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을 말로 옮기기 위한 아주 조용한 연습
사람들 앞에 서는 순간,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는 건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말을 꺼내기 전, 어딘가에서 조용히 땀이 맺히고 숨이 어색하게 얕아진다.
말할 준비는 됐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말을 안 들어요.
마음을 다잡고, 생각도 충분히 정리했는데 막상 말을 꺼내려하면 목이 조이고, 어깨가 굳고, 손끝이 떨린다. 자기 확신은 생겼지만, 말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왜일까?
뇌의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을 누구보다 먼저 감지해 몸에 생존 신호를 보낸다
ㅡ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
누군가 앞에 서는 순간, 뇌는 지금 이 상황을 ‘위험’이라오해하고 우리 몸을 단단하게 긴장시킨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시작할 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을 먼저 풀어볼까요?”
“네?”
“자, 일어날게요.”
스피치를 배우러 온 수강생을 조용히 일으킨다. 거울 앞에 함께 서서, 어깨를 가볍게 털고, 턱을 풀고, 목빗근과 얼굴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시킨다. 말을 꺼내기 전, 나도 모르게 굳어 있던 신체가 조금씩 풀린다. 민망하지만, 거울을 보며 천천히 몸을 푼다. 그 순간, 몸이 조금 더 나를 허락하기 시작한다.
양손을 배꼽 위에 얹고 말한다.
“이제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내쉴게요.
천천히, 다섯 번만요.”
이건 발성을 위한 복식호흡이 아니다. 말을 잘하려는 호흡이 아니라, 나를 편안하게 데려다주는 호흡이다. 마치 잠들기 직전, 가장 평온한 숨결처럼. 그저 숨을 따라 배가 오르내리는 감각에 집중한다. 긴장도가 높은 분들은 눈을 감게 하고, 잔잔한 음악 위에 내 목소리를 조용히 얹는다.
“나는 오늘, 어떤 말하기를 하고 싶은가요?
단순히 말을 잘하고 싶어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도 아닌,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라면..
나는 오늘 이 말을 통해
상대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은가요?
마음속으로 조용히,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볼게요.
예를 들면,
‘나는 말끝을 흐리지 않고 또박또박 말해서,
상대에게 편안함과 신뢰를 줄 거야.’처럼요.”
이 마음을 품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 말은 몸과 호흡, 그리고 목적이 연결된 곳에서 시작된다.
말은 스킬보다 목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피치 수업에서 ‘스킬’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기술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술만 붙잡고 있다는 건, 마음보다 빠르게 결과를 얻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술보다 먼저, 목적을 묻는다.
“긴장되시죠?
만약 지금 떨리는 이유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면,
이번만큼은
‘인정의 대상’을 나 자신으로 해보면 어때요?”
인간은 자기 수용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경험한다
ㅡ심리학자 칼 로저스
자신을 먼저 인정할 수 있을 때, 긴장감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인식하기
호흡으로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워진 수강생에게 나는 조용히 말 한다.
"눈을 떠볼까요?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을 바라봐요.”
“잠시 걸어보면서,
이 공간을 조금 더 익혀볼까요?”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으면,
잠시 멈춰서 그 색깔과 모양을
조용히 읊조려 보세요.”
처음엔 쭈뼛거리던 수강생들도 이내 천천히 강의실을 걸으며, 자신이 있는 공간에 하나씩 눈을 두기 시작한다.
“무대가 조금 높네.”
“저 빨간 시계, 오브제로 보일 만큼 크네.”
"테이블 뒤에 화분이 있었네."
긴장감으로 좁아졌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진다. 그 순간은 곧, 마음을 여는 말하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이처럼 ‘지금’에 집중하는 연습은 뇌가 위협을 해제하고, 몸이 긴장을 풀 수 있게 도와준다. 마음은 자연스럽게 ‘현재’로 돌아오고, 말은 더 이상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공간은 더 이상 낯선 무대가 아니다. 이제는 내가 온전히 ‘존재하는 곳’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은 조금 더 ‘나답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말을 잘하는 나’가 아니라 ‘나로서 말하는 나’를 만나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다. 처음엔 혼잣말처럼 조용히 시작한다.
“내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다.”
“내 미소에는 나의 마음 온도가 담겨 있다.”
“내 말투는 나를 지켜준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선다. 이번엔 2인칭으로,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OO아, 너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어.”
“OO아, 너의 미소에는 마음의 온기가 느껴져.”
“OO아, 너의 말투는 너와 사람을 지켜줄 거야.”
시선은 거울 속 ‘나’에게 고정된다. 그 순간, 수강생은 작게 웃으며 부끄러워한다. 나는 그 부끄러움도 흘려보내도록 이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 괜찮아요.
그냥 흘려보내도 좋아요.
모든 말은, 말하기 전 호흡과 시선이 먼저예요. 숨 쉬고, 다시 말해볼까요?"
“이번엔 미소를 띠고 말해보세요.
내 호흡과 미소에,
상대방을 향한 신뢰가 담길 수 있도록.
먼저 내가 나를 설득해 주는 거예요.”
부끄러움을 조용히 지나 보낸 수강생은 다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본다. 조금 더 부드러운 눈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말투, 미소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안에서 말할 준비가 천천히 자란다.
말 보다 먼저 건네는 인사
이제는, 진짜 말을 꺼내야 할 순간이다.무대에 서고, 말을 전해야 할 대상 앞에 다다랐을 때 입을 열기 전에 나는 먼저, 눈으로 말을 건넨다.
2~3초 동안 호흡하며, 미소 띤 채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호흡하며, 첫마디를 준비한다. 이 짧은 순간의 비언어적 인사는 긴장을 가라앉히고, 나를 말하기에 온전히 데려다 놓는다.
미소 띤 눈으로 건넨 인사는 말한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나는 지금, 당신 앞에 있어요.‘
이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점이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원은 라틴어 communis 공유하다에서 왔다. 말보다 먼저, 우리는 시선과 호흡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방도 느낀다. ‘이 사람은 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보고 있구나.’ 이 눈빛과 미소, 호흡이 함께 머무는 시간이 바로 진짜 말하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진짜 말은 지금에서 시작된다. ‘지금’, 그리고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수강생들은 더 이상 긴장감에 휘둘리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뭔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졌어요.”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자연스럽고, 왠지 모르게 여유롭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사람. 그건 단지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람의 말은 ‘지금’과 ‘진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긴장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우리는 종종 “떨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라고 말하지만 긴장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품어야 할 감정이다. 앞서 말했듯, 긴장은 우리 뇌가 보내는 아주 자연스러운 신호다. 낯선 상황을 위협으로 인식해 우리 몸을 보호하려는 반응일 뿐이다. 심장이 빨라지고, 손에 땀이 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순간 그건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증거다.
스트레스를 두려워하지 않고 친구처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ㅡ심리학자 켈리 맥고니걸
긴장은 도망치라는 신호가 아니다. 긴장은 준비하라는 신호다. 긴장도 마찬가지다. 떨리는 순간에도 나를 바라봐야 한다. 그건, 당신이 지금을 진심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
우리는 떨리는 몸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 떨림 속에서 조용히 나를 인식하고, 내 안의 진심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조용히 건넨다.
그리고 나 또한, 진심이 동반된 소중한 떨림을 꺼낸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당신의 진심을 듣는다. 그리고 조용히 품는다. 언젠가, 그 이야기가 또 다른 마음에게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