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은 좋아졌는데 장트러블은 어떡하죠?

항우울제, ADHD 약 부작용과의 전쟁, 나만의 적응기

by 장권

* 본 화에서는 더러운 얘기가 상당수 나옵니다. 식사 중이라면 읽지 마세요.




나는 타고나길 약한 장을 가졌다. 아마 부계 유전으로 생각된다. 아빠도 어린 시절 꽤나 고생했다고 들었다. 1년에 한두 번은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강한 장염에 걸리며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달고 산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장이 고장 나는 건 기본이며, 음식에 따라 정도가 심해지거나 적어질 뿐 365일 중 300일은 트러블을 달고 살았다.


대부분의 경우 40대에 처음 경험한다는 '대장내시경'을, 나는 열아홉에 받았다. 다행히도 용종이나 염증은 확인되지 않았다. 소화제, 지사제와 더불어 신경안정제를 처방 받았다. 매 시험이 중요한 고등학생을 위한 최선의 처방이었으리라 본다. 하지만 약을 먹을 때 반짝 괜찮을 뿐 체질은 바뀌지 않았다.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에 치러진, 2012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 영역에서 사고가 난 건 필연이었다.


수능을 치른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듯, 점심시간 직후 외국어 영역(현 영어 영역) 시험을 치렀다. 감독관들이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무엇을 하지요? 스피커 테스트를 하지요. 그럼 1번부터 17번까지 우리는 뭘 하지요? 듣고 문제를 맞히지요. 정확한 번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12번쯤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에게 가장 잔인한 말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참아봐.", "휴게소까지 15km 남았는데 조금만 참아봐."와 같은, 지금 당장의 욕구를 제어하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나는 수시에 지원한 대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 최저등급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말했다. "네 인생에 재수는 없다." 그 말 따라 재수 없게도 밥을 먹자마자 배가 아팠다.


무엇보다 당시 다리 떠는 사람, 볼펜 달칵 거리는 사람, 반복적인 소리를 내는 사람 등은 '고사실 빌런'으로 통칭되며, 인터넷에서 조리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우리 고사실에는 저런 사람이 없길, 내 앞에 저런 사람이 없길.' 내심 빌며 수능장으로 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내가 인터넷 후기에서 본 적 없는 '화장실 빌런'이 될 순 없었다. 17번까지 어떻게 변의를 참아봤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듣기 평가가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2012년 수능, 정부의 사교육 타파 정책의 일환으로 EBS 수능특강의 문제를 활용한 첫 시험으로, 출제위원도 수험생도 예측이 되지 않는 과도기적 물수능으로 유명했다. 그간 수능특강만 잘 풀었어도, 지문을 잘 외우기만 했어도 화장실로 인해 날려버린 시간이 복구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일종의 머리만 믿고 까부는, 문제지 복습과 거리가 먼, 창의적으로 문제를 푸는 학생이었다. 시키는 대로 잘하는 게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열아홉 3교시 외국어 영역이 끝난 직후에 깨달았다. 뭐라도 교훈을 얻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영어 과목에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성적표를 받고야 말았다.


다행히 수능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 전형으로 지원한 다른 학교에 수시 납치를 당한 덕분에 서울 유학길을 오르게 되었다. 문제는 고향인 포항과 서울의 거리차였다. 내가 대학생이던 당시엔 포항역은 KTX 정거역이 아니었고, 늘 신경주역에 하차하여 포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약 50분을 더 이동해야만 했다.


여기서 잠깐,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는 화장실이 없는 교통수단을 타지 못한다. 그러한 교통수단을 타기 위해선 아침 일찍 거사를 치르고 목욕재계를 마친 후 공복에 탑승하여 도착할 때까지 깊은 수면을 해야 한다. 깨있는 동안 언제 예민해질지 모르는 장을 위해 나 자신을 재우는 거다. 이것이 버스 타고 4시간 30분이 걸리는 경상북도 동해안 끝자락에 사는 자의 비애다. 명절엔 KTX 표를 구하지 못하면 그냥 귀성길을 포기할 정도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변의를 참기 위해 공복으로 덜컹거리면 다른 친구가 얄궂게 인사를 건넨다. 그건 '멀미'라고 한다.


KTX만의 특장점이 있다. 탑승 시간이 짧은 것도, 정시성이 있는 것도, 멀미를 일으키지 않는 것도 좋지만, 화장실이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하다못해 나는 서울 내에서도 이동하다 변의를 참지 못하고 모르는 역에 내려 개찰구 비상 버튼을 눌러, "화장실 가고 싶어요."를 외치니까. 첫 번째 직장 다니던 시절에 꽤 긴 출근길에 참지 못하고 압구정역, 신사역을 전전하며 화장실을 배회하다 지각을 했다.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가 공공 화장실을 꿰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밈이나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정말로 꿰고 있다.


각 지하철 역과 공공기관 및 관공서에는 공공화장실이 있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빌딩), 쇼핑몰, 대형마트, 주유소 등에는 반드시 개방 화장실이 있다. 스타벅스는 고객이 음료를 사지 않고 화장실만 이용해도 두는 것이 영업 정책이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있는 개인 상점은 정말 급하다는 표현을 하면 무료로 화장실을 내어주기도 한다. 모두 다 겪어 본 일이다.


기름기 있는 음식, 카페인, 탄산음료, 생야채, 우유, 유제품, 밀가루 음식, 매운 음식, 산이 강한 과일, 차가운 음식 등. 피할 수 없으니 그냥 먹고 몇 시간 후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렇게 30년 살다 보면 별 인지 없이 먹게 된다. 편식을 할 순 없지 않은가. 특별히 탈이 나지 않는 한 먹는다.(단, 여기서 특별히 탈이 난다는 의미는 정상인과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일러주는 바다.)


멘탈 헬스를 다루는 브런치북에서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그러니까 나의 대장 헬스에 대해 사전 지식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프록틴을 처음 먹고 2주간 장트러블 때문에 꽤나 고생했고, 그건 큐로켈도, 메디키넷 마찬가지다. 원래도 자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나도 배가 몹시 꼬이는 것처럼 아프거나, 속을 모두 비워낼 만큼 자주 가거나 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보통은 아파서 약을 먹으면 환부가 낫는다는 걸 전제로 하는데, 이 약은 환부가 낫는 느낌은 잘 나지 않으면서 엉뚱한 곳이 급격히 안 좋아진다. 당시 사무직이었던 나는 업무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리를 자주 비우면 안 되는 직업을 가진 분(특히 서비스직)들은 이 부작용이 꽤나 치명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한 경우, 업무시간 8시간 내 화장실을 5번까지도 갔었다.(대변만)


대부분 1~2주 내로 적응하기 때문에 이후엔 약물로 인한 장트러블은 발생하지 않지만, 구토를 한다든지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아프면 약을 바꾸기를 권한다. 사람마다 부작용 발생 여부와 정도가 다르기에 내가 겪은 부작용을 일반화할 생각이 없다. 정도가 심한 경우 단약 또는 약물 변경이 가능하니 꼭 전문의와 상담하길 바란다.


치료 초반, 불안장애 치료제 자나팜 정을 복용하던 나는 갑작스러운 건망증이 생겼다. 한 번도 한 적 없는 실수를 하게 되고, 루틴 업무까지 깜빡하고 챙기지 못했다. 증상을 느낀 직후 나는 다급히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자나팜 투약을 중단한 뒤로는 해당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 운이 좋아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약, 연고 등에도 크고 작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나는 선생님이 미리 알려주신 부작용은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모두 당첨됐다. 어떻게 보면 럭키 아닌가? 확률이 대단히 낮은 일이다. 나는 부작용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멘탈 헬스를 위해 적응 기간을 꾹 참아냈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으니까. 새살을 돋게 하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덧내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니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진 말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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