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개체입니다.
당신은 개체이고 싶습니까?
tvN의 유퀴즈온더블럭 이라는 예능 프로에서 외계인을 찾는 과학자, 이명현 박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넓은 우주를 탐험하고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만나는 일이 '꿈'이라며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에도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진행자들이 만약 장시간의 우주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족을 두고 갈 수 있냐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네! 그럼요!"라고 고민 없이 답을 하셨죠. 생명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고 설령 죽을 수도 있고 돌아온다고 해도 몇 년이 걸릴 여행일 텐데 가족들을 두고 정말 괜찮냐고 재차 물었을 때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개체이니까요"라고 답하며 또 해맑게 웃으셨습니다. 가족이라도 각자의 꿈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음을 너무나 거부감 없게 얘기하는데 다른 어떤 우주에 대한 얘기보다 저에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체
하나의 독립된 생물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독립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개체라는 말은 참 멋있는 말이더라고요. 우리는 타인들 속에서는 내가 독립된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독립을 배반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면 우리가 왜 함께 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의 삶에 못 이룬 꿈을 자식에게 기대하기도 하고, 현재 나의 고난에 대해 상대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부이고 가족이라도,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는 사실이 전제가 된다면 어떨까요? 상대에 대한 기대와 원망은 많은 경우 그 뿌리가 흔들릴 것입니다. 상대는 나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기에, 너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도 각자의 삶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는 각자의 삶을 영위할 충분한 능력이 있으니, 내가 배우자를 또 성년이 된 자식을 보호하고 책임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가족은 독립된 개체가 상호의존적으로 모여 있는 개체군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정말 하나의 독립된 생물체, 하나의 개체로 성장했나요?
나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독립적인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나요?
그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독립되었으나 마음속에는 충분히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가 있는 어른도 있고,
어른은 되었으나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도 있고,
자신은 독립하였으나 상대를 독립된 존재로 믿지 못해 통제하고 의존하게 만드는 사람도,
반드시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자 바라지도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완벽히 독립된 개체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시작과 끝에서 온전히 독립된 존재로 살 수도 없습니다. 태어나서는 다른 어떤 생명체 보다 오랫동안 보호자의 강도 높은 양육이 필요하고 죽어 갈 때 역시 병들고 노화한 몸을 타인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과학의 발달과 인권이 강화되는 사회가 어떤 면에서는 인간을 독립된 존재가 아닌 의존적 존재로 박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기에 사회는 진실로 인간이 독립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결핍과 미완의 존재로 거미줄처럼 얽혀 살기를 기대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고민하지 않고 "개체"이기를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독립적인 기능은,
내 삶을 타인의 평가나 기대가 아닌 내 마음의 소리에 의해 결정하며
그 결정을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경제적,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스스로 지는 것입니다.
더불어, (저에게는 너어무 어렵지만) 나의 아이를 나의 남편을 하나의 개체로 믿고 존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독립된 존재로 살아갈 수 없을 어떤 시점의 무력한 나를 위해
지난해에는 저와 같은 가치를 가진 남편과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고 왔습니다.
늙어서도 내 두 다리로 원하는 곳에 가기 위해 너무나 싫어하는 운동을 하고,
마지막까지 내돈내산 하고 싶어 열심히 출근해서 돈도 벌고,
혼자서도 재밌을 수 있게 브런치에 글도 씁니다.
독립적인 인간은 어느 순간 완성형이 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과 유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개체이고 싶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