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 부작용이 악몽이라고요?
메디키넷 리타드 캡슐. 너무나 잘 맞지만 너무나 괴로운 이름이여.
선생님께서 악몽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셨다. 의미를 두지 말자. 꿈 내용을 깊게 생각하지도 말자.
그간 내가 꾼 악몽 에피소드로는 참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엮으면 애거서 크리스티 못지않은 미스터리 단편선 하나 뚝딱이다.
[악몽 리스트]
1. 귀신에게 쫓김
2. 크리처(괴물)와 싸움
3. 직장 내 괴롭힘
4. 벌레 소탕 대작전
5. 초능력자가 이 세계를 파괴함
6.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7. 가족, 지인 등의 사고
대부분은 내 무의식이 불러낸 망상이란 걸 인지해서 괜찮지만, 현실과 닿아 있는 꿈은 일어나서도 한동안 나를 괴롭힌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꿈은 퇴사한 지 수개월이 지난 요즘도 가끔 꿔 나를 힘들게 한다. 선생님께서는 "차라리 나를 힘들게 한 인물을 대상으로 소설을 써내면 승화되지 않을까."하고 조언했지만, 글을 쓰기 위해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면 내내 회사 꿈만 꿀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떤 날엔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재현하는 꿈을 꿨다. 직장 상사가 나에게 직접 지시를 하지 않았지만, 마치 내가 그 일의 담당자인 양 몰아갔다. 눈치를 보던 내가 결국 어떻게 할지 물어보면 "알아서 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꿈에서 깨면 '왜 나는 꿈인데도 한마디 말을 못 했지? 왜 제대로 지시를 하지 않는지, 지시가 없어 인지하지 못한 일로 왜 화를 내는지, 왜 수동 공격을 해서 늘 눈치 보게 만드는지. 왜 물어보지도 따지지도 못했지?'하며 서러워졌다.
그런가 하면 어떤 날엔 직장 생활하며 한 번도 하지 않은 지각을, 그것도 늦잠을 자서 무단결근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상사에게 메신저 테러를 당하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해서 혼나기 일쑤였다. 뒤늦게 휴가라도 쓰고 싶었지만 내가 퇴사한 탓에 그룹웨어에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그쯤에서 이상한 걸 눈치챘어야 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수습하려고 애를 썼고, 상사는 퇴사한 나를 꿈에서 깰 때까지 갈궜다.
어떤 날엔 상사가 기분이 좋은지 나에게 잘해주기도 했다. 매슬로우의 욕구 가운데 사회적 욕구와 존중적 욕구에 대한 나의 결핍이 여실히 느껴졌다. 내가 전 직장에서 채우지 못한 욕구를 무의식이 상기시켜 준 덕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차라리 괴롭힘을 당하는 꿈이 더 익숙해서 괜찮을 정도로.
어느 날 내가 잠을 자는 모습을 가만히 보던 탱이는 내가 악몽을 꾸는 동안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끙끙 앓는다고 했다. 단순히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신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에 놀란 나는, 선생님께 매일 악몽을 꾸고 있는데 꿈을 꾸는 빈도를 줄일 수 없는지 물었다. 그때의 나는 프록틴(항우울제)을 저녁에 복용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프록틴도 악몽을 유발할 수 있다며 아침으로 복용 시간대를 옮겼다.
아침 메디키넷(ADHD 치료제), 프록틴(항우울제)
점심 메디키넷
자기 전(필요시) 큐로켈(수면 유도제)
프록틴의 복용 시간을 옮기기만 해도 악몽을 꾸는 빈도가 일주일에 2~3번으로 현저히 줄었다. 더는 악몽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약물 때문인지 유독 생생한 꿈을 꿀 때면 여전히 땀범벅이 된 채로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용할 만큼 메디키넷은 나와 잘 맞다. 글을 쓸 때 세부 설정 및 계획 수립이 수월하다. 또 주변 사물에 덜 부딪히고, 덜 흘리고, 덜 깜빡한다. 일상생활에서의 부주의는 심하지 않아 스스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망상이나 잡념이 사라지고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가장 약한 부분인 간섭선택에도 도움을 많이 받아, 더는 글을 쓰는 도중에 새 탭을 켜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을 서칭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이른 병식은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방도다. 약물과 상담은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쉬이 바꾸는 데에 도움을 준다. 지금이라도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감기 걸렸을 때 내과에 가는 것처럼, 팔목이 시큰거릴 때 정형외과에 가는 것처럼, 정신과에서 정확한 검진을 받기를 권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의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