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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Jul 21. 2023

남편이 끓인 미역국

  냉장고에 산지 이틀 지난 국거리 소고기가 있었다. 전날, 다음날 저녁도 외식을 해서 국을 끓이지 못했다. 더 이상 미루면 '이 고기 먹어도 되나요?' 상태가 될 거 같아 미역국을 끓여놓고 자려고 했다. 그때 소파에 누워 쉬고 있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퇴근 후 피곤할 텐데 그냥 쉬게 두자 싶다가도 남편이 끓인 미역국이 먹고 싶어 그를 움직일 말들을 건네본다.


"지난번에 미역국 너무 맛있던데 어떻게 한 거야? 그 때꺼 진짜 맛있었어. " (맛있는 미역국 먹고싶어. 아침 애들이랑 먹을래. 얼른 끓여줘.) 


     "여보가 한 게 더 맛있어~" (어딜 떠넘겨. 애들은 네가 한 거도 잘 먹잖아. ) 라며 가볍게 토스.


"나 빨래 개야 되는데 그 사이 미역국 좀 끓여주면 안 돼?" (내가 지금 놀고 있니? 같이 일하고 같이 쉬자)


     "내일 개도 되잖아." (나는 지금까지 일하다가 왔잖아. 오늘은 건들지 말아 줘)



"냉장고에 고기, 늘 지나면 맛 없어질 거 같아." (이래도 안 해?)


       "진짜? 알았어. 꺼내봐." (져준다.)


성공.

오늘 지나면 없어질 고기의 신선도가 그를 움직였다. 냄비는 불에 달구어졌다. 향긋한 참기름 냄새가 나고 치이익 고기와 미역이 볶아졌다. 딱딱 마늘 다지는 소리가 나고 보글보글. 미역국이 완성됐다.




  남편의 미역국은 정말 맛있다.  분명 네이버에 검색해서 백종원 레시피를 보고 했을 텐데. 아이들은 내가 한 미역국도 좋아하긴 하지만 나는 남편이 끓인 미역국이 다. 내가 끓인 미역국은 국물색이 불투명하고 탁한 반면 남편의 미역국은 맑고 투명했다. 비결은 국간장 양과 다진 마늘. 국간장을 소량만 쓰고 멸치액젓으로 간을 맞추는 게 포인트라 한다. 또 남편은 잘게 다져진 다진 마늘이 아닌 생마늘을 칼 손잡이로 대충 빻아서 넣었다.  소고기의 깊은 맛과 최소한의 간을 한 깔끔한 . 맑은 미역국에 자꾸만 손이 간다. 시간을 내서 맛있는 국을 끓여놓고 잔 남편에게 고마웠다.





돌이켜보니 남편의 미역국은 날로 진화했다. 연애 때였다. 남편과 사귄 첫 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너무 쓴 맛이 났다. 미역을 불린 물까지 다 미역국에 넣어서 끓였다고 했다. 당시 남편은 미역을 불린 물에 바다 맛의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 당시엔 백종원 대표 음식이 유행하지 않아서 엿볼 레시피가 없었던 걸까. 너무 써서 못 먹었다고 하면 실망할 거 같아 맛있었다고 둘러댔던 기억이 난다. 맛없었다고 하면 내년 생일부터 남자 친구가 만든 미역국을 못 먹을 거 같아서였다. 맛없을지언정 직접 끓인 정성은 선물 받고 싶던 나였다.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던 요리처럼 그는 서툴렀고 나는 갈등을 두려워했다. 그를 믿어주기 전에 주변을 의식했던 나였다.





 다음 날 미역국으로 아이들 아침을 먹여 등교시키고 늦은 아침식사를 하려고 밥을 공기에 퍼담고 미역국을 떠 식탁에 놓았다. 혼밥 하며 볼 겸 넷플릭스에 올라온 연애 프로그램을(하트시그널 4) 봤는데 웬걸 너무 재밌잖아. 패널들과 한마음이 되어서 오늘의 커플을 매칭하고 마음이 가는 출연자를 응원했다. 서로의 눈 맞춤을 보내고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다 시그널이다. 저렇게 까지 디테일하다고? 싶을 정도로 의식과 무의식을 분석한다. 가까워지고 싶은 상대에게 호감을 건넨다. 

간질간질 콩닥콩닥 좋을 때다.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며 연애프로그램을 보니 그 때의 우리가 떠올라 웃음이 지어졌다. 썸 타다 연애했던 풋풋했던 이십 대, 가슴 떨리게 좋아했고 치열하게 싸웠던 날들.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울고불고 아파하다 잠 못 든 날도 있었지. 불안하기 짝이 없던 현실이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지구 반대편에 간다 해도 두렵지 않던 치기 어리던 연애시절. 


미역국 맛이 진화했듯 우리 관계도 발전했다. 5년이란 연애 기간 동안 주변이 아닌 서로를 바라보며 돈독해져 갔고 깊이 있어졌다. 센스와 배려로 싸움을 최소화했고 싸우더라도 회피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남편이 끓인 미역국을 먹으며 그날들이 스친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그널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의 미역국을 얻기 위해 시그널 보내는 어느덧 10년 차 부부가 되었다.



여전히 우린 서툴기도 다투기도 때론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역국에 비유하자면 써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무얼 더 넣어야 맛이 나는지 정도는 알 거 같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느끼며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는 과정 중에 진한 우정도 쌓아간다.


"결국은 편한 게 좋아. 그게 더 깊은 사랑이라 생각해."

한 출연자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한다.


아침 미역국은 든든하고 따뜻했다. 여러해 거쳐 다듬어진만큼 참 맛있었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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