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니
송뚜기라는 별명은 친한 언니가 지어준 별명이다.
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필명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작가가 되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이 별명을 필명으로 넣었었다.
본명을 쓰려하니 조금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송뚜기라는 별명은 내 이름의 성이 ‘송’이라 앞에 ‘송’을 넣었던 것이고, 뚜기는 오뚝이의 뒷부분만 발음으로 따온 것이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을 만나면 넘어진다. [잠24:16, 우리말성경]‘
라는 말씀을 따서 나의 도전과 실패에 대해 힘을 내라고 붙여준 이름이었다.
이렇게 송뚜기라는 별명으로 그 언니는 아직도 나를 부를 때 “뚜가”(뚝아)라고 부른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분들은 송뚜기가 메뚜기의 줄임말이냐고 물어본다.
이 필명이 발음이 부드러운 것도, 속뜻이 완전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라 언젠가는 바꿔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황유진 작가의 ‘어른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다가 작가의 마음가짐을 돕는 도구로 필명과 필기구를 이야기했다.
나름 문구덕후인 나는 좋아 보이는 노트는 일단 사다 쟁여 놓는다. 노트 하나에 몇만 원을 해도 할인 행사와 적립금을 모아서 사두기도 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김익한 교수가 자신은 어디를 가면 항상 라미 만년필을 사서 기록을 한다는 말을 듣고, 만년필에 꽂혀서 라미만년필을 폭풍쇼핑했다. 만년필로 쓰기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
손가락에 힘이 부족한 나는 만년필로 글을 쓰는 재미가 솔솔 했다. 볼펜보다 더 잘 나가고 부드럽게 쓰였다. 나의 빠른 생각을 손으로 기록하는데 만년필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자 그렇다면, 나름 나만의 필기구는 있는데 필명은 뭘로 하지?
공부를 하면 되는데 책상이 없어서라고 한다거나, 운동을 하면 되는데 밖에 눈이 오고 운동복이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는 자가 있다. 그게 나인 듯 하다.
글을 쓰면 되는데 글을 쓰는 것보다 일단 장비를 갖추는 데 더 관심과 흥미가 간다. 좋은 장비로 세팅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까딱하다가는 노트북도 바꿀 판이었다. 돈의 여유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웃기는 이야기만 그렇게 세팅을 해 놓고 나면 글을 쓰기보다는 또 다른 세팅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리고 있다. 뭐든 재미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필명도 글을 쓰기 위한 세팅의 하나로 여겨져 나의 관심도가 올라갔다.
황유진 작가는 필명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창작하고 싶은가를 결심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또한 필명이 하나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글을 읽고 나면 ‘슴슴하니 좋다’ 싶어지는 글, 쓰면 쓸수록 잠든 얼굴처럼 순해지는 글이 되고 싶어 ‘두부’라고 필명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왜 쓰고 싶은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다 보니 ‘왜 쓰고 있는가’로 생각이 갔다. 글을 쓰다 보니 나를 발견하고, 쓰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글이 나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메뚜기와 오뚜기가 같은 ‘뚜기’의 라임이라 헷갈리는 모호한 필명을 버리기로 했다. 발음도 그다지 부드럽지도 않지 않은가?
나의 필명은 ‘쓰다 보니’에서 앞의 ‘쓰다’를 생략하고 뒤의 ‘보니’만 가져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보니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일단 발음이 순하니 있어 보인다고 했다. 송뚜기라는 필명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피드백도 했다.
보니가 무슨 뜻인지 물어볼 때 ‘쓰다 보니’의 줄임말이라고 하면 살짝 웃게 된다. 사람들이 웃는 것이 나는 좋다.
그래서 내 필명은 이제부터 ‘보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