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쓰고 건강하게 먹기(5)
장을 볼 때 편하게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도 되지만 굳이 마트에 가는 이유는 단연코 채소 때문입니다. 신선 코너에 들어선 순간 느낄 수 있는 채소의 생기는 아무리 마트를 가도 좀처럼 질리지 않습니다. 단단한 채소이든 부드러운 채소든 싱싱한 채소는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 생명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하고, 어떤 요리로 다시 태어날까 기대가 됩니다.
채소만큼 신선함이 중요한 품목은 바로 고기입니다. 요즘은 유통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온라인으로 살 때에도 고기의 퀄리티는 비슷하지만, 고기마다 비계가 얼마큼의 비율로 있는지, 힘줄이 너무 많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신선한 것들 중에 더 싱싱한 것, 더 나의 취향에 맞는 것을 구입하는 일은 오프라인 장보기의 장점입니다.
특정 브랜드의 어떤 상품을 사기 위해 해외 직구 쇼핑몰에서 장을 볼 때도 있고, 온라인으로 장을 볼 때는 모바일로 대형마트 어플을 켜서 장을 봅니다. 또 아주 가끔 재래시장에 방문하기도 합니다. 식탁 위에 좋아하는 음식을 한 상 차린다고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장을 보는데도 역시 제일 자주 장을 보는 곳은 집 근처에 있는 식자재 마트입니다. 어떤 제품이든 대용량과 가정용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자신의 살림 방식에 맞게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요리할 때 간을 적게 하는 편이고 또 이런저런 깔끔을 떨다가 설거지 양이 많아져서, 소금을 살 때는 적은 용량으로 사고 주방 세제는 대용량으로 구비해 놓습니다. 일반적인 마트보다 더 큰 용량을 구매할 수 있고 채소도 대형마트만큼, 때론 더 신선하니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온라인 장보기를 더 선호했습니다. 집에 하루 종일 있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라 마트에서 ‘이거 주세요’,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일이 정말 어렵고 불편했습니다. 남의 부탁은 잘 들어줘도 제가 부탁하는 건 힘들어했고 괜히 직원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신선 식품을 샀을 때 실패가 잦은 것 -파프리카의 크기가 제각각이라든가 잎채소의 이파리 끝이 시들었다든가-, 쉽고 편리한 방법으로 사는 만큼 돈을 쉽고 많이 써버리게 된다는 것, 밖에 잘 나가지 않아 햇빛을 안 보다 보니 피부가 굉장히 민감해지기 시작해서 일부러 밖에 나가는 스케줄을 계획하면서부터가 마트에 가게 된 계기였지요.
막상 마트에 나가 보니 알게 된 사실은 제 또래의 사람 중 -30대- 혼자 장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아이를 데려온 가족 단위나 커플 또는 중장년층 여성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사실이 외롭게 느껴질 법한데도 제게는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다행이지요.
이따금 마트 안에서 저처럼 혼자 장을 보러 오는 분을 마주칠 땐 무척 반가웠습니다. 인사하고 싶어질 만큼이었죠. ‘안녕하세요? 저도 두부를 사려고 하는데, 찌개 끓일 때 어느 브랜드가 맛있는지 아시나요?’ 하고요. 물론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을까 봐 한 번도 이렇게 말을 건 적은 없었습니다. 속으로만 ‘저 분도 집밥을 해 먹는구나!’ 생각하며, 홀로 유대감을 느끼고 신이 나는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마트에서 느꼈던 감정과 기분은 고스란히 주방까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좋았던 기억은 금방 사 온 재료들로 만든 요리 덕분에 더 풍성해지고, 불쾌했던 경험은 냉장고에서 정리된 물건을 보며, 또 요리하면서 털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다음은 어떤 요리를 할까 생각하며 또 장보기를 계획합니다.
요즘은 카트에 물건 하나 담는 게 참 어려운 나날입니다. 한 주 사이에 물가가 오르기도 하고, 매년 이맘때쯤 세일하던 것들이 올해는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국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문제이니 개인이 어찌할 수 있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다만 지금 주어진 상황과 재정 안에서 조금 더 건강하고 즐겁게 또 그것이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 소비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제 삶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비가 오더니 갑작스레 날이 추워졌습니다. 12월 치고 따뜻한 날이 많았는데 이제 제대로 겨울이 시작되나 봅니다. 올해는 아직 붕어빵도, 호떡도 사 먹지 못했네요. 다음 주에 극심한 한파라고 하니 먹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다음 주부터는 무드 있는 식탁을 꾸며볼까 합니다. 식탁보도, 그 위에 요리들도 성탄스럽게요. 벌써부터 장을 보려니 신이 납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마트에 갈 때에는 평소보다 좀 더 큰 장바구니를 가져가야겠습니다.
사진. 헵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