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이 허리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여주군 점동면의 강가 마을에 나의 부모님이 사신다. 엄마는 울안에 쌈채소들을 가득 심어놓고 계절마다 향기로운 식탁을 차려내셨다. 아빠가 손수 엮은 싸리바구니를 들고 텃밭을 한 바퀴 돌면 바구니가 쌈 거리로 넘쳤다. 바지런한 엄마의 손길이 지나가면 상추며 당귀 쑥갓은 묵은 잎과 잡초가 제거되어 화초처럼 가지런하게 정돈되었다. 발밑에 아무렇게나 얽힌 비름, 질경이, 달래는 물론이고 아욱꽃 시금치꽃 무꽃 등등 무엇이든 엄마의 손끝에선 맛난 먹거리로 변신했다. 엄마표 수제막장 한 숟갈에 풋고추와 마늘잎 쪽파를 다져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친 양념장 하나만 있어도 여름밥상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엄마는 적상추에 쑥갓 실파 당귀 잎을 척척 얹고 밥 한술에 양념장을 듬뿍 올린 큼직한 쌈을 건네주시면서 꼭 한마디 하셨다.
"상추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이 우리 몸을 얼마나 건강하게 하는지 아니? 염증도 치료하고 쑥 내려가게 만들어서 얼굴도 예뻐지고 잠도 잘 자게 해 준대."
그러면 아빠가 거들어주셨다.
"파가 말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식품이란다. 파를 먹어야 사람이 위아래를 알아보고 생각도 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거야. 파를 양념으로 쓰는 이유도 항상 먹기 위해서지. 파는 맵지만 익으면 달기 때문에 설탕이 안 들어가도 음식에 감칠맛을 준단다. 몸이 건강하려면 섭식이 중요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올바로 먹어야 한다."
식물엔 저마다 약성이 있어서 잘 이용하면 보약이고 잘 못 쓰면 독이 된다는 말씀이었다. 우리 자매들은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찌감치 자연이 주는 것들에 경외감을 느끼며 식탁에 감사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즐거웠고, 풀 잔치의 녹색 식탁을 오늘까지도 건강보감으로 삼고 있다. 아빠가 산에 가서 칡을 캐오는 날이면 온 집안에 향기가 진동했다. 종아리만큼 굵은 칡은 구불구불 길어서 톱으로 썰어야 했다. 그러면 그것을 최소한의 두께로 찢고 갈라 말리는 일에 온 가족이 협동했다. 며칠 동안 칡을 찢어 즙을 빨아먹다 보면 손톱이 갈변하여 자매들끼리 서로 비교하며 웃기도 했다. 햇볕에 바싹 말린 칡뿌리를 커다란 주전자에 끓여놓으면 계절 내내 오며 가며 향기로운 차를 마셨다.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오묘한 갈근차는 보약을 먹는 느낌이었다.
겨울의 귤차만큼이나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엄마의 대용차들을 나는 아직도 즐겨 마신다. 겨울엔 옥수수를 볶아서 끓이고, 여름엔 보릿물을 끓였지만 그보다 더 열심히 끓여주신 것은 결명자다. 독특한 향기가 있는 결명자차를 엄마는 눈과 신장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보약이라며 하루에 한두 잔 꼭 마시라고 당부하셨다. 그 덕분인지 우리 자매들은 2.0의 시력을 자랑하며 성장했다. 간혹 안경 쓴 친구들이 부러워서 눈이 나빠졌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원시나 근시가 되는 건 눈 밝은 우리 자매들과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햇살샤워 하면서 마시는 봄날의 힐링 녹차
엄마는 달여서 마시는 것들은 다 차라고 불렀다. 귤차 보리차 옥수수차 결명자차 외에도 천궁차 헛개차 우엉차 연근차는 물론이고 수정과는 계피차, 감주라고 하는 식혜는 단차라고 불렀다. 한국인이 차라고 부르는 것 에는 달여서 만드는 음료 외에도 발효해서 희석하는 오미자나 솔잎음료까지 포함된다. 가공하여 마실 수 있도록 한 모든 음료를 차로 일반화하는 것은 이질적인 문화도 빠르게 수용하는 한국인의 인식과 언어습관에서 기인하는 건지도 모른다. 녹차를 주원료로 사용한 것이 차이고, 그 외에는 대용음료라고 말해야 맞지만, 동시대인이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질환을 다스리기 위해 민간요법으로 전해 내려오는 차들 중엔 특별한 효능을 가진,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소중한 전통음료들이 참으로 많다. 쌍화차나 대추차를 다른 어떤 이름으로 지칭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필자 역시 이 글에서 대용음료들을 허브차 혹은 약차 전통차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차를 챙겨 들고 간다. 향채소를 즐기는 엄마는 향기 좋은 차를 드리면 좋아하신다. 얼마 전 친정에 갔을 땐 엄마와 함께 페퍼민트 차를 우려 마셨다. 엄마는 페퍼민트를 꼭 박하차라며 좋아하신다. 엄마의 울안엔 박하도 있다. 그 시절에 엄마가 페퍼민트차를 아셨다면 박하차를 만들어 드셨을 텐데, 깻잎을 온수에 우려도 너무 훌륭한 대용차가 되었을 텐데, 참 아쉬운 시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엄마께 향기로운 차를 챙겨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 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내 고향 여주에는 차나무가 없다. 북방한계선이 뚜렷한 차나무가 생존할 수 없는 추운 지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차 재배가 가능한 지역은 변산반도에서 울산을 잇는 선 이남이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13~15°C, 생육최고 기온은 35°C, 생육최저 기온은 -5°C이다. 보성, 정읍, 구례, 하동, 서귀포 등 잘 알려진 차의 산지는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차 재배 지역이 내 몸의 기온에 적절하다고 느낀다.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차가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닌다. 아름다운 차 재배지를 다닐 때마다 신비로움을 느낀다. 또한 이렇게 훌륭한 차 문화 전통을 1200년 동안 계승하며 발전시켜 왔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다연기와 차생활문화대전
지난 글에서도 녹차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다루었지만, 이번 글에선 녹차의 주된 성분을 좀 더 짚어보려고 한다. 녹차의 학명은 Camellia sinensis O.Kuntge이며, *<차생활문화대전>을 참고하면 우리 몸에 이롭게 작용하는 녹차의 생리활성 성분이 소화를 촉진하며 담을 제거하고 피로를 회복시켜 정신을 안정시키며 이뇨작용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녹차에는 다량의 비타민과 미네랄뿐 아니라 카테킨과 타닌, 플라보놀, 카페인, 테아닌. 사포닌, 베타카로틴, 퀘르세틴, 루틴, 켐퍼롤, 미리세틴, 클로로필, 안토시아닌, 아연, 불소, 셀렌, 아미노산, 유리당류, 식이섬유, 비타민( A, B2, C, E ) GABA, 감마-아미노부티르산 등등 풍부한 영양소가 들어있다. 녹차의 생리활성 성분은 우리 몸에 좋은 영향을 일으키는데, 카페인이 심장에 흥분 감심 작용을 한다면 타닌은 살균 및 방부작용을 한다. 타닌은 항염성, 항균성 효과가 커서 장내 세균을 억제하며 식품이나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유기 수은, 납, 구리 등의 중금속을 침전시켜 배설하게 한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수돗물에 녹차를 넣어 마시면 적합한 식수로 해독이 되는 것도 타닌의 작용 때문이다.
인체의 노화는 산화되기 쉬운 불포화지방산을 섭취했을 때 생기는 과산화지질에 의해 세포막이 파괴됨으로써 일어나는데, 타닌 성분인 카테킨은 과산화지질을 억제하므로 노화가 방지되고 차의 비타민 성분이 산화력의 억제를 높여주어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그 외에도 차의 모세혈관 강화작용 및 혈소판 응집 억제작용, 항산화 작용에 대한 연구 보고들이 있다. 고전문헌에서도 녹차의 수많은 효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정신기능을 촉진시키고 사고력을 높이며 피로를 없앨 뿐 아니라 담을 녹이며 소화를 촉진하고 이뇨와 해독 작용을 한다. *<향약대사전>
- 풍열을 다스리고 차 씨는 기침을 다스리며 담을 없앤다. *<본초강목>
- 기를 내리고 숙식을 소화시키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잠을 적어지게 한다. 소갈을 그치며 독을 풀고 심통을 치료한다. 또한 피부 속의 기름기를 없애므로 비만한 사람에게 좋다. *<동의보감>
- 이뇨, 강심, 흥분 자가용이 있으며, 피로를 없애고 몸과 마음의 원기를 회복시킨다. *<한방식료해전>
- 강심, 이뇨, 흥분, 수렴의 효과가 있다. *<한국약용식물도감>
- 열을 내리고 번갈을 멈추며 위로는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아래로는 음식물을 잘 소화시킨다. *<방약합편>
고전문헌에서는 차 자체에는 알려진 독성과 부작용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체질과 질환에 따라 주의해서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전편에서 다룬 “약 되는 녹차 vs 독 되는 녹차”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녹차에는 불용성 성분이 70~80%, 수용성 성분이 20~30% 함유되어 있다. 대부분의 영양소가 수용성 성분으로 우러나 섭취가 가능하지만, 불용성 성분인 식이섬유와 무기질 성분까지 섭취하기 위해서는 차를 우려서 마실 뿐만 아니라 차의 잎까지 활용하는 것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기질에는 칼슘, 인, 철, 구리, 요오드, 나트륨, 코발트 등 뼈, 치아, 헤모글로빈, 비타민 구성성분이 포함되므로 이 성분들을 버리기 아까운 것이다. 차를 제대로 섭취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차를 다루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송대에 차를 들여온 이후 제다법과 발효법도 발전해 왔지만 차를 다관에 우려먹게 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왔다. 우리가 즐겨 먹는 말차는 차의 수용성 성분과 불용성 성분까지 섭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우전과 세작을 우려마신 후에 잎까지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찻잎을 씹으면 충치를 억제하고 구취를 없앨 수 있다.
세작을 우린 후의 엽저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차를 마시다 보면 엽저(우린 후의 찻잎)가 나온다. 대게 차벗들이 방문하거나 차손님을 대접하고 나면 많은 엽저가 나온다. 이 엽저는 쓰임새가 많다. 찻잎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나물과 같아서 어디에든 잘 어울린다. 나는 우전이나 세작은 잎까지 먹기 때문에 남는 것이 없다. 간혹 쌀국수를 먹거나 트랜스지방이 걱정되는 가공식품으로 음식을 만들 때도 녹차나 엽저를 넣는다. 기름을 사용하여 육류를 요리할 때나 생선을 구울 때 녹차를 이용하면 냄새뿐 아니라 기름의 트랜스지방을 제거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컵라면을 먹게 되는 경우 티백을 넣고 흔들어서 건져내면 라면의 기름기를 제거하여 깔끔한 맛으로 바꿀 수 있다. 중국식 짬뽕이나 육개장 등 기름기가 많은 것을 먹을 때도 녹차잎이나 티백을 이용하면 보다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
엽저는 미용관리에 사용해도 좋다. 우려마시고 남은 찻잎을 잘게 다져서 요구르트에 버무려 세안 후에 얼굴에 펴 바르면 모공을 축소시키고 얼굴의 탄력이 쫀쫀하게 회복되는 것이 느껴진다. 차를 충분히 우려서 먹었다고 판단했을 때 뜨거운 물을 찻잎이 잠길 만큼 부어놓으면 찻잎에서 남은 성분이 우러나는데, 이 마지막 찻물을 샤워 후에 얼굴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오금쟁이 발까지 순서대로 충분히 발라주고 가볍게 두드려서 풍욕으로 수분을 말리면 체취를 향기롭게 할 뿐만 아니라 가려움을 해소시키고 피부를 소독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린 차가 남아있으면 밀폐용기에 거즈와 함께 냉장 보관했다가 세안 후 얼굴에 얹으면, 붓기를 제거하고 피부를 진정시키며 탄력 회복과 미백 효과를 볼 수 있다. 한 잔의 차를 얻고 버리기엔 녹차는 너무도 아까운 성분이 많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재활용한다. 신박한 녹차 활용법은 차에세이 연재를 진행하면서 앞으로 간간이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