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자란한뼘 Jun 13. 2024

꼬마 쿠릉, 하얀

“초롱골은 언제 봐도 참 평화롭다니까.”

 초롱골 하늘을 듬성듬성 메우던 구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 개의 작은 조각구름만이 도동실 떠 있었다. 구름들이 물러간 사이로 쾌청한 가을날 햇볕이 따사롭게 지상을 비추었다. 너른 평야를 가득 채운 가을 햇빛은 영글어가는 곡식과 과일들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하늘에서 일어난 한차례 소란에 놀라 곳곳에 숨어있던 동물들은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고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평화로운 어느 가을날이었다.


 토모가 구름 아래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롱골은 언제 봐도 참 평화롭다니까.”     


그 말에 하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토모 형은 이곳을 자주 오나 봐요? 동쪽 구릉에 지나 누나와 계시지 않으세요?”     


“아무래도 초롱골이 중앙에 있으니까. 다른 지역을 갈 때 자주 지나쳐 가고는 하거든. 물론 우리 쿠릉들은 자기 지역을 벗어날 일이 자주 있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래!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볼까.”   

   

토모는 딛고 있던 구름 위에 자리를 본격적으로 깔고 앉았다. 하얀도 토모를 따라 제 자리에 앉고 나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토모를 바라보았다. 토모는 이내 그 눈빛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려 헛기침을 하였다.     


“큼큼, 나도 탄생한 지 어언 두 계절이나 지나서 조금은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바로 내가 누구겠어! 동쪽 구릉의 토모라구. 보자, 뭐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으려나.”     


토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우와아 하고 탄성을 내는 하얀이었다. 하얀의 눈은 기대감에 가득 차 초롱거림을 넘어 이제는 뜨거움이 넘실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하얀의 열정적인 눈빛이 느껴지는지 토모는 침을 꼴깍 삼킬 수밖에 없었다.     


“좋아, 우선 이 근처에 대해서 알려 줄게. 초롱골을 중심으로 크게 동서남북 지역이 있다고 보면 돼. 그 이상을 넘어가면 또 다른 쿠릉들의 영역이 나와. 근데 너무 멀어서 우리가 거기까지 갈 일은 별로 없을 거야. 갈 수는 있지만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 그동안 구름일이 생기면 큰일이니까.”    

 

“동쪽 구릉에 지나누나와 토모 형. 서쪽 바랑녘에 모모 할머니와 피오형. 남쪽 파랑만에 요요 형이랑 미누 누나. 북쪽 어름달에 바퉁 아저씨. 모모 할머니 빼고는 오늘 모두 인사했어요! 맞죠???”    

 

“이야, 그새 다 외운 거야? 하얀, 정말 똑똑한데. 이러면 가르칠 보람이 생기지.”   

  

그새 신이 나기 시작한 토모의 칭찬에 하얀은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에요, 모두가 친절해서 기억에 너무 잘 남았어요.”     


“그 친절한 쿠능 목록에서 피오 형은 제발 빼줘. 그 형은 순 심술쟁이야, 못된 말만 골라서 하는 걸. 또 바퉁 아저씨는 매번 혼내기만 하고 말야.”     


토모의 말에 잠시 서로의 눈이 마주치더니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직 어린 쿠릉들에게는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동쪽 구릉에 지나 누나가 있기는 하지만, 거기서도 지내는 곳은 달라서 매일 보지는 않거든. 이렇게 수다를 떠는 게 얼마 만인지 몰라.”     


“헤헤, 저도 토모 형이랑 대화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근데 지나 누나도 그렇고 피오 형도 그렇고 구름일을 하러 간다는데, 구름일이라는 게 뭐예요?”     


하얀의 질문에 토모가 기특하다는 듯한 눈빛을 하였고, 본격적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모습을 본 하얀도 사뭇 진지하게 허리를 고쳐 앉았다. 어린 쿠릉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진지하게 서로를 바라보는데, 만약 피오가 이것을 보았다면 꼬맹이들끼리 신났구만, 하고 이죽거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얀. 너도 느껴서 알겠지만, 우리 쿠릉들은 구름에서 태어나서 구름에서 지내. 구름이 없으면 저 아래로 떨어지고 말 거야. 정말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지. 바람이 구름을 각 지역에 보내주거나 저절로 군데군데 생기면, 우리는 그걸 계절에 맞춰서 이쁘게 잘라 펼쳐놓기도 하고 층층이 쌓아 올리기도 해. 지금처럼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면 보통 두텁고 평평하게 펼쳐 놓는데 각 쿠릉이 지내는 지역마다 조금씩 모양 달라져.”  

   

하얀은 토모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워놓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토모는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구름일은 우리가 구름에서 살기 위해서 쉬지 말아야 하는 일이야. 모모 할머니 말로는 쿠릉이 태어나는 목적이기도 하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레 구름을 다룰 수 있으니까. 우리 손짓 한 번에 구름이 날아가기도 하고, 당겨오기도 하고, 나눠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지. 이것 봐.”    

 

토모가 손을 그어 내리자 앉아 있던 구름 한켠이 포실하게 조각이 나 떨어져 나갔다. 이어 손을 휘두르자 두둥실 떠 있던 구름 조각이 저 멀리 밀려 나가고, 손으로 허공을 잡고 몸으로 끌어당기자 저 멀리 밀려 나갔던 구름 조각은 다시 하얀과 토모가 앉아 있던 구름에 섞여 들었다. 언제 구름이 떨어져 나갔냐는 듯이 흔적도 구름에는 나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쉽지? 너도 금방 될 거야. 한 번 해볼까?”     


의기양양한 표정의 토모가 일어나 앉아있던 하얀의 손을 끌어 일으켜 세웠다. 신기한 얼굴로 토모의 솜씨를 바라본 하얀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다들 떠나갈 때 보았지만, 정말 신기해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될까요?”     


“걱정 마, 구름은 우리를 무척 좋아해. 하얀, 네가 생각하고 이끄는 대로 움직여 줄 거야. 쿠릉들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거든.”     


하얀의 얼굴에는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였다. 하얀은 한숨을 크게 들이쉰 뒤 조금은 초조한 표정을 애써 감추고 공중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잘 부탁해 구름들아! 내 이름은 하얀이야!”     


그리고 토모가 한 것과 같이 딛고 있던 구름 끝을 향해 손을 조심히 그어 내렸다. 그러나 거짓말같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얀과 토모 사이에 잠시 흐르는 것은 정적뿐이었다. 토모가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으며 말했다.     


“처, 처음에는 원래 어려워. 괜찮아, 괜찮아. 나도 한 번에는 잘 안 됐는걸? 아, 아닌가, 한 번에 됐던 것 같기도 하고....”     


작아지는 토모의 목소리에 하얀의 어깨가 축 처졌다.   

   

“토모 형, 쿠릉들에게는 당연히 되는 게 맞는 거죠....?” 

    

풀이 죽은 하얀이 토모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두둥실-     


하얀이 내리그었던 구름 끝에서 한 조각의 구름이 두 꼬마 쿠릉의 관심이 조금은 부끄러운지 슬며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각난 구름 조각을 본 하얀과 토모는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성공이다! 거봐, 내가 말했잖아! 된다니까!”   

  

“우와아아! 토모 형, 제가 해냈어요! 너무 기분 좋아요!”  

   

두 꼬마 쿠릉이 서로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동안 떨어져 나온 구름 조각은 방향을 잃고 조용히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한참을 신나 있던 두 쿠릉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구름 조각이 꽤 멀리 밀려난 상태였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하얀, 자르는 것도 해냈으니까 당겨오는 것도 쉽게 할 수 있을 거야. 조금 멀어 보이기는 한데... 괜찮아. 원래 연습은 힘들게 하는 거라고 바퉁 아저씨가 그랬거든.”     

 

상기된 표정이 얼굴에서 채 가시지 않은 하얀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해볼게요! 어떻게 하면 돼요?”     


“하하하, 하얀. 이미 느끼고 있잖아. 우리는 쿠릉이라고. 자를 때와 마찬가지로 당겨온다고 생각해 봐. 지나 누나가 구름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거라 했어. 마음에 진심을 담아봐.” 


“마음으로 움직인다. 진심을 담는다. 마음으로 움직인다.”    

 

하얀은 토모가 말해준 방법을 절대 잊지 않으려는 듯 꼭꼭 씹듯이 몇 번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그 사이에도 조금씩 멀어지는 구름 조각을 향해 손을 뻗어 천천히 당겨보았다. 하지만 구름은 멈추지 않았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하얀은 진지한 표정으로 재차 손을 뻗어 천천히 당기었다. 옆에서 토모가 긴장된 표정으로 감추지 않은 채 침을 꿀꺽 삼키었다.      


그렇게 하얀이 몇 번의 손짓을 반복하는 동안 떨어져 나간 구름조각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였고 이내 공중에서 멈추고 말았다. 토모는 하얀이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까 환호성을 지를뻔한 입을 양손으로 급하게 틀어막고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좋아,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간절한 토모의 속삭임 덕분인지 멈춘 채 미동도 없던 구름 조각이 스르륵 움직여 당겨오기 시작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구름 조각은 서서히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하얀과 토모를 향해 날아가는데, 그 속도에 토모가 놀라서 하얀을 향해 소리쳤다.     


“우왓! 하얀! 너무 빨라! 천천히. 천천히! 온다. 온다. 온다!!”  

   

“으아! 느려져라! 천천히 와라!! 멈춰라!!!”     


하얀의 간절한 외침에 반응이라도 한 듯 구름 조각은 더욱더 속도를 높여 코앞까지 다가왔고, 하얀 앞에서 도망도 못 가고  서 있던 토모의 얼굴에 그대로 날아와 부딪쳤다. 조그마한 구름 조각은 더 조그마한 토모의 얼굴을 그대로 포옹하고 삼켰는데, 마치 구름 조각이 토모의 얼굴을 대신한 것만 같았다.     


구름 조각을 나눌 때 이후로 다시 한번 하얀과 토모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구름 조각 속에서 얼굴을 불쑥 꺼낸 토모와 하얀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 꼬마 쿠릉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둘은 얼마나 즐거운지 구름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하하하, 방금 봤어? 구름이 퐁 하고 얼굴을 먹었어!” 

    

“하하하, 웃으면 안 되는데 미안해요 토모 형, 구름 얼굴이 생긴 것 같았어요, 하하하”     


그렇게 몇 번을 더 떼굴거리며 정신없이 웃다가 지쳤는지 둘은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숨을 고른 하얀은 시선을 그대로 하늘을 향한 채 말하였다.     


“고마워요, 토모 형. 형이 아니었으면 혼자서는 절대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 내가 바로 동쪽 구릉의 토모라고! 우린 구름 위의 쿠릉이야. 이 정도는 전혀 문제없지!”     

“멋져요! 저도 형처럼 훌륭한 초롱골의 하얀이 될 거예요!    

  

하얀의 말에 토모는 실룩이는 입가를 주체하지 못하였다. 이내 표정을 가다듬은 토모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하얀을 일으켜 세웠다.     


”좋아! 이 기세로 구름 위를 건너가는 걸 바로 해보자. “   

  

”아까 다른 분들이 돌아가실 때처럼 말이죠?     


“맞아! 구름 일을 하려면 많이 돌아다녀야 하다 보니까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구름을 일일이 붙여서 다니는 것보다는 멀리멀리 구름 조각을 던져 뛰어다니는 게 훨씬 더 빠르거든. 그럼 천천히 가볼 테니까 따라와 봐.”     

말을 마친 토모가 딛고 있던 구름을 조금씩 잘라 던지기 시작하였다. 하나의 조각을 던지면서 날아가는 구름 조각 위로 폴짝 뛰어오르고 그다음 조각을 던지면서 다시 또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뒤에 남은 구름 조각을 당겨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 하얀도 곧장 구름 조각을 잘라 던져 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한 조각, 한 조각 조심스레 뛰어오르던 하얀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속도가 나기 시작하였다. 빨라지는 하얀의 속도에 맞춰 토모도 폴짝이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두 쿠능은 한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두 꼬마 쿠릉은 근처를 크게 한 바퀴 돌고는 처음 시작했던 구름 뭉치에 다시 뛰어내렸다. 신나게 뛰고 와서인지 숨이 턱끝까지 차서는 한참으로 헥헥거리며 숨을 골랐다.   

  

“흐아, 너무 신나게 뛰었다녔나 봐요. 그래도 너무 즐거웠어요.”     


“맞아, 나도 너무 신났어. 한참을 뛰어다녔더니 이제 슬슬 배가 고픈걸. 하얀, 너는 어때?”     


그때 하얀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들은 토모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얼굴이 빨개진 하얀이 멋쩍게 웃으며 배를 통통였다.     


“헤헤, 제 배도 배고프다고 난리에요.”     


“그치? 앉아서 뭐 좀 먹자구. 오랜만에 초롱골 구름 맛 좀 봐야겠는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토모가 구름에 손을 뻗어 한 주먹어치를 뜯어내 주무르기 시작했는데, 금세 초롱골 구름 아래 펼쳐진 커다란 나무 모양이 되었다. 이내 토모는 나무 모양을 한 구름 윗부분을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초롱골 구름 맛은 참 깔끔하다니까. 우리 동쪽 구릉의 구름은 조금 무거운 맛이 나는데 말이야.”     


토모의 말을 들은 하얀도 토모를 따라 구름을 한 주먹 뜯어내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모처럼 깔끔하게 만들지는 못하고 어설픈 모습의 나무 구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구름을 한가득 물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웅얼거렸다.     


“토모혀, 마시서여! 그데 지역뫄돠 그름 마시 다 다라여?”    

 

그 모습을 본 토모가 재차 쿡쿡 웃으며 말했다.     


“체하겠다. 다 먹고 말해. 음, 아무래도 구름 아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바퉁 아저씨가 있는 북쪽 어릉망은 구름에서 차가운 맛이 나고, 요요 형이 있는 남쪽 파랑망 구름은 조금 짠맛이 난달까? 모모 할머니네 서쪽 바랑녘 구름이 건조하고 제일 심심한 맛이 나는 것 같아. 내 취향은 아니야.”    

 

“우와 신기해요, 다음에 가보면 한 번씩 다 먹어볼래요!”     


그새 한입을 다 먹고 입을 쓱하고 닦은 하얀이 다시 나무 구름을 주물럭거렸는데 아까보다는 훨씬 그럴듯한 모양이 나왔다. 토모는 흥미로운 듯 바라보았고 하얀은 어느덧 두 번째 나무 모양 구름도 먹어가기 시작했다.     

“하하, 하얀. 많이 배고팠구나. 그래그래, 금방 그럴 기회가 있을 거야. 구름 일에 조금 더 익숙해지면 모모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가야지.”     


두 꼬마 쿠릉이 신나게 수다를 떨면서 구름 식사를 하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해는 고개를 숨기며 하늘에 뜨거운 빛을 뿌렸고, 그렇게 온 세상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하얀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구름을 먹고 있던 것도 잠시 잊고 멍하니 입을 벌려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토모 형, 너무 아름다워요. 저 해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이대로 사라지는 거예요?”     


“하하, 아냐. 내일이 되면 반대편에서 올라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매일 보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나도 처음에는 온종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는걸.”     


“영영 안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이 광경이 익숙해져서 아무 느낌이 들지 않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모모 할머니가 그랬는데, 모든 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또 변해가고 그런 거래. 무슨 자연스런 흐름이라나 뭐라나. 사실 나도 아직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토모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해를 못 하였다는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한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사실 500년을 넘게 살아왔다고 알려진 모모의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아직 토모는 너무 어린 쿠릉이었다.     


“모모 할머니는 자주 어려운 이야기를 해. 그래도 모모 할머니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내가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 보니 다른 쿠릉들이 어리게만 보거든. 그런데 모모 할머니는 나를 어엿한 하나의 쿠릉으로 봐주셔.”     


“그렇구나, 정말 궁금해요. 저도 얼른 모모 할머니를 보고 싶어요!” 

    

“그래! 구름 일만 조금 익숙해지면 바로 서쪽으로 떠나자! 서쪽 바랑녘은 바람이 참 좋거든. 하얀, 네 마음에도 꼭 들 거야.”     


“네! 좋아요. 구름 일도 열심히 배울게요!”     


두 꼬마 쿠릉이 기운차게 의기투합하는 동안 열기를 내뿜던 해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해가 넘어간 반대쪽 하늘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어둠은 어느새 온 세상을 덮었고, 그 빈자리를 달과 별이 빛내 채우기 시작했다. 해질녘의 감동에서 채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하얀은 또다시 입을 쩍 벌릴 뿐이었다. 토모는 그런 하얀을 보며 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기 시작했다. 어른별부터 애기별, 얼음별, 바다별, 꽃별까지 수많은 별들의 모습과 이름들이 하얀의 눈과 귀에 스며들었다.


많은 일이 벌어졌던 하루 끝에서 토모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애써 붙잡고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였다.     


“후암-! 정말 긴 하루였어. 하얀은 피곤하지 않아?”    

 

“정말 피곤해요.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요.”    

 

하얀이 노곤함을 견디며 졸린 눈을 비비는 동안 토모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살랑이는 가운데 구름으로 잠자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울퉁불퉁한 구름을 다듬어 평평하게 만들고는 그 옆에 또 다른 잠자리를 정성을 다해 다듬었다.      


“하얀, 너의 첫 잠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정말 기뻐. 지나가 내 첫 잠자리를 준비해 줬었던 때가 생각나는걸.”     


“정말 고마워요, 토모 형. 형은 정말 좋은 쿠릉이에요.”    

 

“헤헤,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얼른 자자. 내일도 할 일이 많아.”

     

여전히 칭찬이 부끄러운 토모는 다듬어 놓은 잠자리에 벌러덩 몸을 던졌다. 하얀도 토모를 따라서 잠자리에 뛰어들었다. 서로 잘 자라는 인사도 건네기도 전에 도로롱 잠든 소리가 달과 별이 환히 빛나는 초롱골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하얀! 이쪽에 구름을 좀 더 쌓아야 할 것 같아! 너무 얕으면 발이 빠지기도 해”    

 

“네! 여기 마무리하고 얼른 갈게요!”     


가을 쬐약볕 아래 두 꼬마 쿠릉이 송골송골 구슬땀을 흘리며 구름을 재단하고 있었다. 하얀의 움직임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던 토모가 소리쳤다.     


“그만하면 충분하겠어! 하얀, 너 정말 금방 배우는 걸”     


“에이, 아니에요. 토모 형이 잘 가르쳐준 덕분이죠! 아직 토모형처럼 하려면 멀었는걸요.”  

   

“아냐, 이만하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가르쳐 준 것 같아. 나머지 일은 조금만 지나면 금방 익숙해지겠는걸? 이만 슬슬 마무리하고 서쪽으로 출발해 볼까? 모모 할머니도 궁금해서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실 거야.”     

토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얀이 손에 쥐고 있던 구름 조각을 내려놓고 환호성을 내뱉었다.  

   

“우와! 정말요? 언제 그 말을 하려나 궁금했다고요.”     


“하하, 미안해. 구름 일을 제대로 안 가르쳐줬다가는 나중에 바퉁 아저씨한테 호되게 혼날 거라 어쩔 수 없었어. 지금 하던 구름 일만 정리되면 출발하자.”     


“네! 좋아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조금은 지쳐가던 하얀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훌륭히 재단된 층층구름이 초롱골 하늘을 수놓았다. 그 뒤로 서쪽으로 늘어선 작은 구름 조각들이 두 꼬마 쿠릉의 흔적을 나타낼 뿐이었다.      

이전 02화 짧은 만남과 헤어짐, 그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