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합을 도모하고 싶지 않은 이들과의 회식이라면,
돌연 있지도 않은 친척 어르신 한 분 쯤 돌아가시게 만드는 게 적절한 성의다. 이곳은 한국잉께.
관리자가 나고 자란 곳이 전라남도라는 이유로. 이제 막 보리술 넘기는 법을 겨우 터득한 시절.
40도에 육박하는 진도산 홍주를 술잔 받아 머금고, 빈물 잔에 뱉기를 반복.
가수가 장래희망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연기자로 돌변해 취한 척 열연해야 했던 20대의 고된 날들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사회성이나 적응기술에 능한 신규교사 정도로 형용할 테고, 정확한 표현으론 평균 이상? 영악했다. '치가 떨리게 싫은 일'이라면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요령껏 대각선 꽃게 걸음으로 스리슬쩍 피해 버텼다. 굽어보면 그야말로 재수 없는 캐릭터? 맞다.
이놈의 한국사회에 적을 두고 살아가려면 재주껏 버텨야 할 것들이 넘쳐났으니까.라고 예의상 둘러대기라도 해 보자.
위계질서는 기본, 패 가르기, 상명하복 정도로 대표될 직장문화란 사람다움을 가르치는 공간 안일수록 뿌리가 깊은 건가 싶게 잦게 구역감을 느꼈다.
나름 짬밥이 된 지금의 나라고 해서 더 객관적이거나, 덜 모면하며 살고 있진 않아 낯뜨겁긴 하다. 다만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바가 하나 있다면, 그럴수록 생업 이외에 호흡이 가다듬어지는 일이 마련되는 편이 낫다는 점.
누구에게라도 그렇다.
'해도 좋은 일' 하나쯤 찾아보고 거기서 안녕을 저축해 두는 삶. 필수다.
운동을 할 때만큼은 '안 할 궁리'를 모색하지 않아, 그래도 뭐 하나 하고 살려는 그것이 있다는 데에 안심한다.
열에 아홉, 대체로
욕망과 권태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근근이 살아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