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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주는 사람

9살 아이의 말에서 배운, 기다림과 용기

by 송이

아이부터 어른까지, 말은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른들은 구조와 기술을 배우고자 하고, 아이들은 마음과 용기를 연습한다. 그 두 흐름을 하루 안에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이 일을 하며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언제나 나에게 힐링이 된다. 스피치를 단순한 기술 교육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과는 1년, 2년… 때로는 그보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말의 성장을 지켜본다.


어느새 아이의 말투가 익숙해지고, 웃는 버릇이 귀여워지며, 내 조카 같고, 동생 같고, 때론 자식 같은 애착이 생긴다. 그 모든 시간을 가능하게 해준 건, 아이의 부모가 나를 믿고 기다려준 시간 덕분이다. 그래서일까. 이 관계는 내게 ‘선물’ 같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 특강으로 ‘라디오 DJ 체험 수업’을 준비했다. 3주 동안 아이들은 익명 고민함에 자신만의 고민을 써 넣었고, 특강 당일에는 DJ가 되어 누군가의 사연을 읽고, 공감하고, 조언과 음악을 건네는 역할극 수업이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하나둘 돌아간 뒤였다 . 강의실에 부모님이 데리러 오기 전까지, 남아 있던 한 9살 아이가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의 이름을 여기선 선하라고 부르겠다.)


“선생님 이거 진짜 엄마가 안보는거 맞죠? 있잖아요. 이건 아무도 몰라요. 엄마도, 동생도 몰라요. 아빠만 알아요. 근데 선생님이 익명이라고 하니까…“

“응 누가 어떤 고민을 썼는지 이건 선생님들도 몰라. ”
“진짜 고민이에요. 아마 어른이 돼도 해결 안 될 수도 있어요. 몰라요, 아무도 해결 못 해줘요. 이건 저만 할 수 있어요. 근데 못 할 것 같아요.”



아이를 보내고 난 후, 나는 고민함을 정리하다가 익숙한 글씨체가 적힌 종이를 찾았다. 선하의 글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좋은 직업’,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들. 그 어린 고민 앞에서, 나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가 인생의 방향과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빠가 의사라고 했던 아이. 그 작은 머릿속엔 어떤 크기의 물음표들이 자라고 있었던 걸까.


선하는 늘 ‘처음’ 앞에서 망설이던 아이였다.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아 몰라요. 하기 싫어요.”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도 어려워하는, 작은 완벽주의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론,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만나 힘들때면 수업 중간에 소리없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하 곁에 앉아,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잘한 거야.” ”말에는 정답이 없어.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너가 여기 앉아서 고민하던 과정이 더 중요해. 그러니까 선생님이랑 약속하자 포기하지 않기로.“ 하고 속삭였다.


그런 선하가, 그날 처음으로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였다. 말을 ‘잘하는 아이’가 되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스피치를 기술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수많은 수강생들, 특히 아이들과의 수업은 언제나 내게 확신을 준다. 말은 기술이기 전에 마음이다.


아이들이 마음을 말로 꺼내는 순간은 마치 ‘내면의 성장’을 목격하는 시간 같다. 선생님으로서, 아니 코치로서(선생이란 표현은 여전히 부끄럽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마음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일이다.


선하는 아직 모를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사람’, ‘좋은 직업’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는 것을. 그날, “선생님은 이거 고민 아닐걸요?”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아이 앞에서, 되려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어른이 된 나 역시,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라며 말을 배우고, 나는 그 말을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그 기다림은 단지 ‘기다려주는 척’이 아니라, 아이가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까지 곁에서 기다릴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일이다.


어느 책에서 본 문장이 떠오른다. ‘아이를 기다리지 못하는 어른은, 어릴 적 나를 기다려준 어른이 없었던 사람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기다림의 시간을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과정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아닐까.조급함이 아니라 여유로, 완성이 아니라 변화로, 결과가 아니라 관계로 시간을 느끼는 일 말이다.


한 아이의 용기 있는 고백 앞에서, 어른인 나는 오히려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줍지만 단단했던 그 말의 순간을 지나, 이제 열 살이 된 선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기다리는 힘이 생긴 것이다. 더 이상 울며 “못 하겠어요”라고 돌아서지 않는다. 그 순간 순간을 지나온 아이는, 어느새 말보다 마음을 먼저 꺼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말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다짐한다. 이 아이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온전히 펼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 어른이 되겠다고.




말을 잘하는 것보다, 마음을 말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된 지금,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말은 어떤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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