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짐을 짊어지고 있나요?
비행기를 타면 출국장에서 어김없이 컨베이어벨트에서 뱅뱅 도는 케리어를 찾아야 합니다. 짐이 단출하다면 필요 없겠지만요. 그런데 간혹, 내 케리어와 비슷해 내 것인 줄 알고 가지고 갔다가 깜짝 놀라 다시 오기도 하고, 누군가 내 것을 가지고 가서 아주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요. 그래도 케리어는 겉보기에도 다르고 겉모양이 비슷해도 열어보면 내 것인지 아닌지 명확히 알 수 있지만, 마음의 짐은 색깔도 형체도 없어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 마음의 짐은 어떻게 구별할까요?
스스로든 누구에 의해서든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내 짐인지 아닌지 어느 순간 멘붕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또는 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한 대 맞은 것 같은 때도 있지요.
어릴 때 저의 부모님은 그 시절의 대부분의 부모님들 보다도 더 많이 싸우셨습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 엄마의 결혼 생활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두 분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자식들 때문에 버티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가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건지도 잘 몰랐습니다. 부모님은 가능한 서로 마주치지 않거나 마주치면 눈길을 피하거나 아니면 오직 싸웠습니다. 엄마의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 비난과 멸시가 그녀의 모든 문장에 가시처럼 박혀있었습니다. 추격자와 도망자처럼 아빠는 그런 엄마의 칼날을 피해 등을 돌리고 누웠습니다. 어디도 피할 곳이 없을 때 둘은 철천지 원수처럼 싸웠습니다.
아빠는 자주 직장을 옮겼고 그러다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좋은 결과가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 남편에 대해 엄마는 "생활비는 안 주면서 자기 주머니에는 언제나 돈이 마르지 않았다."라고 하며 결국 원치 않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밤낮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엄마에게 남편은 책임감이 없고 남의 얘기만 들으며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끊임없는 원망을 쏟아냈었습니다. 자신이 원치 않던 결혼을 강행시킨 외가 식구들에 대한 원망과 거짓 정보를 주었다고 믿는 중매쟁이에 대한 원망, 기대에 너무나 못 미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평생을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양했던 미움은 오직 남편에게 다 모아져서 퍼부어졌던 것 같습니다. 엄마에게는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없었기에 그 책임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어린 자식들 때문에 이혼할 수 없었기에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남편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런 엄마의 말이 맞고 아빠가 틀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빠는 왜 돈을 잘 못 벌까? 아빠는 왜 가족에게 관심이 없을까? 엄마 말처럼 아빠는 나쁜 사람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아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의 마음속에 엄마는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성인이 되고 엄마라는 색안경을 벗고 본 남편이 아닌 아빠는, 홀로 육 형제를 키운 강하지만 차가웠던 홀어머니의 가난한 셋째 아들은 당신이 아는 만큼 자식을 사랑하고 두려운 세상과 싸우기엔 용기가 부족했던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엄마는 실은 자신의 짐을 남의 짐이라고 밀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의 선택은 엄마가 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결혼을 유지했던 것은 남편에 의해서도 미성년자였던 저희가 막아서도 아니니까요. 그녀의 책임감과 그녀의 기대와 그녀의 사랑이 힘든 결혼생활을 유지하도록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으로 자식들은 더 안정된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고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한 여자에서 독립적이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제가 보기에는) 성공한 여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남편에 의해서 삶이 불행했던 것이 아닌, 그녀의 선택으로 삶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엄마도 이 모든 것이 남편의 탓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완전히 모르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다만, 기대했던 결혼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큰 상실감과 근본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온전히 받지 못한 따뜻한 돌봄의 경험, 그 결핍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측은하고 안쓰럽지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의 갈등과 엄마의 고통이 제 책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불행한 관계가 저의 청소년기를 슬프게 만들었지만, 부모님의 싸움도 둘의 불행도 나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저는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내 일이 아니고 엄마의 불행은 여하튼 엄마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구분했고 할 수 있는 일에 노력을 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은 내 일이 아닌 일로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내가 둘의 관계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안마도 해주며 엄마의 노고를 줄이고 더 행복하게 해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공부는 엄마의 기대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해 했었습니다. 내 삶은 엄마가 책임져 줄 수 없는 내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맹랑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엄마에게 엄마의 기대에 영향받기 싫으니 성적표도 안보여주고 스스로 관리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내가 속해 있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각 방을 나올 때 그 방문을 잘 닫고 나오는 상상이 들었고, 어떤 때는 의식적으로 내 것이 아닌 방은 통째로 상자에 담아서 자물쇠를 채워 바닷속에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다는 저의 자기 방어기제였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고 지고 가야 할 마음의 짐은 어떻게 구별할까요?
지금도 저는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나의 책임인가 아닌가?
나의 선택인가 아닌가?
내가 들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 아닌가?
너무 무거운 짐은 내 삶을 좌초시키기도 하지만,
짐이 없으면 작은 풍랑에도 중심을 잃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짐은 나를 무겁게도 하지만,
짐으로 무거워진 나는 거친 물결을 가르고 길을 헤쳐나갈 수도 있습니다.
남의 짐까지 지면 너무 무거워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고,
내 짐을 다 버리거나 남에게 떠넘기면 삶의 풍파에 휩쓸리거나
설령 목적지에 도착해도 나에게 남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