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와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 (177)
오래전에 제대로 알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곁다리로 금강경공부를 조금 했던 적이 있다.
그때 공부를 이끌어주신 법사님께서 공부 근력이 약한 초심자는, 좋은 스승과 도반들이 타고 가는 수레에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 하셨다.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일 게다.
우선 가까이에 있는 귀한 인연들에게 감사하며 고마움을 챙겨야겠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일생을 통해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어떤 시간대를 꼽을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내게는 요 근래가 참 좋은 시절인 것 같다.
혈기왕성하고 꿈으로 가득했던 청춘도 좋고, 결혼하고 자식 낳아 기르며 알콩달콩 행복을 일궈가던 중장년도 좋고, 헛된 욕심이 가라앉아 편안해진 노년의 입문도 좋았다.
그러나 이 나이만큼 살아보니, 칠십 고개를 훌쩍 넘고 나서야
내 안에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들고, 세상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살아오는 동안 크게 넘어져 진흙탕에 처박히는 고난은 없었지만, 내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핍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누구 말마따나 결핍이 나를 키웠는지도 모른다.
늘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서러웠고, 표출되지 못한 얼마간의 분노가 끓었다.
세상의 다리가 되어주고 튼튼한 밧줄이 되어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는 스스로 세상을 건너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페르소나! 그래서 내겐 몇 개의 가면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있는 힘을 다해 착한 아이로,
성실한 아이로,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잘 참고 이겨내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반듯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 삶이었다.
일흔 중반에야 내게 찾아온 진정한 평화와 느슨함이 참 좋다. 나를 옥죄던 끝없는 의무,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도 사라졌다.
오랜 시간 파도에 씻기어 모서리가 둥글어진 몽돌처럼 달그락달그락 어울리며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요즈음의 일상이 행복하다. 비록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닳아서 육신이야 여기저기 삐걱대지만 마음은 참 편안하다.
근래에 주변에 참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다.
이런저런 배움의 자리에 함께 끌어주고 동참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모든 만남, 모든 순간이 배움의 자리이고 감사의 시간이다.
어제는 전주 꽃심도서관에서의 인문학강의에 참석했다. 5주간 계속되는 각기 다른 주제의 강의로 모처럼
' 알아감 '의 갈증을 달랠 수 있겠다.
언제나 긍정에너지가 넘치는 모니카 님이 앞장서 길을 놓아주고 발이 되어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동국대 특임교수인 김광식 교수의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놓은 석전 박한영!
그냥 스승을 넘어 우리나라 정신적 지주의 계보를 잇는 만해, 석정, 가람, 서정주 등 수많은 천재들의 스승인 석전 박한영의 행장을 얻어듣다니! 그야말로 특별하고 귀한 인문학 강의였다.
또한 강의 중 석전의 제자들 이야기에서, 말석이기는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사로 뵙던 종걸스님(전 동국사 주지스님) 얘기까지 거론되어서 내심 놀랍고 반가웠다.
가까이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귀한 말씀 얻어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운명은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고 선택은 우리를 친구로 만든다. >- 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