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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하고 싶어요” 말 안에 숨은 진심

말을 배우며, 나에게 도착한다

by 송이


말을 잘하고 싶어요.



수업 첫날,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어쩌면 너무 흔한 말이라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 안에 담긴 마음을 안다. 조금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좀 더 당당해지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 마음들이 ‘말’이라는 하나의 문장 안에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하고 싶어요”라는 말에 쉽게 답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을 건넨다.

"이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고 싶으세요?"


어느 제약회사에 다니는 30대 수강생이 있었다. 입사 초기엔 “OO만큼만 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대를 받던 사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자주 지적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보고할 때 덜 떨고, 말하고 싶은 요점을 딱 집어서 전하고 싶어요. 회의 중에도 타 부서 사람들에게 제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사실 상황이 잘 안 풀려도, 괜찮아 보이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아, 저 사람 일 잘하네’, ‘말 참 잘하네’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말을 잘한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1:1 맞춤 수업을 할 때, 늘 한 번 더 묻는다. 집요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OO님에게 ‘말을 잘한다’는 어떤 의미예요?”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사실 제가 제일 하고 싶은 건, 그냥 제 얘기를 편하게 꺼내보는 거예요.”

우리는 “말을 잘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나를 말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결국 그는 단지 보고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일하는 태도와 존재감을, 말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비즈니스 스피치는 정보 전달을 넘어,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능력’을 담고,
또 누군가는
‘표현되지 않는 내 안의 감정’을 담는다.


또 다른 수강생은 스피치 연습 중, 고민을 털어놓았다.

“생각은 많은데, 그걸 어떤 말로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분명 머릿속에 있는데, 무슨 단어를 써야 할지 너무 어려워요.”

그녀의 그 고민이, 나는 참 고맙고 귀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평소 수많은 말에 둘러싸여 살지만, 막상 ‘나의 말’을 꺼내려 하면 어휘가 낯설어진다. 그 단어를 고르는 그 시간은, 결국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녀가 고민했던 그 단어 하나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 안엔 그녀가 살아온 시간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ㅡ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내가 어떤 언어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느냐는, 곧 내가 어떻게 나를 인식하고 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쓰는 그 단어 하나에도, 살아온 세계가 묻어난다. 어쩌면 그녀가 스스로와 고군분투하며 부딪히는 그 시간은, ‘나’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렵다고 멈춰버리는 순간, 나의 세계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선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정보가 아니라, 관계와 존재‘

— 심리학자 폴 바츨라빅

말은 사실을 전달하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서면 말이 막히는 것이다. 말이 막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막힌다.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드러날까 봐. 그 드러남이 누군가에겐 실망일까 봐.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침묵 너머에 있는 건, 틀릴까 봐의 두려움이 아니라 거절당할까 봐의 두려움이다.

거절당할까봐 두려워하지 않는 힘. 그건 자기 확신에서 시작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자기 확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고 믿는 힘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밴두라는 자기 확신이 클수록 소통 능력도 커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수많은 수강생을 통해 확인했다. ‘단순히 말을 잘하려는 마음’보다, "나는 이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OO을 줄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믿음이 먼저 자리를 잡을 때, 그제야 말은 흐르기 시작한다.


“선생님, 그래도… 전보다 저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수강생들이 조심스레 꺼내는 말이다. 그 변화는 단순히 말하기 기술이 익숙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업을 거듭하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자기 확신’이 조금씩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네. 지금은 더디게 느껴져도, 분명 변화하고 있어요.”


비즈니스 스피치도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확신은 ‘감정’이나 ‘마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PT, 보고, 제안, 입찰, 회의처럼 겉보기에 감정과는 무관해 보이는 비즈니스 스피치에도 그 바탕에는 ‘나’가 있다.

자기 확신이 없으면, 타인의 욕구를 읽을 수 없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말하는 의도와 감정도 흐릿해진다. ‘정보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는 그 안에 나의 태도와 관점을 녹여낸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관계’와 ‘존재’를 이루는 방식이 된다. 상대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는 말은 기술로 다듬어진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한 사람이 건네는 말이다.


첫 수업에서 수강생이 갈피를 못 잡고 망설일 때,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스피치는,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그러니 말을 잘하려고 하는 마음보다
나에 대한 확신을 먼저 갖고는 것이 중요해요.”

자기 확신은 내면에서 자라고, 자신감은 반복 속에서 다져진다. 어떤 사람은 몇 문장 말하는 데도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말을 잘하고 싶어 연습하는 과정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쌓여가는 ‘나다움’은 오랜 시간만큼 깊이를 더해간다. 그렇게 태어난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울림으로 다가간다. ‘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말에는 언제나 떨림이 따른다. 그리고 그 떨림은, 진정성을 머금은 채 말 위에 고스란히 얹힌다. 그 마음이 담긴 진심은 세상의 어떤 기술보다도 더 멀리, 더 깊이, 닿는다.

“처음엔 그냥 말을 잘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수업을 들을수록 저에 대해 알게 되는 게 신기해요. 매번 수업이 끝나면 몰랐던 제 모습이 보여요.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고 어딘가에서 들은 적도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았던 거였더라고요.”


우리는 결국,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말은 누구보다 먼저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던진 말들은 결국 다시 '나'라는 존재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분명한 내가 된다.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가 조용히 나를 빚어간다.


진짜 스피치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의 당신도, 그 시작에 충분히 서 있어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결국 말은, 내가 나를 믿는 만큼 도달하니까요.




나는 오늘도 말 위에 마음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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