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정상인도 다 ADHD로 나옴

ADHD 검사와 확진 그리고 메디키넷

by 장권

"제가요? 제가 ADHD요?"


선생님은 성인 우울증의 경우, ADHD와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호소하는 증상으로는 ADHD로 보인다며 우선 자가 검진을 권유했다. 처음 진료를 받던 날과 같이 태블릿에 적혀있는 검사지에 내 증상대로 체크를 했고, 역시나 결과는 ADHD로 의심이 된다고 나왔다.


선생님은 내 문진 결과를 보고 컴퓨터를 통한 주의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역시나 검사 비용이 커서 망설이긴 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나는 산만하지 않고 집중력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업무에서 발생하는 실수도 보통 사람 수준이었고 특별히 불편할 만큼 느껴지는 병증이 없었다.


선생님은 ADHD 환자는 일반인보다 도파민 수치가 낮아서 자극을 추구하고, 충동적이며, 주의력과 집중력이 부족하고, 체계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ADHD 치료제를 먹으면 우울감도 개선되고, 감정의 충동성도 조절되며, 무엇보다 글을 쓰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우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검사일을 잡았다.


처음 ADHD 검사를 권유받은 것은 퇴사 전이었기 때문에, 다음날 세모에게 고민을 나눴다. 세모는 컴퓨터를 통해 검사하지 않아도 ADHD를 확진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비용이 높은 검사가 꼭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나도 동감했다. 무엇보다 증상이 미미하니 ADHD 치료제를 먹는다고 해서 극적으로 좋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그때의 나는, ADHD 검사를 취소하겠다는 전화를 못하는 겁보 중에 겁보였다. 약을 먹고 완전히 개선된 기분으로 생활하고 있는 요즘에 나는, 그 시절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필요에 의해 전화를 하는 것인데 왜 간호사와 의사의 눈치를 본 건지 전혀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그 시절 나는 내 주문과 달리 숏컷으로 댕강 자른 디자이너에게도 한마디 말 못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울었다. 이때도 세모와 네모, 탱이의 위로와 답답한 반응을 받았다.


세모는 그때 말했다. "정신과는 이런 걸 편하게 말해도 되는 곳"이라고. 세모가 대신 전화를 걸어주겠다는 건 한사코 거절했다. 겁보일지 몰라도 찌질이는 되기 싫었다. 이미 찌질한 것 같은데 말이다.


다음 상담에서 선생님은 ADHD 검사를 왜 거절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검사 비용에 대한 부담과 내 증상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했다. 선생님은 자가 검진 결과와 상담을 통한 소견으로 ADHD로 보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약을 복용할 시 글을 쓸 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아직은 마음에 부담이 있는 상태라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거절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퇴사 후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점점 늘어지는 생활 리듬과 무너진 패턴, 불면과 우울, 창작에 대한 의지와 반비례하는 작업 시간. '나는 역시 나태한 사람이었어. 퇴사는 무리수였어.''이제 퇴사한 지 한 달 됐는데 좀 쉬어도 되지. 애초에 마음이 힘들어서 쉬는 거잖아.' 사이를 오가며 고민을 하던 그때, ADHD 확진을 받고 약을 먹은 게 오히려 삶의 터닝포인트였다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결심했다. 맞든 아니든 검사를 받자.


타이밍 좋게 한동안 검사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선생님이 한 달 반 만에 다시 한번 권유를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먹고 온 내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 "검사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보시죠."


검사 날엔 한 잔의 커피도 허용하지 않았다. 다행히 불면으로 인해 카페인을 끊은 나로서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전날 잠을 푹 자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목욕재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비장함은 마치 수험생 같았다. 병원 한편에 마련된 검사실에는 작은 탁자에 PC가 놓여 있었다.


매 검사 시작 전 문제 설명과 조작법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명시되었고, 충분히 이해가 될 때까지 연습을 해볼 수도 있었다. 조작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걸 테스트한다고? 테스트 전에 연습으로도 뇌가 꼬이는 문제도 있었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에게 문제 설명을 해줬을 때 어렵다는 반응이 꽤 많았다.


검사 문제는 추후 검사받는 분들이 이 글을 보고 예습할 수 있으니 발설할 순 없다.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력, 연계 능력과 기억력, 순발력과 자제력, 판단력 등 뇌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이 골방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긴장감에 괜히 땀이 났다. 눈도 건조해지고 입도 말랐다. 제목에서 말했듯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일반인도 충분히 ADHD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이 예상한 것과 같이, ADHD로 의심되나, 한 가지 영역을 제외하고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그 한 가지는 '간섭선택'. 경계도 주의도 아니고 저하. 하필 글씨도 빨간색이어서 더 슬펐다. 간섭선택 저하의 예시로는,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무언가 지나가면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잘 뺏기고, 시선이 이동하려는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다 그렇지 않나? 나만 특별히 저하된 능력인지 몰랐다. 진심이다. 일반인을 ADHD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로 다 그런 것 같은데. 아니라면 죄송하다.


나는 스스로 멀티태스킹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둘 다 어정쩡하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충격) 그것을 깨닫고 나니, 글을 쓰는 지금도 확실히, 잔잔한 음악을 틀고 쓸 때와 정적 속에서 쓸 때 양과 질에 차이가 있다는 걸 느낀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


메디키넷과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됐다. ADHD 치료제로 흔히 쓰이며, 주의력 상승, 우울감 개선, 충동 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점이 많은 대로 두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혈압 상승과 악몽이다. 지금도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혈압을 잰다. 여자는 대부분 혈압이 낮으므로 원래 지병이 있지 않는 이상, 이 약을 먹는다고 해서 고혈압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다만, 선생님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이 약을 먹으면 전두엽이 활성화되어서 악몽을 꿀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악몽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예요. 알겠죠? 아무 의미 없어요."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일주일에 일곱 번을 꾸면 의미가 좀 있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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