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카펜터가 남기고 간 것
어느 순간 외부 충격으로 긴장감이 탕! 풀어질 때가 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마음이 흐물흐물 물렁물렁해진다. 다시 단단해지기 위해 마음은 갈팡질팡 요동친다. 내 마음이 이런 상태이면 나는 마음이 쉬고 싶다는 사인으로 읽는다.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못했음을 성찰하고, 가능하면 약속도 잡지 않고 사회로부터 숙면의 시간을 갖는다. 이럴 때 자연스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침대나 따뜻한 차(tea), 좋은 향기처럼 마음과 몸을 이완시켜주는 것들이다.
듣는 음악도 조금 달라진다. 마음이 쉬고 싶을 때는 역시 카펜터즈(Carpenters)가 생각난다. 카펜터즈는 1970년대에 활동한 남매 뮤지션이다. 오빠인 리처드 카펜터는 연주를, 여동생인 카렌 카펜터는 보컬을 맡고 있다. 팝을 좀 안다는 사람은 카펜터즈를 ‘팝의 ABC’라고 말한다. A는 아바(ABBA), B는 비틀즈(Beatles)이니, 카펜터즈(Carpenters)가 팝에서 어떤 위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카펜터즈가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을 꼽는다면, 분명 카렌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평안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 평론가들이 카펜터즈를 칭할 때 하는 말이었다. 나에게도 그렇다. 카펜터즈는 내게 고향 같은 가수다. 사회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때, 마음이 쉬고 싶을 때, 세상에서 나란 사람을 지우고 싶을 때, 어딘지 모르지만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을 때 생각이 난다. 카펜터즈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은 느낌이다. 마음에 묻은 오염들도 거두어진 기분이 든다. 긴장했던 마음은 몽글해지고, 지친 심신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 발을 꼼지락거리고 싶어진다. 기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노래에 내 귀를 맡겼을 뿐인데, 눈가가 떨리기 시작하고, 끝내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물은 마음에 응어리진 어떤 것에 구멍을 뚫고, 바람이 빵빵하게 차있던 마음은 또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 비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비워낸 후에는 고향과 젊은이가 함께 할 수 없듯,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렌 카펜터는 음악으로 많은 사람을 절망과 좌절에서 구원했지만,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했고, 결국 거식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음의 병이 든 근본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카렌의 죽음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나를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만 돌보는 삶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카렌이 더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카렌. 더 이상 카렌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을 수 없지만, 카렌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이 음악 말고 있다. 인생에는 ‘고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지쳐 그녀의 노래를 듣고, 그리고 힘을 얻어 세상으로 가고, 다시 세상에서 지친 마음을 이끌고 고향에 들르듯 카펜터즈의 음악을 찾는 것처럼. 아마 이 삶의 패턴은 인생에서 무수히 반복될 것이다. 이 깨달음이, 바로 내가 카렌에게 받은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