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마지막 챕터.

by 이손끝


오늘은 언니와 노년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니는 산 가까운 시골에 살고 싶다고 했고, 나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한단 게, 그리고 전과 다르게 이젠 정말 준비를 해야 해서 묘하게 쓸쓸했다. 언니는 “그래, 가끔 놀러 와.”라고 말했는데,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무심한 척했지만, 마치 우리 인생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제목은 써진 듯한, 우리의 마지막 챕터.


언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었다. 나보다 4년 먼저. 그래서 언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게 어렵다. 같이 살면서 참 많이 싸웠고, 언니는 나를 자주 때렸다. 억울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많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그 애도 그 나름대로 크고 있었던 거니까. 첫째로써 감당 못 할 외로움이나 역할을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견디고 있었던 거겠지.


우리는 쉰을 앞두고 있다. 벌써 이만큼이나 살았고, 또 아직 그만큼의 생이 남았다. 여전히 삶은 편하지 않고, 각자의 고생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이제는 예전보다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미운 사람’에서 ‘짠한 사람’으로, ‘멋대로인 존재’에서 ‘그럴 수밖에 없던 존재’로, 마음의 어조가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나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는 산에서, 나무 많은 데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다. 각자의 공간을 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나이 들겠지. 하지만 또 우린 은근슬쩍 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산끝자락 조용한 찻집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한가한 낮에 문이 열리고 언니가 들어온다. 손에 고구마 몇 개를 들고선 “심심해서 내려왔어”라고 말하며. 아마도 그게 우리가 맞이할, 아주 조용하고 따뜻한 마지막 챕터 중 한 페이지일 수도 있겠다.


이혼 가정에 가난한 형편. 우리에게 주어진 재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안에서 버티고, 피하고, 웃고, 울며 살아냈다. 누구보다도 서툴렀고, 누구보다도 진심이었고, 때론 누구보다도 엉망이었지만 결국 이 모습으로 남았다. 언니와 나는 다르게 살아왔고,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언니 없는 세상은 아직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늘, 그저 그런 대화였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마지막 챕터가 부디 따뜻하기를. 각자의 페이지를 잘 넘기다, 한 장쯤은 다시 함께 덮을 수 있기를. 고생 많았다고, 그래도 잘 살았다고, 그렇게 조용히 웃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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