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도를 다시 펼칠 시간
말을 잘하는 것과, 누군가와 대화를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어떤 사람과는 아무리 기술을 총동원해도 소통이 쉽지 않다. 논리도, 구조도, 목소리도 모두 갖춘 것 같지만, 대화는 어딘가 불편하게 엇갈린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본능처럼 상대방의 문제를 먼저 의심한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고집이 셀까?"
"왜 내 말을 이해하려 들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대화를 바라보며, 우리는 끝내 하나의 질문에 다다른다.
'혹시, 지금 소통이 되지 않는 건 나 때문인가?'
소통이 불통으로 이어지고,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 그 시작은,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신념과 가치관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신념은, '나는 이렇게 믿는다'는 마음 깊은 확신이고 가치관은, '무엇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가'를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이다. 신념과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은 자기 길을 단단하게 개척해 나간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A는 B여야만 한다."는 믿음을 하나씩 쌓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믿음은 '나만의 지도'가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때, 그 지도는 나를 이끌어주는 내부의 나침반이 된다.
하지만 지도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지 하나의 길만을 고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나의 길만이 옳다고 믿기 시작할 때, 신념과 가치관은 어느새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굳어버린다.
나는, 꽤나 편견이 깊은 사람이었다. 차곡차곡 쌓인 사람에 대한 상처는 그만큼의 크기로 편견이 되어 있었다. 신념과 가치관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것은 누군가와의 소통을 막는 커다란 벽이 되어버렸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너 전남자친구랑 싸울 때는 어떻게 말을 했어?
한때 나는, 소통을 불통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에 빠져 있던 나는, 결국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기까지 했다. (그 말은 오랜 시간 동안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찾게 해준 고마운 계기가 되었다.)
편견으로 인한 숱한 불통의 경험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깊이 깨달았다. 신념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신념이 아예 없는 사람은, 삶의 방향을 쉽게 잃는다. 반대로,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자기확증의 늪에 빠진다. 자신만 옳고, 세상은 모두 틀렸다고 믿는다. 나의 신념과 가치관만을 끝까지 고집할 때, 이미 변해버린 길 위에서 내 '지도'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길은 변하는데, 지도만 멈춰 있다면 우리는 결국, 길을 잃는다.
때로는 지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길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더 먼 곳까지 나를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지 부조화 이론'을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충돌할 때,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을 견디지 못한 사람은 신념을 수정하거나, 상황을 재해석한다. 즉, 신념은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조율하고 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길이 변할 때, 지도를 고쳐야 하듯이.
진짜 소통은, 상대를 향한 무조건적인 '맞춤'이나 '희생'이 아니다. 자기 신념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지도 않는다.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내 지도의 일부를 기꺼이 수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진짜로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
나는 내 지도의 일부를 수선하면서, 공적인 스피치 실력과 일상 대화가 함께 변해가는 사람들을 숱하게 경험했다.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자신의 지도를 펼칠 줄 아는 사람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을 위한 더 좋은 길도 함께 개척했다. 길을 수정하고, 지도를 새로 그려가면서.
가까운 사람들은 자신을 오해하지 않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늘 오해를 받는다고 말한 50대 수강생이 있었다. 오랜 시간 자기만의 지도를 쥐고 살아온 그였다. ‘나의 결을 찾아가는 스피치’를 경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말과 주변의 피드백이 달라지는 것을 뚜렷하게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내려놓지 못하고 꼭 쥐고 있던 ‘한 지점’을 놓아낸 순간, 말의 내용뿐 아니라 얼굴빛과 눈빛, 말투까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풍기는 에너지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그의 말하기는 더욱 자신감 있게 변해갔다.
신념과 가치관을 유연하게 다듬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세 가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첫째, 관계가 깊어진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할 때, 상대방도 나를 경계하지 않고 마음을 연다.
둘째, 성장이 쉬워진다. 나의 신념을 고정시키지 않고 열어둘 때, 삶은 더 넓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셋째, 자존감이 단단해진다. 흔들림 없이 유연해질 수 있다는 감각은, 나에 대한 믿음을 더 깊게 만든다.
신념을 다듬는다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넓히고, 더 깊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 넓어진 마음 안에서야 비로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상대방이 건네는 불편한 피드백을 나 역시 예전엔 쉽게 방어했다.
"그건 나랑 맞지 않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니, 그 말들 속에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표가 숨겨져 있는 것을 조금은 늦게 깨닫게 되었다. 순간은 불편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집으로 돌아와 천천히 곱씹어보면 그것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는 하나의 '피드백'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상대방이 했던 말을 '나를 위한 부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대방의 세계를 통해, 내 세계도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상대가 건넨 말에서 출발해, 조금 더 부드럽고 가까운 마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칼 로저스는 말했다. 진정성은 단순한 자기고집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유연하게 조정할 줄 아는 것이라고. 나를 꺾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 그 일이야말로, 진짜 소통의 시작이었다.
어쩌면, 소통이 막혔다고 느껴질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을 고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지도를 펼쳐보는 것. 그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길을 고집하고 있는가."
"지금, 수정할 수 있는 나의 신념은 없는가.“
훌륭한 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용기에서 시작된다. 나를 조금 수정할 수 있는 용기. 나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다.
나와 상대방을 지키는 소통을 위해서, 우리는 가끔 멈춰 서야 한다. 현재의 '나의 신념'과 '나의 가치관'을 조용히 점검하는 일.
사람은 자신의 결을 지킬 때 가장 깊은 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그 결은, 살아가는 동안 조금씩 다듬어지고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떤 편견을 품고 있는가.' '그 안에는 어떤 나의 욕구가 숨어 있는가.' 이 작은 점검이야말로, 훌륭한 소통을 위한 첫 번째 걸음입니다.
'지금 당신 안에 있는 변경 가능한 신념은 무엇인가요?'
'나의 지도를 수정할 수 있는 용기를 통해 당신은 누구와 연결되고 싶나요?'
당신의 마음 안에 있는 지도를, 다시 펼쳐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