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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자란한뼘 Jul 01. 2024

심리 상담을 마무리하며

 삶의 여정 중 훌륭한 길잡이를 만나는 것과 같다.

심리상담을 시작하면 보통 10회를 기본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 이후는 필요에 따라 추가 상담을 받는 형태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8회 차까지 상담을 수행하였고, 10회를 다 채우지는 못 했다. 회사 일이 상당히 바빠져서 왕복 한 시간 반이 조금 안 되는 거리를 오가는 것도 꽤나 힘겨웠고, 그 와중에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10회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 것이 두고두고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10회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상담 횟수만 늘어난다고 더 효과적이고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번, 한 시간을 상담하더라도 그 깊이와 진정성이 더 중요할 것이고, 상담자와 내담자가 얼마나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가가 더 중요할 것이라 본다. 하지만 10회라는 완성된 숫자를 채운다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이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내 심리상담은 과거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시작하여 MMPI와 TCI 검사를 수행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검사 결과를 통해 내가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 또 어떠한 기질을 타고났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러한 정보를 가지고 현재 힘든 부분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려 하였다. 이후의 몇 번의 상담은 상담 선생님과 다듬어 갔던 불안의 조련 방식을 실생활에 적용해 보고 그 결과를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우선 그 방법에 대해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토대로 상담 선생님의 의견을 반영하여 하나의 공식들을 다듬어 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상담 선생님께 감사했던 것은 단 한 번도 상담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의견이나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진실되게 들어주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불확실한 나의 판단을 꺼내기가 어려웠으나, 상담 선생님의 따듯한 배려에 보다 수월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여정 중 훌륭한 길잡이를 만나는 것과도 같고 생각한다. 이 길잡이들은 단순히 앞으로 나아갈 길만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지나왔던 어지러운 발자국들 또한 깔끔하게 갈무리를 해준다. 과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한다고 느꼈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이 많고 고도로 훈련된 상담사라고 내담자와 맞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많은 훌륭한 상담사들은 내담자의 성향을 맞춰 이야기를 이끌어내 주시겠지만, 상담사들도 사람이라 모든 사람들에게 잘 맞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지금까지 만나본 상담 선생님들을 생각해 봐도 모두가 맞거나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았다. 많은 상담 선생님을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총 세 분의 상담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운이 좋게도 가장 처음 가게 된 심리상담센터에서 만났던 상담 선생님이 가장 잘 맞았고, 그 분과 보낸 시간들이 가장 보람차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분께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언제가 가지고 있다. 멀리서나마 평안하시길 바랄 뿐이다.


두 번째로 가본 심리상담센터는 사내 심리상담센터였다. 첫 심리상담을 끝마치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여전히 우여곡절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장 문제였던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갑자기 상태가 좋아지는 것도 이상할 일이었기에 우울이 찾아오면 불안을 탐색하고 이해하고서는 홀로 다독이고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시기였다. 그 와중에 사내 스트레스 검사가 수행되었고, 뭐 결과는 안 봐도 뻔하게 주의가 필요한 인원으로 분류되었다. 주의 필요로 분류된 인원들에게는 사내 심리상담을 권유하는 메일이 일괄적으로 전달되었고, 이전 상담에서의 좋은 기억으로 인해 사내 심리상담을 신청했었다. 이전에 상담을 받아봤다 보니 나에게는 심리상담이라는 틀이 이미 어느 정도 잡혀있던 터였다. 그래서 사내 심리상담에는 조금 적응이 어려웠던 것 같다. 


사내 심리상담에서는 아무래도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에 집중하여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 어려움이 현재 본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와 같은 내용이었다. 사내 심리상담의 장점은 상담 선생님께서 조직 내 생리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과, 승격, 사내 정치, 불합리, 일의 몰림 현상 등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현상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사내 사람들을 대상으로 많은 상담을 하셔서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일적으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공감을 잘해주시는 점이 좋았다. 다만,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상담선생님께서도 회사에 고용되어 있는 입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걱정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었으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게 꽤나 부담스러웠다. 결국 이 분도 이 조직 내에서 스트레스받는 같은 노동자구나 싶은 생각에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게 일을 지우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안쓰러움이 들어 어느 순간 발길을 끊게 되었다.


마지막 심리상담 경험은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게 되면서 그곳과 연계된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불편하고 힘든 한 시간이었다. 당시의 힘든 마음과 상황을 털어놓는데, 상담선생님께서는 약간 추궁하듯 혹은 따지듯이 되물어오셨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당시 나의 결정과 생각의 이유를 찾으시려 한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게 조금 고압적으로도 느껴졌다. 질문에 다시 대답을 하면, 좀 더 강하게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반문하시는데, 왜 혼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까? 이전 상담들에서는 그렇게도 순식간에 지나가던 한 시간이 그렇게 더디게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최초 한 번의 상담 이후에 다시 찾아간 적은 없었다.


그렇게 많다면 많을 수도 있고, 적다면 적을 수도 있는 심리상담 경험을 털어보았다. 좋은 기억도 있고, 감사한 기억도 있고, 미안한 기억도 있고, 안쓰러운 기억도 있고, 조금은 불편했던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자면 나의 탐구의 측면에서는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 준 순간들이었다. 내가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 그 사실만으로 심리상담에 들였던 시간과 돈은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에 있어서는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신 있게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하곤 한다. 실제 그로 인해 도움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내가 약하다는 것. 내가 힘들다는 것. 견디지 못할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먼저 행동을 순간부터 이는 특별히 숨겨야 할 일은 아니게 되었다. 물론 내가 먼저 자랑하고 떠들고 다닐 이유도 전혀 없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기대와 달리 그리 녹록지 않았고, 나의 상태는 심리상담을 통한 자정작용으로 해결될 정도를 이미 넘어있었다. 견뎌내는 하루하루는 갈수록 지옥 같았고, 스스로 무너지는 간격은 더 좁아져만 갔다. 심리상담을 통해 연습하고 익혔던 여러 방법들은 강력한 무기력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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