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를 즐겨 마신 지도 수십 년이 되었다. 처음 차를 대했던 기억은 긴 시간을 들여 만들어주시던 엄마의 수정과나 식혜와 비견될 정도로 따스한 추억을 동반한다. 어린 시절에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 자란 서울을 떠나 부모님의 고향인 여주로 이사했다. 남한강가에 자리한 작은 마을엔 집집마다 감나무가 그득했다.
감잎이 새순을 낼 때면 엄마는 감잎을 따서 잘게 썰어 늦은 봄볕에 바삭하게 말려 항아리에 밀봉해 두었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화롯불에 주전자를 얹어놓고 그 옆에서 뜨개질을 했다. 말린 귤껍질과 감잎을 넣은 주전자 물이 화롯불에 뭉근하게 달여질 때면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집안 가득 퍼졌다. 그 특별한 엄마표 음료를 우리는 감귤탕이라고 불렀다.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에 그것은 참으로 고급스러운 음료였다. 감잎과 귤피가 감기를 예방한다고 굳게 믿었던 엄마의 소신 덕분에 우리 자매들은 겨울이 시작되면 따끈한 귤차를 마셨다. 주발에 담긴 차를 받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음미할 때면 귀하게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엄마의 감귤탕을 나는 지금 더 다양한 레시피로 활용하고 있다. 무농약 귤껍질을 썰어 말려 루이보스나 홍차 혹은 허브재료와 블랜딩 해서 즐기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귤피차라고 부른다. 그걸 마실 때마다 향기로운 감귤탕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리운 추억에는 온도와 빛깔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특별활동으로 문예부에 지원한 나는 선배 언니의 권유로 문예부 활동이 이루어지는 교내 도서관의 사서를 자원했다. 도서관은 내 취향과 관심에 딱 맞는 공간이었다. 그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얼마나 컸던지 등교하자마자 달려갔고 점심시간과 방과 후 막차시간까지 도서관에서 보냈다. 자연스럽게 방과 후에 도서관을 즐겨 찾는 역사 선생님과 친해졌다.
교대를 막 졸업하고 초임으로 우리 학교에 오신 선생님은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갖 졸업하고 시골학교에 부임한 처녀였으니 그분도 어리고 두려움도 많았을 것이다. 당시 고작해야 면단위였던 낯선 시골 마을에 문화생활을 할만한 곳도 없고 교통도 뜸했던 시절이었으니 선생님도 마음 편히 지낼 곳이 딱히 없었을 것이다. 도서관에 올 때마다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시는 선생님께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내가 미래를 설계하도록 들어주셨고 도움이 될만한 말씀을 나눠주셨다.
선생님께서 선배 언니와 나를 숙소에 초대해 주셨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박한 선생님의 숙소는 학부형이 운영하는 하숙집이었다. 방의 한쪽 벽에 삼단 책장이 놓여있었다. 거기에 진열된 책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리가 책을 구경하는 동안 선생님이 보온물통을 준비하고 다구를 쟁반에 챙겨 오셨다. 백자 다관에 녹차를 우리는 걸 처음 보았다. 한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옥빛 잔에 따르어 주신 녹차의 향기와 빛깔은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차를 대접해 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엄마의 귤차가 행복했던 것처럼 선생님의 녹차는 내 학창 시절의 수많은 기억들 중의 으뜸이 되었다.
2년 후 선생님이 타학교로 전근할 때까지 종종 선생님의 차를 얻어마셨고, 선생님의 간단한 다구로 다례를 배웠다. 선생님은 차 외에도 인상 깊은 선물을 하나 더 주셨다. 당시 이슈가 되는 에세이나 소설책을 사서 읽고 빌려주셨던 것이다. 선생님 덕분에 나는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를 감성이 풍부한 고등학교 시절에 읽고 감상평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 책을 읽다가 선생님이 남긴 메모나 밑줄을 만나면 노트에 옮겨놓고 선생님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혹은 공감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스무 살 이후론 차를 마실 기회가 많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커피보다는 녹차에 끌렸다. 아무래도 단 것이나 군것질을 즐기지 않는 입맛 때문인지도 몰랐다. 요즘엔 다양한 대용차를 만들어 마시지만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건 내 손으로 길들인 다구에 적절한 숙수로 우린 녹차다. 그저 간소하게 즐기는 생활다인의 다반사지만 그것이 내게는 가장 편하게 즐기는 일상힐링의 레시피다.
다도와 다례가 품고 있는 엄정한 절차와 형식은 전통문화 전수자들이 잘 이어가고 있으므로. 나는 바쁜 현대인이 커피처럼 손쉽게 즐길 수 있는 한국 녹차의 활용에 더 관심이 많다. 청량한 녹차의 향미를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질문 끝에 마음을 스치는 차들이 있다. 홍차 황차 철관음 백차 보이차 등등. 발효도에 따라 구별한 녹차의 다른 이름들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른다.
대륙마다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치유의 음료가 있다. 남미의 마테, 남아프리카의 루이보스, 아시아의 모링가, 유럽의 허브티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늦게 보급되었지만 17세기 이후 전 세계를 열광시킨 악마의 음료 커피까지. 참으로 소중하고 훌륭한 음료들이다. 역사적으로 현재 우리는 여러 대륙의 차들을 골고루 음미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나 진시황이 상상하지 못한 사치를 누리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매개가 되는 그 음료들을 사랑한다. 그중에 어느 것을 좋아하든 각자의 기호에 맞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많은 차음료를 활용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녹차를 더 선호하듯이.
결혼 후 육아를 하는 동안 차는 고단한 나를 어루만지는 위로였다. 문득 내 생활에서 차의 비중을 깨달았을 땐 중국 난징의 골동품거리에서 수세기 전의 다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어디를 여행하든 차문화를 찾았다. 사귈수록 끌리는 친구처럼 나는 그렇게 시나브로 차와 사랑에 빠졌다. 차로 인해 얻는 유익과 행복감도 깊어졌다. 작은 행복이 누적되는 동안 깨달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내 존재감마저 상실한 순간에 차가 나 자신을 챙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순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차가 누군가 소중한 사람과 접속하는 순간에도 마음을 나눌 가장 요긴한 매개물이 되어 준다는 것을. 내 몸을 편안하게 하는 차의 효능이야 말해 무엇할까.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차는 변함없이 벗이 되어주고 있다. 여행을 가든, 선물을 준비하든 차를 앞세운다. 나도 남도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차와 더불어 살아가다 보니 차를 나누고 알리는 강사가 되었고, 누옥에 마련한 작은 다실에서 차를 만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차를 나누며 차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나의 벗이 되어준 차가 소중하기에 차를 기르고 만드는 이들을 애정하고, 차 도구를 만드는 이들에게도 감사하다.
차 벗이 된 덕분에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공유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힐링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길, 그리고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벗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