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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Mar 28. 2023

 봄볕 좋은 날 차 한잔 하실래요?

묵은 차 관리법



 봄바람에 꽃 소식이 들려오면 마음이 서성인다. 매화 향기가 그리워지는 까닭이다. 멀리서도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낼 만큼 독보적인 매화는 <조선요리제법>*에 이름을 올릴 만큼 오랜 세월 이용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허브식물이다. 꽃봉오리가 솟는 시기는 음력 12월이며 남쪽 지방에서는 1~2월까지 꽃을 볼 수 있다. 반쯤 핀 꽃봉오리를 따서 말려두었다가 차로 달여마신다. 나는 해마다 매화차를 사서 차회의 마지막에 낸다. 차벗들의 기억에 차자리가 향기롭게 기억되길 바란다. 


 손질한 묵은 차에 매화 몇 송이를 블랜딩 하면 그윽한 향기를 품은 기품 있는 차로 변신한다. 햇차를 기다리는 동안 해 지난 차로 봄향기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2023년은 유난히 봄날씨가 따스해서 봄꽃의 개화가 예년보다 열흘정도 빠르다고 한다. 명절 전에 이미 매화를 보고 왔으니 남쪽의 찻잎도 일찌감치 움이 돋았을 터였다. 아름다운 기억은 조화로운 요리처럼 어우러져 있다. 매화를 떠올리면 우전의 단풀향이 혀끝에서 여린 기억을 낚아 올린다. 


 곡우 전에 수확한 첫물차를 시기에 따라 분류해서 우전이라 부른다. 4월 20일은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다. 해마다 봄날씨가 달라서 꽃샘추위가 심하거나 늦추위가 길어지는 해에는 새싹이 늦고 성장도 더뎌서 우전의 수확량이 적다. 그다음에 나오는 차를 작설차라고 한다.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수확하는 세작의 다른 이름이다. 우전이 여린 단풀향과 고소함을 머금고 있다면 작설차는 녹차 특유의 떫은맛과 쓴 맛과 단맛이 감칠맛에 녹아있어 보다 풍부하게 차다운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작설은 한국에서는 참새의 혀 모양이라고 하여 찻잎이 두 잎 피어난 것을 수확하고, 중국에서 작설은 공작의 부리 안에 혀가 보이는 모양을 말한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작설차는 두 잎 사이에 막 돋아난 새싹이 보이는 세잎의 형태로 수확한다. <차생활문화대전>*


 해마다 야생차 축제를 여는 하동에서 올해는 세계차엑스포를 개최한다. 본래 2022년에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미뤄졌다. 기대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어찌 참고만 있으랴. 햇차 소식이 들려오면 열일 제치고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묵은 차를 즐기며 봄날의 에세이를 써가야 하리라. 


 3월도 하순에 드니 차담을 나누기에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이렇게 아까운 봄볕 미풍에 녹차를 목간 시키며 나만의 힐링타임을 가진다. 숙성 단계에 따라 차는 관리법이 따로 있다. 홍차는 완전 발효차라 밀폐하여 보관하면 맛있게 즐길 수 있다. 후숙이 중요한 보이차는 한지로 포장해 판매하지만, 차 전용 항아리에 보관만 잘하면 후숙이 진행된다. 하지만 습기에 노출될 경우 곰팡이가 피어 차가 변질될 수도 있고, 냄새를 흡수하는 차의 특성 때문에 환경에 따라 맛이 변질될 수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 


  수년 전에 내가 사는 지역에 위치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차와 힐링'이라는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수강하시는 분들께 차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질문했다. 대부분 좋은 홍차나 녹차, 말차를 받아놓고 수년이 지나도록 방치하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차를 마실 시간이 없고, 어떻게 마시는지 복잡하고 맛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수강신청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이 예전만 못해서 커피나 술 말고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차가 좋은 것은 알고 있지만, 바쁜 현대인이 마시기엔 뭔가 번잡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래서 나는 바쁜 삶 속에서도 간편하게 차를 즐기며 건강도 챙기고 관계도 돈독하게 할 수 없을까 고심한다. 방법은 있다. 그리고 차와 사귀게 되면 얻는 유익도 정말 많다. 거의 무한대라고 말하고 싶다.


 차를 통해 만난 분들께 가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차를 한지에 포장된 상태로 냉동실에 보관해 둔 분이 나와 차회를 나눈 뒤에 크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그는 선물 받은 비싼 보이차를 간수할 줄 몰라서 냉장고 탈취제로 써버렸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분은 선물 받은 상태로 베란다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장맛비가 창틀로 스며들자 곰팡이가 나서 버렸다고 했다. 보이차가 좋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중국에 여행을 가서 많은 양의 숙차를 구입한 어르신도 있었다. 하지만 비싼 값에 비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맛과 냄새가 좋지 않아 결국 밭에 거름으로 뿌렸다고 아까워하셨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예전보다 차를 즐기는 분들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차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방법에는 무지한 분들이 많다. 특히 바쁘게 많은 역할을 감당하는 성실한 현대인은 일상의 루틴에 여유 있게 차 마실 시간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차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함을 안다 해도 누구나 일상적으로 즐길 수 없는 이유다.


 우리 부부가 차와 사귀게 된 건 신혼 초에 집들이 선물로 받은 다구세트에서 출발한다. 초대한 손님은 남편의 지인들이었다. 집들이를 끝내고 손님들이 돌아간 뒤 선물을 풀어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백자다관은 둘이 사용하기엔 5~6인용으로 조금 큰 편이었지만 세트로 구성된 6개의 찻잔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녹차와 허브티를 가지고 있었고 당장 그날 밤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집들이를 마치고 신랑과 나누는 티타임은 피로를 보상받기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내가 좋아하니까 남편도 흐뭇해했다. 정작 선물한 지인은 다구가 아니라 술주전자라고 주장했고, 그러고 보니 물 식힘 그릇이 없어서 온전한 구성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기왕에 다구로 정한 쓰임새를 무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앙증맞은 찻잔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뭐면 어떤가? 쓰기 나름이지! 


 차생활을 시작한 운명적인 계기가 청주잔을 다구로 오해한 데서 시작되었다면, 차를 마셔야 한다는 의지는 남편의 가족력과 건강으로 인해 지속되었다. 30대 초에 남편은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고혈압과 심장질환도 세트로 따라왔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력이라고 했다. 당뇨를 관리하기 위해 차는 필수품이 되었다. 발병은 하였으나 약을 쓰지 않고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꾸준히 관리했다. 사업의 난고를 겪어내는 동안 세월과 면역이 저하되어 최소한의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나 담당의사는 병력에 비해 경미한 투약이며, 잘 관리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한국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하다가 2009년에 뇌질환을 진단받았다. 온몸이 길쭉하지만 내 신체 중 가장 긴 목에 나도 모르는 사이 추간판 탈출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다음엔 왼쪽 얼굴에 구안와사가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두통과 함께 정수리가 뚫린 것처럼 찬바람이 들어왔다. 모자를 쓰고 있어도 머리가 시렸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고통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울지 않아도 한쪽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뇌질환 전문의를 찾아가 치료를 받으면서 투약을 시작하자 진통효과와 함께 체중이 불었다. 그 상태에서 대상포진에 걸렸고, 치료 2년 후에 재발했다. 165cm 신장에 50킬로 초반이었던 나는 약반응으로 인해 60킬로 중반이 되었다. 평생 처음이었다. 3년 동안 투약한 결과 나는 무척 둔해졌다. 체중증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감각도 생각도 관계도 모든 것이 둔해졌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미각이었다. 민감했던 나의 혀가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아주 짜거나 매운맛만 느낄 수 있었다. 당뇨병을 관리해 온 남편의 식단도 위험에 처했다. 뇌질환의 원인은 천 가지가 넘고, 증상 개선과 치료방법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삼 년이 지났을 때 담당의사는 나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3개월치 약처방과 함께 연 4회 정기진료를 하자고 했다. 


 이대로 약에 의존해 둔감해지다가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건가? 

 

 그럴 순 없었다. 그때 나는 질병이 주는 쉼표에 대해 생각했다. 그 쉼표가 좌표가 되어 삶의 방향과 밀도를 재편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먼저 나는 약을 끊기로 작정했다. 만성이 된 두통과 시림증상을 안고 살아가기로 결정한 거였다. 질환이 어떻게 진행되든 그때 가서 다시 방법을 찾더라도 당장은 끊기로 했다. 하루 세 알씩 먹던 약을 열흘동안 두 알로 줄여서 복용했다. 다음 열흘 동안 한 알로 줄였다. 그리고 다음 열흘동안 반 알만 먹었다. 두통과 시림이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못 견딜 만큼은 아니었다. 한 달 후부터 나는 약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부었던 얼굴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체중은 그대로였다.  


 뇌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차에도 약성분이 있어서 투약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약을 끊은 후에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작정했다. 나만의 일상힐링 레시피를 개발해 적용하기로 한 거였다. 물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실천항목들을 새롭게 추가하고 잘못된 방법은 제거했다. 


 약을 끊고 내가 세운 규칙을 십 년 동안 실천한 결과 나는 뇌치료를 하기 전의 체중을 회복했다. 그리고 둔해졌던 감각들을 온전히 되찾았고,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아침에 레몬수로 아침을 시작해 생식을 하고 점심은 한식을 먹고 저녁은 일찌감치 서운할 정도로 대충 먹고 길게 공복을 유지한다. 아침저녁 중 하루 한 번은 러닝머신과 맨손 스트레칭을 하고, 틈날 때마다 남편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한다. (남편의 담당의가 항상 당부하는 것이 걷기다. 그 어떤 보약보다 걷는 것이 좋단다.) 깨어있는 시간에 차와 커피를 마시고 저녁 시간엔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 디카페인 허브음료들을 마신다. 


 내가 지금까지 꾸준하게 지키고 있는 것들을 공유한다. 너무 간단하고 누구나 알 만한 것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님께도 권하고 싶다. 

- 해독을 위해 차와 레몬수를 이용한다.

- 하루 한 끼는 과일과 채소를 이용한 생식을 한다.

- 소식하고 공복을 길게 유지한다.

- 걷기와 계절에 맞는 운동을 즐긴다.

- 영양제 및 건강식품을 포함해 가공 및 제조된 것은 될수록 복용하지 않는다.


  잡설이 길었다. 오늘은 차벗이 그리운 날이다. 맑고 따스하고 창밖엔 살구꽃이 화사하다. 봄길을 산책하는 상춘객을 향해 마음이 말을 건다. 이렇게 봄볕 좋은 날 차 한잔 하실래요? 응담이 없어도, 함께 오늘의 주제를 나눌 독자님이 계셔서 다행이다. 


 녹차의 경우 상미기간을 2년 정도로 본다. 나는 될수록 햇차가 나오기 전에 소비한다. 봄은 왔으나 아직 수확할 시기까지는 한두 달 남은 이때 즈음, 먹다 남은 녹차를 꺼내 햇살과 바람을 쐬어준다. 다연기* 소품인 덖음 도기를 레인지에 올려놓고 낮은 온도에서 예열한다. 손으로 만질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레인지의 불을 끄고 도기를 레인지에서 들고 예열된 온도를 이용해서 차를 넣고 저어준다. 골고루 볶아지도록 살살 흔들다가 다시 젓기를 반복한다. 조금만 방치해도 타버리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향기가 코끝으로 들어오면서 열감이 느껴지면 넓은 접시에 옮겨 빠르게 식힌다. 식은 차를 약불에 예열한 도기에 한 번 더 볶아 바삭한 느낌을 얻는다. *(아래쪽에 사진을 첨부하였다.)


 녹빛이 암갈색으로 변한 묵은 차를 적절한 숙수에 우린다. 녹차의 향과 맛은 살리되 항산화성분은 높이고 쓴 맛과 차가운 성분은 순화시키는 방법이다. 구수한 맛으로 변신한 녹차는 더 이상 성분이 차지 않아 속이 냉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녹차의 찬 성분이 체질에 맞지 않는 분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는 발효차를 찾아 마시는 것이 좋다. 




*묵은 녹차를 볶으면 발효차처럼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오래 묵은 차의 맛도 살릴 수 있다. 



참고: *<조선요리제법, 방신영, 1942>, *<차생활문화대전, 홍익재, 2012>

*다연기 : 옛 선조들이 말차를 만들기 위해 개발한 차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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