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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자란한뼘 May 30. 2024

신비한 탄생

제 이름은...하얀이에요...!


그 탄생은 꽤나 신비로운 것이었다.      


 한 알갱이의 씨앗이 내리쬐는 태양 빛에 가여운 새잎을 틔우듯 조그마한 동그란 구름 조각은 온 하늘을 밝히는 햇빛 속에서도 반짝이고 빛을 밝히고 있었다. 겨울날의 몽글이는 눈송이 위에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 한 스푼을 더하고 여름날의 뜨거운 수증기에 가을날의 바람 한 숨을 더해 한 해 동안 키워온 그 작고 조그마했던 반짝임은 이제 밤이 들어도 주변을 환히 비출만큼 밝아져 있었다. 솜사탕 같이 몽글몽글하게 보임에도 살포시 건들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놀랄 만큼 아름답고도 신비한 새 탄생의 과정이 마무리되어 가는 그때, 많은 소곤거림이 구름 결을 살포시 딛고 서 주변을 가득 둘러싸 있었다.  

   

“구름 씨앗은 언제 깨어나는 걸까요?”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오늘이 맞는 거에요?”

“그러게, 서쪽 바랑녘에 모모 할멈이 말했으니 틀릴리는 없는데 말이야.”

“모모 할머니는 안 오셨어요? 안 보이시는데?”

“모시러 갔는데 저번에 다친 허리가 많이 안 좋으신지 저희만 다녀오래요!”

“할멈도 갈 날이 다 돼서 그런 거지 뭐.”

바퉁 아저씨! 말이라도 참!”     


소곤소곤거림은 한두 마디를 거쳐 재잘거림이 되더니 이내 왁자지껄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중 앳되어 보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뜬 기색을 이내 감추지 못하고 하늘하늘 춤을 추며 주변을 뛰어다녔다. 자그마한 체구가 한 발걸음, 한 걸음을 뛰어 오를 때마다 손끝과 머릿결을 이루는 구름 조각들이 이내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였다. 주변을 원을 그리며 돌다가도 이 구름 저 구름 사이를 싱글벙글 뛰어다니는데, 앳된 목소리에 어울리는 재기발랄한 재롱에 주변에서 미소가 번져나갔다.     


“와! 바퉁 아저씨! 저 너무 기대돼요! 새 쿠릉이 태어나는 거 처음보거든요!”

    

반대편에 뭉실거리는 수염에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바퉁이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보고 투덜거렸다.   

  

토모, 거 좀 가만히 좀 있거라. 조그만 녀석이 정신 사납게 방방 뛰어다니지 말고. 이 녀석도 깨어나려다 정신없어서 다시 잠들겠다!”     


토모는 바퉁의 그런 퉁명스런 잔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쉴 새도 없이 재잘거렸다.      


“두 계절 차이면 저랑 친구겠죠? 우와 정말 신나요!!”

“제일 먼저 제가 인사할 거에요! 다들 약속이에요!”

“어딜 먼저 소개해 줘야 하지? 동쪽 구릉? 남쪽 파랑만?”   

  

그걸 본 바퉁은 ‘허, 참. 요즘 어린 쿠릉들은’ 이라며 고개를 내저으며 투덜거렸는데, 근처에 있던 긴 머리를 한 쿠릉이 듣고는 미소를 짓더니 이내 토모를 향해 말하였다.       


“토모, 잊었니? 가장 먼저 모모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가야지.”   

  

한참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토모가 그 말을 듣더니 제자리에 우뚝서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지나!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제가 설마 모모 할머니께 인사드리는 걸 까먹었을까 봐요, 헤헤”    

  

지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조용히 내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주변에서 왁자지껄 웃음이 터져나왔다. 토모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바퉁은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 초롱골에서 참 오랜만에 쿠릉이 태어나는군. 거의 50년 만인가.”     

“바퉁, 정확히는 51년하고도 6개월 만이지요.”     

“그래. 피오, 너 똑똑하다. 하지만 네 자랑질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니야.”     

 

바퉁은 맞은 편에서 가는 눈으로 실한 웃음을 짓고 있는 피오를 힐긋 보며 한마디를 하고는 구름 아래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초롱골 구름 아래에는 넓디넓은 평원이 끝없이 놓여져 있었다. 낮은 수목들이 어우러져 펼쳐지다가도 어느 순간 아름드리 나무들이 가득한 숲들이 나타났다. 생명력 넘치게 뛰어다니는 수많은 동물들의 발소리가 마치 하늘 위 구름을 딛고 있는 쿠릉들에게도 들리는 듯하였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드넓은 강줄기는 평원 사이사이에 작은 물줄기들을 드리웠다. 크고 작은 물소리들은 평원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었다.      


군데군데 수많은 나무들과 수풀들은 가을이 불어주는 바람에 노랗고 붉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평원을 타고 밀려오며 잎사귀들을 흔들고, 잎사귀들은 기어이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하늘거리며 땅으로 내려앉아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 사방에서 모인 쿠릉들이 삼삼오오 몰고 온 구름들은 평원 군데군데 그림자를 드리웠는데, 마치 붉고 노란 도화지에 듬성듬성 옅은 물감이 묻은 듯했다. 구름 아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바퉁과 신비롭게 빛나는 동그란 구름 조각을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지은 지나가 말을 건넸다.     


“오랜만의 아후가 일어나기 정말 좋은 날이네요. 그쵸?”     

“아후가 일어나기 좋은 날 같은 건 없어, 지나. 그냥 일어날 뿐인걸. 그리고 북쪽 어름달에서는 아후가 아니라 아누라고 부른다고.”     

“하하 맞아요, 바퉁. 아후라는 이름이나 아누라는 이름이 너의 행복을 바란다는 그 뜻이 중요한 거니까요. 좋은 날이에요, 바퉁. 그쵸? 표정 풀어요. 모모 할머니 다음으로는 바퉁이 인근에서 가장 큰 어른인걸요?”


바퉁도 미소 짓는 지나 앞에서는 꿍한 표정을 풀 수밖에 없었다. 잠시 조용히 있던 토모가 그 모습을 보더니 질세라 한 마디를 더했다.     


“맞아요! 바퉁 아저씨! 좋은 날이에요! 모처럼 구름 일도 없고! 덕분에 이렇게 많은 쿠릉이 모인 것도 오랜만이고! 토모는 아후도 처음이고! 신나는 일투성이에요!”     


언제 주눅이 들었었는지도 모르게 신난 토모의 모습에 바퉁도 결국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간만의 새로운 탄생에 바퉁도 내심 설레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슈우욱-     


“시작됐다.”    

 

바퉁의 한 마디에 왁자지껄하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고요하던 바람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릉들이 에워싸고 있던 동그란 구름 씨앗이 사방에서 바람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바람은 더욱더 거세게 구름 씨앗으로 불어들기 시작했다. 불어드는 바람들은 구름 씨앗을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치며 주변을 요동시켰고, 주변의 쿠릉들은 딛고 있는 구름들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붙잡느라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피오가 능맞게 웃으며 토모를 놀리기 시작했다.


“토모, 구름 단단히 붙잡아. 떨어지기 싫으면.”    

“피오 형, 그런 무서운 소리 말아요!”

     

휘우웅- 휘우우우웅-     


토모가 소리치는 동안 바람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였고, 구석에서 분주히 구름을 붙잡고 있던 호리호리한 쿠릉이 한껏 울상을 지었다.


“내가 이래서 아후에 오기 싫다니까 말했잖아요...구름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고 다들 이러는 거야...!”     

지나가 웃는 얼굴로 요요를 달랬다.      

“요요, 여전히 겁이 많네요. 지금까지 아후를 여러 번 지켜봤지만 구름에서 떨어진 쿠릉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즐기자구요!”     

“으아아! 다른 쿠릉들이 겁이 없는 거에요! 정말 무섭다구요!”     


요요의 절규가 주변으로 퍼지는 순간, 휘날리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그쳤다.

     

그리고는 빛나던 구름 씨앗에서 눈부신 광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동그란 구름결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오색 빛줄기에 모두 앞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정도였다. 오직 들리는 소리는 놀라움을 주체 못 하는 토모의 탄성뿐이었다. 눈부심 속에서도 인상을 쓰면서도 조금이나마 탄생의 광경을 바라보고 싶던 토모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와! 너무 이뻐요...토모도 저렇게 이쁜 빛 속에서 태어난 거죠?”     


주변을 가득 채운 광채에 눈을 반쯤 감은 지나가 토모의 말을 듣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맞아, 토모. 네가 태어날 때도 참 멋진 빛들이 가득했단다.”     


아예 두 눈을 감은 피오가  한마디를 더했다.     


“너 때는 지금보다 더 정신없는 바람이 불었었다구. 나는 드디어 요요가 땅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나 싶었는데. 심지어 눈물도 찔끔했었지? 요요?”     


피오에 말에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 요요가 소리쳤다.   

  

“시끄러워요...피오...!”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바퉁이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그만들 해라, 이 녀석들아! 곧 태어날 녀석에게 부끄럽지도 않은 거냐!”     


바퉁의 고함에 요요는 찔끔하며 고개를 움츠렸고 억울함에 가득 찬 표정으로 피오를 힐끗거렸다. 피오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투닥거림과 소란 속에서 주변을 가득 채운 빛줄기가 차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분명 구름 씨앗에서 나왔던 빛들이 다시 씨앗 중심부로 천천히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마치 온 세상을 뒤덮었던 광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천히 사라지고 구름 씨앗이 있던 곳에는 한 자그마한 쿠릉이 눈을 감은 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부신 눈을 껌뻑이는 가운데 갓 탄생한 쿠릉이 천천히 눈을 뜨고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모두가 숨죽여 웅크리고 앉아있는 꼬마 쿠릉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얘 뭐야? 말을 못하는 거 아냐?”     


피오가 부셨던 눈을 여전히 꿈뻑거리며 중얼 거리자, 토모가 인상을 쓴 채로 흘겨보았다. 바로 그 때였다.  

   

“아...안녕하세요...
제 이름은...하얀이에요...!”     


꼬마 쿠릉의 앳된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  

   

초롱골에서 51년 6개월 만에 나타난 쿠릉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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