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갖고 기다리기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카페는 알바생 모두, 자신이 일하는 시간대가 고정되어 있어서 새로운 동료를 만나게 되는 일이 적다. 가끔 신입 알바생이 들어올 때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최대한 먼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린다.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타이밍을 재다가 늦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자연스레 먼저 말 걸어주길 기다렸다.
일할 때 팁이 뭔지 묻는 친구도 있고, 매장에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를 시작으로 취향을 물어보는 친구도 있다. mbti는 처음 만난 사이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용 좋은 이야깃거리이다. 가끔이지만 첫 만남에 너무 사적인 것을 묻는 사람도 있다. 어디 사세요? 출근하는 데 몇 분 걸리세요? 전공이 뭐세요? 평소에는 뭐 하세요? 일주일에 한 번만 일하신다고요? 생활 괜찮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속으로는 불편해하면서도 에둘러 말하지 못하는 내 성격상 다 답을 하게 된다. 아주 솔직히는 말하고 싶지 않으니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평소에 뭐 하냐는 질문에 ‘책도 보고 글 쓰고 싶을 때 쓰고..’ 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말끝을 흐려야 한다는 점이다. ‘글 써요.’, ‘글 씁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자신감 있어 보이니까 ‘뭐가 있나 보다, 저 사람’ 이런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런 호기심은 또 다른 질문을 야기한다. 그러니 약간 자신감이 없는 말투를 해줘야 상대도 ‘아, 더 묻는 건 실례겠군’하고 화제를 바꾸거나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밉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을 향한 애정 어린 호기심에서 나오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 미워할 수 있겠나. 귀엽고 고맙고 훌륭하다! 그런 사람들의 기를 꺾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적절히 받아주고, 또 나의 선을 적절히 알려주는 것으로 지내면 되는 것 같다. 악의를 가지고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 사람도 가끔 보이지만 그런 사람은 참 다행히도 티가 많이 난다. 신께 감사하다.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그들에게는 정보를 최대한 주지 않으면 된다.
사회생활하면서 깨달은 점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나도 존중받고, 다른 사람도 존중할 줄 아는 건강한 관계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인간관계에 치열하지 않게 된 후부터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었다. 여유를 갖고 사람을 대할 때 좋은 사람을 알아봤던 것 같고, 좋은 어떤 사람 역시 나라는 좋은 사람을 알아봤던 것 같다.
내일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어 이리 주저리주저리 쓰게 됐다. 다 쓰고 나니 뭔가 이상한데? 참,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가도 가끔 이렇게 딴 길로 새 버린다니까.
사진. 헵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