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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Jul 11. 2023

인생이 곧 여행이다  - 다도구 이야기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무료하거나 우울할 새가 없다. 스물 무렵부터 차향을 찾아다녔다. 분주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차는 변함없는 친구처럼 내 곁을 지켜주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차가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게 나다운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연히 차와 연관된 것들을 접하기를 즐겼다. 생활 속에 스민 차 생활의 흔적들이 서른 해 동안 모이니 꽤 많아졌다. 일부러 수집한 건 아니지만, 다양한 이유와 경로를 통해 연을 맺고 사용해온 다도구들이다.     

 

 차와 함께 운명처럼 지속하는 일이 읽고 쓰는 일이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무조건 그 집에 있는 책들을 읽었다. 오빠나 언니가 있거나, 막내인 친구의 집엔 신기할 정도로 읽을 책들이 많았다. 그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다른 친구의 집을 탐색하러 갔다. 그 시절엔 마을문고, 학급문고 등으로 학생들이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독려하던 시기였다. 책 읽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며 친구의 부모님이 칭찬해 주셔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느라 집에 없을 때도친구집에  읽을 책이 있는 한 당당하게 혼자 찾아갈 수 있었고, 책읽기에 빠지면 불러도 몰랐다. 친구네 가족이 올 때까지 친구의 집이라는 것도 잊고 몰입했다. 동화책과 과학, 백과사전들이 재미 있었다. 친구의 할머니에게 예기치 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옛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남아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청소년 소설을 썼는데, 학급친구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읽었다. 학교도서관이 아지트였고, 고등학교 시절엔 국어선생님과 학교신문을 창간해  운영하면서 글쓰기 대회도 열심히 나갔다. 시, 소설, 에세이 평론 등 문학이 좋았고, 습작을 하는 것이 내 인생을 사는 일이라 굳게 믿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기록은 습관이어서 필기구가 없으면 읽을 책이 없는 것만큼이나 불안해 견디지 못했다. 아날로그 감성의 노트와 펜이 스마트폰에 탑재되었을 때 e북과 리더기를 봤을 때만큼 놀랐다. 지금 나는 휴대폰의 디지털 노트와 펜도 사용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읽고 종이노트 쓰기도 좋아한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창작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스물넷에 첫 시집을 냈다. 육아와 논술강사를 하면서도 차를 마시며 읽고 쓰는 일은 가장 나다운 일이었기에 놓지 않았다. 다만 집중할 시간은 녹록치 않았다.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중앙대 창작전문가과정에서 창작 강의를 들으며 같은 갈증을 가진 문우들과 각자 쓴 글을 합평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은 경기에 따라 외풍이 심해서 숨막히는 고통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어떤 체험이라도 작품의 재료가 될것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지금, 여기에서 부딪치는 생체험"들을 기록했다. 종가집 맏며느리 역할을 하면서 식구가 많아서 내 공간이 없었던 그 시절에 화가인 친구의 화실에서 틈틈이 쓴 소설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한국학을 공부했다.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출간하였고 두 권의 책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기록하면서 돌아보니 하이힐을 신고 산행을 하는 것처럼 준비없이 도전했던 인생길에 감사한 분들과 좋은 일들도 많았다.        



  여행이 주는 덤     


 시인 천상병은 유명한 시 ‘귀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이라는 유명한 구절로 그가 살아온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작가는 이처럼 해석하고 정의하는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인의 정의에 동의하게 된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 많은 종류의 여행이 있고 각자의 여행이 다르지만 여행이라는 모델케이스는 생을 관통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는 여행도 일상의 모방이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곳에서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체험한다는 것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떠나는 짧은 여행의 의미인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일상의 여행을 즐긴다. 짐을 싸들고 먼 곳에 가서 머물다 오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르지만, 집 안에서 발코니로 몇 발자국 옮겨도 여행, 집 밖을 나가서 산책로를 돌고 오는 것도 여행, 일하러 가거나 모임이 있어 잠시 차로 이동하는 것도 여행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 곧 여행이다. 모든 여행은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여행이 주는 덤을 좋아한다. 발을 옮기면 바로 그곳에 펼쳐진 자연과 사람들, 하늘 아래 물속의 돌멩이와 풀과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이 내가 일상 여행에서 얻는 덤이다. 자연을 느끼는 순간 내 몸과 마음도 힐링을 얻는다.


 자연에서 온 것들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을 준다. 오랜 차 벗이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소설가의 다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다실에 들어서면 먼저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편안하게 맞아준다. 업으로 목재 가구를 다루는 남편 덕분에 서재며 집안의 가구 중엔 수제품이 제법 많다. 지금 거주하는 집에 입주할 때도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나고 추진력이 있는 남편의 주도로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공동의 힐링 공간인 다실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 남편도 내 감각과 소망을 존중했다.     

 

 나는 기대와 설렘으로 편안한 차방의 모습을 구상했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필요는 충족하도록 하고 싶었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다도구를 정리할 선반과 진열장의 모양을 남편에게 설명했다. 내 말을 들으면서 남편이 도면을 쓱쓱 그려서 공간에 맞게 길이와 폭을 정했다. 진열장의 높이가 이정도면 되겠지? 선반과 서랍의 모양은 이렇게 할까? 남편이 몇 가지 확인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뭐가 나올까 자못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수제 목공예방을 찾아가 도면을 맡겼던 모양이었다. 완전 비규격품인 가구가 다실에 들어왔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생각하고 말한대로 만들어진 차방의 가구들은 그렇게 연을 맺게 되었다.      



 늘 만나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교우가 있다. 오랜 차 벗인 교우의 짝꿍은 취미로 즐기던 목공예를 특기로 발전시켜 기발한 소품들을 선보이곤 했다. 무언가를 취미로 하다보면 부캐가 될 수도 있겠다는 믿음을 준 지인이다. 어찌나 솜씨가 좋은지, 좋은 재료를 얻는 수완은 어찌나 기민한지, 샘솟는 아이디어는 또 어찌나 창의적인지, 상상도 못하는 곳에서 재료를 얻고 솜씨 좋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재주꾼이다. 그 분이 만들어준 향나무 잔 받침과 작은 찻상들이 다실의 규모를 알차게 만들어주었다. 차를 대접할 때마다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불편을 눈썰미 있게 관찰했다가 만들어주는 거였다. 왜 만들었는지 어떤 도구와 기술로 솜씨를 냈는지  자랑하는 법이 없었다.   

                         



“이런 거 혹시 필요하면 쓰세요.”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슬쩍 권하는 것이 전부다. 쓸모를 물으면 그제야 ‘그 자리에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라고 덧붙인다. 덕분에 차 자리에 앉으면 손이 닿는 반경 안에 필요한 것이 다 갖춰지게 되었다. 손에 익을수록 편리한 도구들을 보면 마음이 훈훈하다. 혼자서 보아도, 함께 보아도 다도구 수제품들은 아름답다. 다실에 앉을 때마다 잔 받침을 코에 대고 향기를 마신다. 향나무의 고급진 은은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향나무 받침대는 침실에도 가져다 놓고 잠들기 전에 향기를 맡는다. 언제든 즉시 기분을 환기시켜주기 때문에 신경안정제가 필요치 않다.    


목공예를 취미로 하는 교우분이 만들어준 다반과 잔받침들


 나는 그저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정성이 듬뿍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도구들을 공급받고 있다. 그저 차를 나누었을 뿐인데, 내가 받은 것이 너무 귀하고 크기 때문에 그 때마다 약속을 한다. 나중에 목공예사로 활동하게 되면 전시회 기념품으로 돌려드린다고. 그러면 그분은 그저 웃으면서 재밌게 만든 것을 사용해주니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아무도 못 말리는 선한 웃음은 그대로 자연인의 웃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분의 작품들이 뿜어내는 향나무의 피톤치드는 순식간에 나를 울창한 숲으로 데려다 놓는다.      


 다실에 앉을 때마다 더 정겹고 편안한 이유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다구들에 좋은 이들의 성품과 관계의 온도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에 들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한 다구들도 쓸수록 정이 드는데, 인격과 품성을 익히 아는 지인이 나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깎고 갈아 만들어준 목공예 도구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넉넉히 만들어주시면서 누군가 필요한 분이 있으면 나눠 쓰라고 하신다. 자연목을 이용한 힐링을 공유할 기회까지 덤으로 챙긴 나는 다실을 찾는 차 벗들에게 나눔을 한다. 그 분을 보면서 느꼈다. 나무를 좋아하면 나무를 닮아간다는 것을.      

                  

목공예를 취미로 하는 교우분이 만들어준 다구들, 다반들과 차시꽂이


 건축과 인테리어를 전공한 남편은 나무에 관심이 많아서 나무박물관이나 목공예품 전시장을 찾아가 관람하기를 즐긴다. 가구를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유통하면서 수 십 년을 보낸 그의 눈에 목재로 만든 것들은 다 관심영역인 모양이었다. 언젠가 정말 마음에 드는 차탁을 만나면 그때 마련하자는 빈말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읊조렸다. 하지만 남편에겐 나무로 만든 제품을 고를 때 기준이 까다로웠다.      


 통나무 공예품들을 보러 다니면서 아름다운 목재의 무늬와 신비로운 빛깔의 속살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장미목은 무쇠처럼 무거웠는데, 반대편에서 불을 비추면 제 몸으로 투과시킨 빛깔이 붉은 장미의 꽃잎처럼 화사했다. 흑단이나 자단목은 겉은 자연스러운 나무 빛깔인데, 안쪽이 검고 광택이 있었다. 그것 역시 단단하고 무거웠다. 자작나무와 박달나무는 단단하고 치밀한 조직을 가졌기 때문에 다루기 어렵다고 한다. 그 만큼 내구성은 튼튼하단다. 신기한 나무들과 특성을 듣다보면 그 땅이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 원목들은 어떤 디자인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고 길었다.    

  

 하지만 목공예품을 보면 볼수록 또렷한 기준이 생겼다. 수입한 나무를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 우리 부부가 원하는 거였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찾았다. 남편의 지인이 양보해준 차탁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었는데, 번개 맞은 물푸레나무를 통으로 잘라낸 그것은 이미 오래오래 묵은 나무였다. 나무의 가운데가 먹색으로 무늬진 차탁은 조금 높지만 아름다웠다. 하지만 차자리가 길어지고 사용한 다구들이 늘어나면 좁아서 불편했다.      


지인에게서 얻어서 사용하다 다른 지인에게 넘겨준 물푸레나무 차탁


 지금 나의 다실에는 남편이 모셔온 산벗나무 차탁이 놓여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차를 나눌 수 있는 길이여서 편리하다. 수년을 두고 찾아다닌 끝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차탁은 끌림이 있었지만 완성품이 아니었다. 하동의 차밭을 찾아갈 때 우리 부부가 묵으면서 차와 아침밥을 얻어먹는 친정 같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차실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방치되어 있던 그것을 남편이 먼지를 닦아내곤 나무의 마른 상태와 무늬를 확인했다. 통나무를 켜서 딱 반쪽이 남아있는 그것은 산벗나무라고 했다. 이미 충분히 말라 더 이상의 뒤틀림은 없을 거라고 남편이 장담했다. 차탁으로 쓰려면 한 쪽을 깎아내고 고임목 없이 제 다리로 사용하면 적절한 높이가 될 것 같다며 내 의향을 물었다.      


 나무는 볼 줄 모르지만 길이와 폭이 적절하고 평면의 결이 아름다워서 나도 좋겠다고 의견을 붙였다. 드디어 우리 부부의 마음에 드는 차탁을 찾은 거였다. 일삼아 다닌 것은 아니지만 실용성과 서로의 취향을 소통한 덕분에 동시에 인연이 될 재목을 알아본 거였다. 다원의 주인장은 오래 전에 지인에게 떠맡아서 10여 년 전에 반쪽은 팔고 남아있었던 거라며 나무 값이나 쳐주고 실어가라고 했다. 물건 주인은 따로 있다면서.     


남편이 발견한 오래 묵은 산벗나무 차탁


 마침 승합차로 내려간 길이라 실어와서 목재소에 맡겼다. 찾아다 들여 놓으니 다실에 맞춤이었다. 목재를 잘 아는 남편이 식물성 오일로 길들여준 덕분에 십년이 넘게 잘 사용하고 있다. 다실을 다녀가신 분들이 손으로 매만지고 애정을 주어서 더 깊은 빛깔로 익어가고 있다. 다실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모아주고 편안하게 힐링시키는 고마운 차탁이다. 내가 쓰던 물푸레나무 차탁은 정든 차 벗인 또 다른 지인이 모셔갔다.       


   

 문회장님의 차탁과 다구들    


 남편에겐 아버지같은 어르신이 한 분 계시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챙기고 아껴주시는 문회장님은 가구협회 회장을 지내신 분이다. 우리 부부가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맛있는 것을 대접해주셔서 늘 푸근한 정을 느끼고 돌아온다. 아이들이 자랄 때도 우리 가족이 드물잖게 놀러가곤 했다. 회장님은 은퇴 후에 홍천에 아름다운 2층 저택을 짓고 울창한 정원과 텃밭을 가꾸셨는데, 갈 때마다 농작물을 나눠주셔서 귀한 땅내를 맛보곤 했다.      


 저택의 2층에 한 눈에 반할만큼 아늑한 차방을 마련해 두셨다. 정원과 멀리 보이는 앞산을 전망하며 차를 대접해주셨는데, 회장님은 오직 하동의 녹차만 드셨다. 차 냉장고를 차탁 옆에 놓고 햇차를 구입해 상미조건으로 보관하셨고, 차를 우릴 때는 온도계를 놓고 늘 같은 온도로 차를 우려서 정갈하고 일정한 맛을 유지하셨다. 성품도 그와 같아서 남편에게 사업과 인간관계를 이루어 가는데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수년 전에 질환을 얻으시는 바람에 차 자리에 앉기가 불편하다고 하셨다. 찾아뵐 때마다 차방에 새로 들여놓은 입식 차탁에서 차를 우려 주셨다. 최근에 20년간 관리하던 저택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하신다는 소식을 알려오셨다. 인사차 찾아뵈었을 때 다짜고짜 우리를 데리고 가신 곳은 메밀집이었다. 메밀막국수를 좋아해서 여름이면 월례행사처럼 천서리를 찾는 우리 부부의 식성과 취향을 존중해주신 거였다. 희끄므레한 빛깔에 찰기가 없고 향기는 짙은 메밀국수를 맛보니 담박에 좋아졌다. 덕분에 알게 되었다. 메밀의 함량에 따라 이름도 제면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회장님 역시 메밀막국수 마니아라는 걸 그 날 알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차실에서 녹차를 대접해 주시면서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차실에 있는 것들 중에 필요한 것 있으면 모두 가져가라고. 둘러보니 평생 모으고 사용하신 귀중한 것들이 한 두 점이 아니었다. 슬하에 3남매를 두셨지만 차와 도자기에 관심 있는 자녀는 없어서 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덕분에 귀한 다도구를 물려받았다. 아끼고 길들인 다구라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동의 야생녹차만 드셨던 회장님은 다관 또한 옹기만 사용하셨기 때문에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백자나 청자 분청사기 다관과 닮은 것이 없었다. 회장님댁에서 가져온 다도구들은 대부분 남편 사무실로 옮겨졌다. 남편 또한 많은 차벗들과 사무실을 찾는 거래처 손님들께 차를 대접하고 있기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문회장님이 길들여 물려주신 차탁과 오른쪽의 옹기 다구들


   

 나와 인연이 된 차탁과 다구들을 바라보며 배운다. 나의 다실에 있는 다도구도 언젠가 또 누군가에게 흘러간다는 것을. 내 인생의 여행길에 잠시 연을 맺고 사용하는 물건들 또한 여행 중이라는 것을.      


 글을 쓰는동안 장대비가 쏟아져서 사진이 어둡다. 이렇게 빗소리를 들으며 소설가의 다실에 앉아있으면 향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한층 더 깊다. 울창한 숲그늘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여름 장마 빗소리로 젖는 마음을 오늘은 묵직한 보이차로 풀어볼까나. 





여행중인 나와 연을 맺고 '소설가의 다실'에 잠시 머물고 있는 다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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