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한긍정 Oct 22. 2023

세상의 빛나는 아이들에게

너는 항상 빛나는 존재야.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쩌면 나에게 스승으로 찾아온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아는 척, 어른인 척하며 아이 곁에 십 년을 넘게 머물렀다. 정작 돌이켜보면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것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받은 것이 더 많다. 아이들은 나에게 배움의 욕구를 충전시켜 주었으며, 나에게 깨달음으로서의 앎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사랑’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사랑이었다.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 능력을 벗어나는 육아는 늘 고되었다. 그때마다 현실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고 모든 것이 서툴던 나는 육아가 항상 어려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의도적으로 전달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두 가지 메시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기’이고 

두 번째는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기 이전부터 언어를 배우며 세상과 소통하는 그 과정까지 아이의 무의식적 기억에 그 두 가지가 각인되기를 소망했다. 만약 엄마로서 나 자신의 한계가 걸림돌이 되어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 두 가지를 의식적으로나마 기억하고 알게 되기를 소망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 단단한 토대 위에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거침없이 나아가길 바란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나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걱정과 염려와 준비와 정당함이라는 명분으로 장점보다 단점에만 치우쳐왔던 지난 시간을 슬며시 반성해 본다. 우스갯소리로 결혼 전 ‘장점’이 결혼 후 ‘단점’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것은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장점’과 ‘단점’ 그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그냥 다른 영역의 이야기이다. 어느 쪽도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다. 양쪽을 다 고려한 균형이 잡힌 관점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주관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때로는 너의 부족함을 타박한다. 하지만 내심 너의 용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실 환호가 담긴 찬사를 너에게 보내고 싶지만 그것은 시도조차 없이 실패로 끝난다.


환호가 담긴 찬사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나의 어색함' 때문이며 또 '너의 으스댐'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사견 때문이다. 실상은 나의 습을 깨지 못하고 그것을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어리석음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사람에 따라 기질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쭐함을 걱정할 필요 없는 무엇보다 꼭 필요한 ‘적시적소’의 순간에도 "칭찬샤워"가 사실상 불가능한 나를 보면 내 능력의 부족을 절감한다. 칭찬할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는 궁색한 변명은 때로 ‘너는 칭찬할 것이 없는 아이야.’ 혹은 ‘그건 그냥 당연히 하는 거야’라고 아이의 마음속에 와전되어 해석되기도 할 것이다. 에너지의 충전은 없이 에너지의 고갈만을 가져오는 이러한 상황은 결코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혼자 힘으로 사태수습은커녕 문제만 더 심화되던 어느 날 모작가님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아이와 쓰는 교환일기를 시작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으나 아직 삐그덕거리는 과정 속에서 아이도 나도 상처투성이다. 생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부족한 나는 그 생채기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생채기를 만들고 있었다. 후회도 반성도 사과도 해법은 아닐 텐데 어리석게 반복하는 나였다.


매일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던 어느 날 '아이의 성취일기에 칭찬하기'가 너무 어렵고 지쳐 차라리 '나만의 성취일기를 써보아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용기를 내어 나만의 성취일기를 만들고 거기에 나 자신의 감사, 성취, 칭찬을 기록해 보았다. 그 결과 알게 되었다. 나의 어려움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 낯섦이 견디기 어려워 내가 원하지 않는 그 이전의 상태를 기본값으로 설정해 두고 나도 모르게 계속 회기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비로소 나는 묵혀두었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의도'와 '의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요인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었다.



내가 나의 기본값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내가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은 사람에게 그러한 존재로 다가서기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런 척할 수 없는 진실의 영역이다. 


마치 동시성처럼 마치 행운처럼, 존재로서의 가치는 그저 존재함으로써 영향을 줄 것이기에.



만약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힘을 나게 하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빛을 발견하지 못할 때 만약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로 인하여 내 안에 빛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어둠 속에서 잠시나마 의지할 수 있는 작은 등불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굳이 어려움을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날아오르는 반딧불이를 길잡이 삼아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




나에게 있어 너는 이미 그러한 존재이기에


네 삶의 어느 날,  네 삶의 모든 날

너에게 그런 존재로 남기를 소망한다.




너는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아이로 태어나 빛으로 세상을 밝힌다.


넘치는 사랑을 받고, 넘치는 사랑을 베풀길.

과정의 어려움에서 의미를 찾고, 그 앎을 디딤돌 삼아 좌절대신 한 단계 도약하길.

네가 맞잡은 손에 안도감을 느끼듯,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비교불가지만 그럼에도 덧붙일 말은 있다.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속내를 가진 네가

나보다 더 성장을 향해 가까이 다가선 네가

나보다 더 순수한 에너지 그 자체인 네가

나보다 더 열정적이고 열망에 타오르는 네가


나에게로 와주어 감사하다.

세상으로 와주어 감사하다.






존재 자체로 빛나는 너에게 


진심을 담아 찬사를 보낸다.

진심을 담아 사랑을 보낸다.












※ 사진출처: Image by 51581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쉬며 생각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