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하면 아프다더니. 노는데 왜 더 바쁘고 더 아픈지 미스터리다.
지난 주는 아찔하게 아팠다. 나는 원래 엄살이 백단이고 몸을 끔찍하게 사리는 사람이라 크게 아픈 일이 없었다. 아픈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너무너무 싫다. 그래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컨디션이 달라져도 재빨리 병원에 간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나는 아플까봐 운동도 안한다. 운동을 하다 허리가 아픈적이 있어 테니스, 달리기, 등산, 승마 같이 몸이 출렁이는 운동은 안 한다. 수영을 배우다 중이염에 걸린 후로 수영을 안하고, 보드를 타다 친구의 보드에 부딪혀 앞니가 깨진 후로 보드나 스키도 안탄다. 과식도 안하고 커피도 아껴 마시고 술도 거의 안 마신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건강하게 먹고 스트레스도 거의 안 받는다. 나는 조금이라도 몸이 아플 것 같으면 선도적으로 쉰다. 내 몸과 마음을 혹사 하면서 까지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나 내가 소중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몸인데 세월에 장사 없다고 보자기를 열어보니 나도 모르는 새 여기저기 금이 가있다.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몰랐던 병을 발견하여 매년 추적관찰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는데 반년 전 부터는 밑도 끝도 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밥을 하다가도 앉아서 쉬고 짧은 산책 중에도 쉬어야 하는 난리가 났다. 호호할머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지... 부정맥인것 같긴한데 진단을 받는다고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고 하여 그냥 있었다. 그런데 요새 그 증상이 더 심한 것 같아 병원에 가니 역시나 부정맥이라고 하여 홀터라는 심장에 부착하는 작은 기계를 달고 다녔다. 의사선생님으로 부터 확진을 받고 나니, 심장이 더 벌렁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금요일에 아들의 생일을 맞아 저녁에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아뿔싸! 간만에 자극적인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던 모양이다. 밥도 고기도 1인분을 다 안먹었는데, 곁들인 마늘이 문제인지 양념이 잔뜩 들어간 파절이가 문제인지 볶은 김치 때문인지 고기가 너무 기름졌는지 결국 체하고 말았다. 주말 내내 구토와 오한, 두근거리는 심장에 완전히 항복하고 말았다. 패배자는 침대에 쳐박혀 시름시름 앓는 것 이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예전에는 그냥 소화불량 증상만 있었다면 이제는 부정맥이 함께 요동쳤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유독 더 그렇다.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은 낯설고 불편하다. 다른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몸 속에서 쿵쿵 북소리가 울리는데 도통 멈추라는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평생을 가장 두려워한 일이다. 모든 것이 내 손바닥에서 계획한대로 움직이기를 꿈꿔왔는데 아주 틀려 먹은 기대였던 것이다. 내 몸의 가장 내부, 중앙의 심장부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밖의 무엇이 내 통제대로 움직이겠는가! 젠장. 어차피 글러먹은 기대로 두려워해서 뭐하겠나. 더 잘 통제하려고 불안해하느니 난 누구보다 빨리 백기를 들 것이다.
여기저기 아프니 내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졌다. 남편은 혼자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설겆이도 하느라 분주한 와중에 아픈 나를 데리고 병원에도 다녀와야했다. 내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껴지니 화도 안났다. 아들이 생일 선물로 고른 커다란 RC카가 마루를 종횡무진하는데 화가 안났다! (자기 방에서 가지고 놀기로 하고 사줬는데 ㅠㅠ) 아무것도 못해준다고 생각하니 주장할 염치가 없어진 것 같달까. 아프니까 자존감이 낮아지고 사람이 겸손해지는 것이 분노가 줄어들었다. 그 와중에 심약해진 나의 마음은 옆에 있는 남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난 마치 내일이면 죽을 여주인공처럼 가련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점은, 이 모든 인지과정이 소화불량과 경미한 부정맥으로 고통받은 딱 이틀간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닐 정확히 하루 반나절간의 통증은 나에게는 마치 거대한 병마처럼 짧고 굵은 깨달음을 선사했다. 몸뚱이는 아팠으나 좀 더 나은 인간이 된듯 했다! 잠시나마?
1. 내 몸도 내 맘대로 안되는데 무엇이 내 맘대로 되겠는가라며 고집스럽게 잡고있던 통제를 놓았다. 그 증거로 아들이 하겠다던 숙제를 안했지만 화가 나지않았고 남편이 조용히 문닫고 짜장라면을 끓여드셨지만 벌금도 안받음!
2. 아들(놈)은 엄마가 아프거나 말거나 죙일 RC카를 운전하거나 밖에 나가 친구랑 놀기바빴다. 역시 자식보다 남편이 최고다.
3. 그러면서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아들에게 잘해줘야겠다, 아들이 행복한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는 눈물어린 모정이 샘솟았다.
물론 통증이 완화된 일요일 저녁, 숙제는 안하고 엄마의 노트북을 몰래 쓰는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는 것으로 눈물의 모정은 종결되었다. 사람이 이토록 가볍다. 통증이 줄어듦과 동시에 나는 제일 먼저 안방 변기와 화장실을 세제로 박박 닦고 샤워를 했다. 토하는 내내 변기를 끌어안고 있다 보니 이제까지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의 불결함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저 변기를 마음껏 닦기 위해서라도 빨리 쾌차하자! 하는 나의 파이팅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의 일을 해 나가면서 잠시 집나갔던 자존감이 돌아왔고 겸손은 다시 집을 나갔다. 그 틈에 분노는 원래의 자리를 차지했고 아들에게 숙제는 언제할거냐며 소리를 질렀다!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다시 원래의 우당퉁탕탕 하는 내가 되었다. 아주 속이 시원했다. 역시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야하는 것이다. 아파야 성장한다면 그냥 모지리로 살아야지 싶다.
아! 다시 아프지않은 일상이다! 감사합니다!
화요일의 감사
- 몸이 다시 안아파서 감사!!!
- 아픈 내내 나를 따뜻하게 챙겨준 남편님에게 감사
- 아들이 아프지않고 건강해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