 많이 좀스럽게 생각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내 돈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호의도 받기 싫었다. 학교 매점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없었는데, 원래도 군것질을 잘 안 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마트에서 사면 더 싼걸 굳이 짧은 쉬는 시간에 먹겠다고 매점을 가지 않았다. 간혹 친구들이 매점에 갔다가 과자나 빵 같은 것을 주면 거절했다. 대단히 먹고 싶은 것도 아닌데, 얻어먹고 다음에 갚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학교 때, 시간당 1800원의 알바비를 받아서 월 30만 원 정도를 벌었는데, 학교 교통비와 식비, 교재비를 쓰고 1년 간 300만 원을 모았다.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는, 버스비가 아까워서 2시간을 걸어 다녔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구두쇠 선발대회 같은 것이 있다면 1등은 못해도 분명 입상은 할 것 같다. 그러니 누구도 내 돈을 가져가지 못했다.
짠순이 인 데다 강박이 있어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편하다. 돈도, 사람도, 가구도, 동물도 자기 자리에 딱 있을 때 가장 좋다.
남편은 내 옆에, 아들은 학교에, 짜구는 캔넬에, 돈은 통장에!
그런데 지난주에 몇 안 되는 오랜 친구 중 한 명이 톡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나면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오보를 믿고 도토리를 모으고 있었는데, 폭락은 개뿔 연일 폭등을 하면서 통장에 그대로 체류 중이었다. 돈 있는 것은 귀신같이 안다고 하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딱 모아둔 돈만큼을 친구가 빌려 달라고 한 것이다. 그 얘기를 남편에게 하니, 분명 보이스 피싱일 것이라고 해서 전화를 해보니 (슬프게도) 아니었다. 며칠만 쓰고 갚겠다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셈이 밝고 정확한 친구였고 무엇보다 가장 친한 친구라 믿는 마음이 컸다.
호탕하게 빌려줬지만 쫄보인 나는 친구와 돈거래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대부분이 돈을 빌려주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지만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친구만 잃는다는 둥 가족끼리도 돈거래하는 거 아니라는 얘기가 태반이었다. 내가 빌려줬으니 나중에 남편도 빌려주겠다고 하면 어쩌나, 한 번 빌려줬으니 나중에 또 빌려달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걱정은 걱정을 제곱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박 2일 애꿎은 남편만 들들 볶았다. 결국 돈을 빌려 주는 것에 대한 가족 공식 매뉴얼을 만드는 개오바를 떨고서야 진동을 멈출 수 있었다. 매뉴얼이라 해봐야, 이렇게 덜덜 떨 거면 아무도 빌려주지 말자고 남편과 둘이서 새끼 손가락 꼭꼭 걸고 약속한게 다였지만 말이다.
다행히 친구는 약속한 날짜에 새벽같이 빌린 돈을 갚았다. 오랜 친구라 내가 쫄보인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는 미국 주가가 폭락하는 그날을 위해 우선 돈을 예금에 넣었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에 가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우리 집에 현금은 없는 것으로~!
화요일의 감사
- 친구가 돈을 제 때 돌려주어 더 불안하지 않아도 되어 감사
-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대부서비스는 일절 없는 것으로 정할 수 있어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