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전 한 꼬집을 덜어낸다. 다완을 들고 흔들어 암녹색의 마른 찻잎의 크기와 색을 확인한다. 다완에 코끝을 대고 향기를 마신다. 간질간질한 건초향기가 여리고 수줍다. 끓인 물을 식힘그릇에 덜어 한 뼘 높이에서 천천히 붓는다. 물을 만난 찻잎이 춤을 추며 점핑을 한다. 달큼하고 신선한 풀향기가 번져 나온다. 물이 안정되면서 움직임을 멈춘 찻잎들이 바늘처럼 선다. 다완을 들면 풍겨 나오는 우전의 차향이 아찔하다. 겨울을 건너와 피워낸 첫 잎의 봄향기, 그것을 입안에 머금으면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고요만 남는다. 연수의 밀도가 느껴지는 목 넘김 후에 입안이 화해지면서 고이는 단침! 차를 마시는 동안은 입안에 들어오는 공기도 달다. 차 한 잔에 정신이 말갛게 깨어나고 매무새를 단정히 한다. 차를 우리는 시간 덕분에 구겨져있던 일상이 단아하게 정돈된다. 글을 쓰기 전, 먼저 녹차를 우리는 까닭이다.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는 나는 평소에 생식을 즐긴다. 주로 아침에 생식을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못해 그냥 잠들기 출출한 날에도 식사로 위를 부담스럽게 하기보다는 섬유질이 풍부한 아보카도나 용과 등으로 간단하게 생식을 한다. 가끔은 시간밥에 길들여진 위가 가짜 굶주림을 호소하도록 방치할 때도 있다. 간헐적 단식으로 잘 알려진 오토파지 건강관리법을 실행할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만 해도 효과가 좋다. 다음 날 아침이 편안하다. 저녁과 아침 사이에 공복 시간을 배고프다는 느낌 없이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나는 차를 이용한다. 저녁엔 카페인이 없는 허브음료를 마시고 아침엔 발효차를 마신다. 마신 차의 두세 배 되는 물도 반드시 챙겨 마신다. 아침에 차를 마시면 정신을 깨우기에 참 좋다. 인지기능을 향상하고 지방 분해를 촉진하기 때문에 가볍고 청량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먹거리가 풍부한 한국에서는 겨울철에도 하우스에서 재배한 야채들이 넘쳐난다. 저온 냉장이 발달하여 가을에 수확하는 사과를 일 년 내내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만약 앞으로 평생 야채나 과일 없이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그 옛날 해양제국의 시대에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들은 비타민 영양소의 부족으로 면역체계가 무너져 괴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 레몬을 필수식품으로 챙겼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그렇듯이 영양분의 섭취는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야채나 과일을 공급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유목민은 어떻게 건강을 지킬까? 이 글을 읽는 독자분이 만약 유목민과 같은 환경에 놓여있고, 단 한 가지의 식물만 공급받을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2019년에 아시아 저널에서 발표한 통계를 참고하면 연간 1인당 차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로 몽골을 꼽는다. 몽골의 수태차는 녹차를 발효시켜 만든 차를 양유나 염소젖과 함께 끓여서 마시는 방식이다. 버터차를 의미하는 수태차를 현재 우리가 마시는 음료와 비교하면 밀크티와 유사하다. 유목민들이 소비하는 연간 차의 소비량은 1인당 9~12kg이다. 차를 많이 마시는 튀르키예인이 연간 1000잔의 차를 마신다고 알려져 있으나 몽골 유목민은 수태차를 하루 60잔 정도 마신다고 하니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몽골 유목민은 세계에서 육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잘 알려진 대로 이들의 주식은 육류와 유제품과 밀이다. 때문에 야채와 과일에서 얻어야 할 비타민군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들은 차를 마시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중요한 것을 알게 해 준다. 과일과 채소의 영양분을 전혀 공급받을 수 없을 때 그 모든 영양소를 대체할 유일하고 완벽한 식품이 차라는 것이다. 차가 이토록 중요한 영양공급원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차를 그저 기호식품 중의 하나라고 인식한다.
녹차의 효능을 강조하기 위해 몽골 유목민의 차 소비에 대한 통계를 인용했다. 귀에 피가 날 만큼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녹차의 영양분에 대해서 짚어보려고 한다. 그동안의 차공부 과정에서 독서와 논문들을 읽고 누적해 온 지식이기에 일일이 출처를 달지 못하는 점에 대해 양해를 먼저 구하고 싶다. 더 많은 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기술하고 있지만, 이것은 공공의 지식에서 덜어온 것이지 나의 연구성과는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녹차에는 현대인이 원하는 효능이 두루 함유되어 있다. 우선 지방을 분해하여 내장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 일상생활 속에서 차를 꾸준히 마시는 사람은 복부가 가볍다. 차를 챙겨마시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습관이다. 하지만 몸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저 성실히 역할을 감당하면서 바쁘게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갱년기를 맞이하여 호르몬의 급변을 겪게 되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의 생애발달주기이다. 해마다 줄어드는 대사량으로 인해 일할 힘을 주던 밥의 영양분은 정상적으로 대사 되지 못해 원치 않는 비만을 초래한다. 한 줌에 잡히던 내 허리가 관 사이즈를 넘어 항아리 사이즈가 되는 것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내장지방이 튜브처럼 쌓인 중년의 복부는 그 자체로도 미관상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내장지방이 생명을 위협하는 주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뱃살이 혈압과 당뇨 비만 고지혈증을 부르고 대사증후군과 만성염증까지 불러들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녹차는 세포의 염증물질 분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여 만성염증을 억제한다. 녹차아로마가 여드름 치료 보조제로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효능 때문이다. 녹차의 탄닌성분은 늘어난 모공을 축소시키는 작용을 하며 풍부한 항산화성분은 미백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핫하게 떠오른 글루타티온 역시 항산화성분을 이용한 미백효과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또 녹차의 항산화성분이 암 예방은 물론이고 암세포의 신생혈관을 억제시켜 암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도록 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녹차의 카페인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다. 녹차에는 신경 각성 작용이 있는 카페인과 신경 안정 작용이 있는 테아민이라는 물질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머리는 맑게 하면서도 마음은 편안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녹차 카페인의 또 다른 역할은 차의 많은 성분들이 흡수되도록 돕고 흡수가 끝나면 완전히 분해되어 체외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또 녹차는 이뇨작용을 통해 혈액을 맑게 하고 차의 미네랄 성분이 독을 배출시킨다는 것이 많은 임상을 통해 알려져 있다. 소화를 촉진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작용을 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녹차의 좋은 점만 강조하면 체질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차생활을 다짐할 수도 있다. 녹차의 해독 성분이 아무리 좋아도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 체크해 보고 자신의 체질에 맞도록 적용하면 좋겠다. 우선 빈혈이 있는 분은 녹차 속에 있는 탄닌 성분이 철분의 흡수를 억제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녹차를 마시기에 좋은 시간은 식사 후 1~2시간이 경과되었을 때가 좋다. 또 위장이 약한 분은 녹차의 성분이 오히려 위를 자극할 수 있다. 위염이 있는 분이 매일 녹차를 마시면 회복이 느려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콜레스테롤 약을 복용하는 분은 약물의 흡수가 떨어지거나 과해질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 진통 소염제를 상비의약품으로 드시는 분은 녹차의 항산화성분인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GCG)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세트아미노펜을 함께 복용할 경우 간 독성을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고 한다. 특히 녹차 추출물을 함께 복용하여 간 질환이 악화되었다는 보고도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또한 만성신장질환을 가진 분은 칼륨 함량이 높은 녹차를 마시면 신장에서 칼륨을 효과적으로 배출하지 못하므로 혈중 칼륨함량이 급격하게 높아질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녹차의 카페인은 커피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카페인 분해 유전자가 없는 분은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면증이 올 수 있어 주의하는 것이 좋다. 손발이 차고 냉한 분들, 대사가 느린 저혈압을 가진 분들은 녹차가 항진시키는 기능보다는 대사를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생차인 녹차로 마시는 것보다는 산화효소에 의해 발효된 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과유불급,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녹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신의 몸 상태와 질환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된 복용을 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것도 올바른 복용법을 알고 먹어야 유익한 것이다. 사소한 습관이 커다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차를 식사 중이나 식사 후 바로 마시면 음식의 영양성분이 흡수되는 것을 방해한다. 만약 명절이나 연말, 거듭되는 회식으로 체중관리가 어려울 때는 차의 이러한 작용을 이용할 수 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의 전제에는 보이지 않는 괄호가 있다. 그 괄호 안에 들어가는 말이 '(녹차를 먹고)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해야 말이 된다는 것이다. 녹차의 작용이 체질에 따라 반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녹차의 뛰어난 이뇨작용 때문에 건조증이 심한 사람은 탈수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연설이나 강의를 하기 전에 녹차를 마시면 갈증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생수는 차의 영양분이 흡수되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차를 마신 후에는 차의 두 세배의 생수를 마시는 것이 좋다. 그리고 녹차에 약성분이 있기 때문에 차를 약과 함께 마시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차는 가공하는 방법과 발효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수확하는 시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나뉜다. 그중에서 나는 녹차를 좋아한다. 수확하는 시기로 보면 우전과 세작을 좋아한다. 찻잎을 썰거나 다른 재료와 섞지 않고 원형 그대로 덖기 때문이다. 내가 잎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품고 있는 자연의 기운을 온전히 받을 수 있어서다. 많은 나라에서 차를 생산하고 가공하지만 한국의 덖음차는 참으로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에 더하여 잎차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한국의 덖음차를 만든 제다명인들과 그 전통을 만들어 물려준 다인의 조상에 대한 경외감을 포함한 것이다. 한 싹의 찻잎이 내게 오는 과정 속에 천이백 년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저절로 겸허해진다.
자연에서 온 것들이 다 그렇듯이 녹차도 기후와 풍토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올해 특별한 녹차를 만났다고 해도 다시는 같은 녹차를 마실 수 없다. 같은 사람이 덖어도 다를 수밖에 없다. 햇차를 만나 설레는 것도, 차의 향과 기운에 감탄하는 것도 다시없는 기회라는 걸 알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 줌 남은 우전을 한 꼬집씩 우려 마시는 4월, 햇차를 기다리는 마음을 무엇에 견줄까. 올해의 햇차는 어떤 맛을 품고 올지 자못 궁금하다. 화개 동천의 안개 속에서 새싹을 힘껏 밀어올리는 차신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